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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Jan 23. 2023

나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다

장수연 저,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건 우리가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될 기회인 것 같다. 우리가 자동적으로 훌륭해진다는 게 아니라 그럴 기회를 얻는다는 뜻이다. 절대적으로 강자인 내가 철저히 약자인 누군가에게 가슴 깊이 우러나는 존중감으로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것, 자식이 아니면 내가 누구를 상대로 이런 사랑을 해보겠는가. 화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힘으로 누를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 것,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것. 딸을 통해 더 나은 인격을 조금이나마 경험해 봤으니,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성숙한 인간이기를, 그리하여 조금 더 괜찮은 사람, 조금 더 괜찮은 엄마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장수연 저,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중에서


 2018년 초,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야말로 육아의 대폭풍 속을 헤매던 중이었다. 첫째 아이는 그해 봄에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미운 네 살 둘째는 감당 못할 고집쟁이가 되어 있었고, 갓 돌이 지난 막내아들은 걷고 서며 활동반경이 늘어나면서 방심하는 틈마다 사고를 쳤다. 하루 종일 긴장 상태에 있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잠도 체력도 영양도 부족하던 시기였다. 남편 직장에서 곧 해외 발령이 날 것을 예감하고 이 꼬물이들을 데리고 낯선 나라로 이사를 가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끼며 한껏 우울해져 있던 시기이기도 하다. 그때 한동안 내 책상 위에 매일 올려져 있던 책이 이 예쁜 분홍색 표지의 에세이집,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다.



  5년 만에 이 책을 다시 읽었다. 여전히 같은 곳에 밑줄을 치기도, 혹은 전혀 다른 문장에 새로운 밑줄을 긋기도 했다. 어려운 책도 아니고, 두꺼운 책도 아닌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한 권을 읽는데 한 달이나 걸렸다. 아이들을 돌보며 틈틈이 책을 읽느라 한 번에 많은 양을 읽기 힘들어서도 그랬지만,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서 아껴가며 읽었기 때문이다. 일상이 힘들고 지쳐서 누군가의 토닥임이 필요했던 날, 나는 위로의 말을 찾아 헤매는 대신 이 책을 읽었다.


 두 번째로 이 책을 읽었던 오늘은 익숙한 친구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조금은 여유를 부리며 책을 읽었다. 엄마라서 할 수 있는 이야기, 엄마이기 때문에 새롭게 보이는 세상의 이야기에 깊이 공감하면서. 노키즈존에 대한 억울함, 어떻게 아이를 키우는 게 최선인지 모르겠는 아득함, 딸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더 화가 나고 서글퍼진 남성중심의 사회, 그리고 엄마, 며느리, 아내의 역할이 부여된 여성이 나 자신을 지켜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 안에 넘쳐나고 있지만 어떻게 풀어써야 할지 모르는 '엄마 됨의 감상'을 작가는 속 시원하게 건드려준다. 때로 우리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큰 연대감을 느끼기도 하는데, 이 책은 그 연대감에 힘입어 독자가 탐독했던 책의 작가에게 느끼는 나의 내적친밀감을 수직상승시켜 버렸다. (사실은 그 내적 친밀감으로 지난 몇년간 작가님을 스토킹... 아니,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했다.)


아이를 기르는 게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다면 두 번째, 세 번째...... 반복할수록 '숙련공'이 되겠지만 부모도 '이 아이'는 처음이니까. '둘째 딸', '셋째 아들'은 처음 길러보는 거라서 늘 잘 모른다. (중략) '더 잘 키워보겠다'는 욕심은 없다. 다만 내 일상에 아이가 자라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시간을 조금만 더 내어주고 싶을 뿐이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중에서


 책에 등장하는 작가님의 아이들과 우리 집 아이들의 나이는 꽤 비슷하다. 그래서 아주 사소한 지점마저 공감하게 된다. 첫째 하율이는 큰딸보다 한 살이 어리고, 둘째 하린이는 우리 집 둘째 딸과 동갑이다. 아이들 나이가 비슷한 만큼이나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려온, 비슷한 세대의 엄마가 비슷하게 두 딸을 키우는 이야기. 공감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었는데, 내가 두 딸맘의 정체성을 거쳐 삼 남매엄마가 되었듯이, 이 책이 출간되었을 당시에는 작가님도 두 딸맘의 정체성만을 갖고 있었지만 이후 그녀는 '처음 길러보는 셋째 아들'을 만나 나처럼 완성형의(?) 삼 남매 엄마가 되었다. (혹시 미래의 사 남매 엄마를 계획하고 계신지는 알 수 없으나) 막내아들은 우리 집 막내아들보다는 조금 더 어려, 아마 그녀가 지금 한창 육아의 대폭풍 속을 헤엄치고 있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세 아이의 엄마가 된 그녀가 지금 새로운 책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이 시대에 엄마로 산다는 것은, 더군다나 세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은 여전히 일상의 순간순간이 고비이고, 어려움일 텐데. 하율이가 열 살이나 열한 살 때 마무리를 짓겠다는 글, '아이들이 나와 다른 인생을 살기 원한다면'의 결말을 그녀는 찾았을까? (나는 못 찾았다.) 아마도 학령기 자녀를 키우고 있는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가지고 있을 공통의 불안감, 막내가 '아기'가 아닌 '어린이'로 보이는 순간 생기는 시간에 대한 아쉬움, 그리고 사춘기의 문이 조금씩 열리면서 생겨나는 일상의 아웅다웅함. 그런 것들이 또 한 권의 책으로 묶여 선물처럼 찾아왔으면 좋겠다. 내가 많이 애정하고, 신간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장수연 작가님. 오랜만에 그녀의 책을 읽고, 또다시 큰 선물을 받은 것처럼 마음이 노곤노곤해지는 하루를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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