비어있으니 채울 수 있다
채우려면 비어있어야 한다
바이러스
- 이동욱
누군가 강물 속으로 돌을 던진다
물살은 남김없이 이물질을 껴안는다
움직이지 못하게 돌을 품어
강의 굴곡은 이토록 소란하다
며칠째 물속에 누워
돌이 풀리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관계에서 떨어져 딱딱해진다
그동안 사람들은
몇 개의 감정을 더 포기할지 모른다
벽에 걸린 시계를 쳐다본다
가윗 소리가 내 몸을 지나간다
햇빛이 들지 않는 이 방에서
나는 실루엣처럼 수척해질 것이다
새들이 가로수마다
숯불 같은 꽃을 놓고 있다
꽃물이 밴 입술을 두고
환절기를 빠져나간다
시 필사 모임을 처음 시작한 게 2021년 2월이니, 그때에도 이미 1년 간 지속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관계에서 떨어져 딱딱해진' 일상이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 딱딱해진 마음에 누군가의 온기가 필요해서 필사 모임을 시작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덕분에 햇살같이 마음을 비춰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역병의 시대에, 햇빛이 들지 않는 먼 타국의 땅에서... 시를 함께 나누는 마음들에 힘입어 환절기를 빠져나갔다.
필사 모임을 시작할 때쯤, 친하게 지내던 지인과 원수처럼 갈라섰던 일이 있었다. 물론 살다 보면 누군가와 오해가 쌓이고 마음이 멀어지고 관계가 소원해지는 그런 사건들이 소소하게 있기 마련이지만, 아무리 많이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경험이 이런 인간관계에서 오는 아픔인 듯하다. 그녀는 그냥 평소 가벼운 인사 정도만 주고받는 그런 데면데면한 관계가 아니라 깊이 우정을 나누고 마음을 나눴던 사람,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꽤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칼 같이 자르며 원수처럼 돌아서는 일은 너무나 아팠다.
그래서였을까. '가윗 소리가 내 몸을 지나간다'라는 시구는 내게 연결된 인연의 끈을 싹둑싹둑 자르는 소리인 것 같아 유독 가슴 아프게 읽혔다. 게다가 그런 일을 겪고 나면 누군가 마음속에 돌덩이를 던진 것처럼 한참이나 마음이 일렁여서, 강의 굴곡을 품은 마음은 소란스럽게 내 일상을 뒤흔들었다. 그렇게 사람에게 상처받고 마음이 딱딱해지고 나니 다시는 그렇게 깊게 누군가를 마음에 두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그러니까 매일 필사하는 시가 200편에 가까워질 만큼의 긴 시간이 흐르자, 비워진 그 자리에 새로운 인연이 채워지는 걸 느꼈다. 거부할 새도 없이 자연스럽게. 나는 사람의 관계에 염증을 느끼며, 다시는 누군가와 그렇게 깊게 마음을 나누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어두운 방으로 홀로 들어갔었다. 그 어두운 방에서 홀로 자책도 하고, 원망도 하고, 억울해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런 일은 대개 시간이 약인지라 한두 계절이 지나가니 그때 받았던 상처는 자연스럽게 옅어지고, 마음 때문에 겪었던 슬픔은 마음 덕분에 받는 위로로 치유되곤 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를 위로해주는 그 마음은 어디서 왔지? 어떻게 만났지? 왜 예전에는 그 마음을 몰랐지?
함께 필사를 하는 김민주 작가님은 이 시에 대한 단상을 적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간관계도 내가 채울 수 있는 한정된 크기의 그릇이 있는 것 같아요. 비워야만 채울 수 있는 그릇이요. 저와 다른 방향을 향하게 된 과거의 인연도 저를 비움으로 인해 채워진 인연이 있겠죠. 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제 삶이 새로운 인연을 받아들이기 위한 순리가 아니었을까요."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 이 말에 크게 위로받았다. 우리의 관계를 싹둑, 잘라버렸던 가윗 소리에 아파했던 날들은 분명 존재했다. 그때의 아팠던 마음과 억울했던 감정들을 선선히 흘려보내기는 여전히 어렵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돌을 던진 사람을 무턱대고 미워하기만 할 게 아니라, 그 미움을 멈추고 그 사람이 비워내고 나간 공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텅 빈자리의 공허함만 슬퍼할 게 아니라, 그 빈자리 덕분에 또 채울 공간이 생겼다는 걸 깨닫는다.
최근에 책을 읽다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구절을 만났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 '빈 공간의 의미'를 먼저 깨닫고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나는 너무 비어있다는 사실에만 마음을 쏟았던 것 아닐까. 비어있으니 채울 수 있다. 채우려면 비어있어야 한다. 그리고 아팠던 만큼 성숙해진 나는 어쩌면 더 좋은 것으로 그 빈자리를 채울지도 모른다. 마치 필사 모임에서 만난 우리들처럼.
'송고영신'이라는 사자성어는 중국에서 온 것으로, 옛 관리를 보내고 새 관리를 맞이할 때 씁니다. 흔히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맞는다는 의미로 이해되죠. 그런데 맥락을 짚어보니 우리가 알고 있던 것보다 더 뜻이 깊더군요. 옛사람을 '보내야' 새 사람이 옵니다. 쓸모를 다한 걸 버리지 않으면 새것이 자리잡지 못해요.
코로나로 일상이 정지됐을 때, 우리는 멈추어 생각해볼 기회를 맞았습니다.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않을지, 이번 기회에 더 나은 것을 선택해보면 좋겠습니다. 넘어진 김에 정비해보자는 것입니다.
송길영, '그냥 하지 말라' 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