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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정현 Aug 09. 2023

시 필사모임을 시작합니다

시 필사모임 1주 차


이번주부터 <시 필사 모임 시즌 3>를 시작했습니다.


필사 모임은 지난 2년 동안 400여 편의 시를 필사하며 이어왔던 모임이에요. 2021년 2월에 아홉 명의 멤버들과 함께 모임을 시작했는데, 이번 여름에는 스물다섯 명의 시벗(저희 멤버들끼리 서로를 부르는 애칭입니다)들과 함께 세 번째 필사모임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두 시즌의 필사모임을 운영하면서 들었던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지어 브런치북(http://brunch.co.kr/brunchbook/poemwriters)을 발행하기도 했었지요. 이번에 세 번째 모임을 시작하면서 이 모임에 대한 글을 더 남겨보고 싶었어요.


시벗들의 단상은 각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어서 여기에 공개할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저 개인의 필사와 단상은 브런치에 남겨두려고 합니다. 저희는 20주 동안 100편의 시를 필사할 예정인데요, 모든 필사와 단상을 남길 수는 없겠지만 한 주에 한 편씩, 그 주의 필사과제를 갈무리하는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꾸준히 기록을 이어간다면 모두 스무 편의 글을 연재할 수 있겠네요. 이번 모임에서는 어떤 시들이 제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 줄지, 그리고 저는 어떤 글을 남길 수 있을지 기대가 큽니다. 이번 세 번째 모임이 끝날 때쯤 제가 한 뼘 더 성장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고요.  


저희 모임은 함께하는 시벗 분들이 직접 골라주신 시를 필사하면서 운영하는데, 어떤 시를 누가 골랐는지는 운영자인 저만 알아요. 이 공간에 살짝 스포 하자면 첫날 시는 제가 골랐습니다. 처음 이 시를 접했을 때, 저희 모임의 분위기와 많이 닮아있는 시라고 생각했어요. 필사 모임의 첫 주, 첫 번째 과제 시는 도종환 시인의 '은은함에 대하여'였습니다.




시필사 1일 차. 8. 7. (월) 도종환, ‘은은함에 대하여' - 시집 <세시에서 다섯 시 사이(창비, 2011)> 중에서

[은은함에 대하여]

은은하다는 말속에는 아련한 향기가 스미어 있다.
은은하다는 말속에는 살구꽃 위에 내린
맑고 환한 빛이 들어 있다
강물도 저녁햇살을 안고 천천히 내려갈 땐
은은하게 몸을 움직인다
달빛도 벌레를 재워주는 나뭇잎 위를 건너갈 땐
은은한 걸음으로 간다
은은한 것들 아래서는 짐승도 순한 얼굴로 돌아온다
봄에 피는 꽃 중에는 은은한 꽃들이 많다
은은함이 강물이 되어 흘러가는 꽃길을 따라
우리의 남은 생도 그런 빛깔로 흘러갈 수 있다면
사랑하는 이의 손 잡고 은은하게 물들어갈 수 있다면



 은은(隱隱)하다. 숨을 은, 숨을 은 한자를 반복해서 씁니다. 사전적 의미는 1. 소리가 나직하여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준다. (예. 은은한 교회의 종소리) 2. 너무 진하거나 강하지 않고 그윽하다. (예. 은은한 달빛)이라고 합니다.

은은한 것, 아련한 것, 순하고 부드러운 것, 스며드는 것... 20대에는 뚜렷하고 쨍한, 개성 넘치는 사람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은은한 매력을 가진 사람이 진짜 아름다워 보이는 것 같아요. 은은한 매력은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고 오히려 깊이를 더하죠. 시를 필사하면서 '아, 참 예쁜 단어다. 나도 은은한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생각했어요.

소리 내어 발음해 봅니다. 은은. 소리도 어쩜 이렇죠. 귀에 거슬리지 않는 ㅇ(이응) 소리가 두 번 반복되면서 입가에 부드러운 여운을 남기네요.

단어의 의미와 문장의 표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의 단어를 반복해서 소리 내어 보는 일. 좋네요. 필사모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는 이런 시간을 그리워했었구나,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나만의 책상에 홀로 앉아,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진 않지만 내면에서 일어나는 작은 울렁임을 느낄 수 있는, 이런 은은한 아침을요.






 둘째 날 필사한 시는 은은함과 어딘지 결이 비슷한 '사뿐사뿐', '차곡차곡', 가볍고 부드러운 느낌의 시를 골랐어요. 최은숙 시인의 '거룩한 일상'입니다.


 어떤 시를 필사할지 골라주는 건 시벗들이지만, 언제 필사할지는 저 혼자서 결정합니다. 그래서 저는 스스로를 '시 배달부'라고 불러요. 매일 필사할 시를 전달하면서 건네는 인사말도 "안녕하세요, 시 배달 왔습니다."입니다. 그런데 가끔 시를 배달하다 보면 절묘한 배달 타이밍에 소름이 돋았다고 말해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저희들끼리는 그것을 '시내림'을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덕분에 시 필사 모임이 '시 필사교'라는 사이비종교(...) 같은 애칭을 얻기도 했지요. (오해하지 마시길.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이날 필사한 시는 저에게 그런 해프닝을 안겨주었어요. (셀프 시내림!!)




시필사 2일 차. 8. 8. (화) 최은숙, ‘거룩한 일상' - 시집 <지금이 딱이야> 중에서


[거룩한 일상]


젖은 빨래를 반듯이 펴서

차곡차곡 포갰다 널면

다림질 안 해도 새 옷처럼 반듯하지

양말도 대충 걸지 말고 짝 맞춰 나란히


사소한 일을 정성껏  


흙 씻어 낸 호미를 헛간 벽에 걸 때

할머니는 호미 자루에서 손을 떼지 않으시지

휙휙 집어던지지 않으시지

개켜 놓은 이불 위에 베개를 올릴 때도

수저를 식탁에 놓을 때도

설거지한 그릇을 포갤 때도


호미와 벽은 평화롭고

가만히 이불 위에 내려앉는 베개는 포근하고

나란히 걸린 양말은 사뿐사뿐 하늘을 걷지

수저도 그릇도 주인처럼 정갈하고 고요하지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그런 어느 날 우린

햇볕을 품고 바람에 나부끼는 시간을 알게 되겠지

젖은 마음일 때도 천천히 주름을 펴는 법을 알게 되겠지

나를 함부로 동댕이치지 않고 살게 되겠지


 

 전날 세탁실에서 빨래를 널고 있는데 '딩동'하며 시 배달할 시간이라는 알람이 울렸어요. 한국시간 자정에 시를 배달하기 때문에, 폴란드에 살고 있는 저는 하루 전날 오후 다섯 시에 시를 전달합니다. 젖은 빨래를 옆에 두고 핸드폰을 꺼내 시를 배달하는데 '젖은 빨래를 반듯이 펴서...' 하는 첫 시구를 보며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어쩜 타이밍이 이리도 절묘한지. 덕분에 남은 시간 동안 빨래를 널며 조금 더 정갈한 마음으로, 사소한 일을 정성껏 할 수 있었어요. 마음가짐 하나 바꾸었을 뿐인데 시를 배달하기 전의 빨래 널기와 시를 배달한 후의 빨래 널기는 전혀 다른 행위가 되더군요.


 저는 사실 많이 덤벙거리는 사람이에요. 제가 거쳐간 자리에는 어김없이 흔적이 남습니다. 한 번은 남편이 욕실에서 치약 뚜껑이 닫혀있지 않은 걸 보고 한숨을 쉬면서, "얘들아. 너희 엄마는 딱 한 가지만 빼면 다 완벽한 사람인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바로 뚜껑을 안 닫아..." 하며 하소연을 한 적이 있죠. 그러고 보니 화장품 뚜껑도, 주방의 양념통 뚜껑도, 마시던 물통 뚜껑도 다 열려있는 거예요. 하하. 그거 하나만 빼고 완벽하다고 해줬으니 애써 칭찬(??)이라고 받아들여보려 하지만... 차곡차곡 사뿐사뿐 보다는 허둥지둥 덤벙덤벙이 제 일상을 설명하는 단어인 것 같아요.


'사소한 일을 정성껏',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이 두 문장에 짙게 밑줄을 쳐보며, 어제의 빨래 널기를 기억해보려 합니다. 차곡차곡, 사뿐사뿐.






 첫날 시를 필사하며 평소에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무심코 남발하던 '은은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다면, 둘째 날, 셋째 날 시를 필사하면서는 일상적이지만은 않은 단어, '거룩하다'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게 되었어요. '거룩'의 한자가 무엇이지? 하고 찾아보았는데 의외로 순우리말이더군요. '거룩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러러 받들 만큼 위대하고 성스럽다." 제가 가진 동아연세 초등국어사전에는 이런 예문이 있었어요. "어머니의 사랑이야말로 거룩한 사랑이다."


 똑같이 '거룩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지만, 최은숙 시인이 말했던 '거룩한 일상'과는 조금 다른 거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시를 필사했습니다. 셋째 날 시는 문성해 시인의 '나의 거룩'이었어요.




시필사 3일 차. 8. 9. (수) 문성해, ‘나의 거룩' - 시집 <내가 모르는 한 사람(문학수첩, 2020)> 중에서


[나의 거룩]


이 다섯 평의 방 안에서 콧바람을 일으키며

갈비뼈를 긁어 대며 자는 어린것들을 보니

생활이 내게로 와서 벽을 이루고

지붕을 이루고 사는 것이 조금은 대견해 보인다

태풍 때면 유리창을 다 쏟아 낼 듯 흔들리는 어수룩한 허공에

창문을 내고 변기를 들이고

방 속으로 쐐애 쐐애 흘려 넣을 형광등 빛이 있다는 것과

아침이면 학교로 도서관으로 사마귀 새끼들처럼 대가리를 쳐들며 흩어졌다가

저녁이면 시든 배추처럼 되돌아오는 식구들이 있다는 것도 거룩하다

내 몸이 자꾸만 왜소해지는 대신

어린 몸이 둥싯둥싯 부푸는 것과

바닥날 듯 바닥날 듯

되살아나는 통장잔고도 신기하다

몇 달씩이나 남의 책을 뻔뻔스레 빌릴 수 있는 시립도서관과

두 마리에 칠천 원 하는 세네갈 갈치를 구입할 수 있는

오렌지마트가 가까이 있다는 것과

아침마다 잠을 깨우는 세탁집 여자의 목소리가

이제는 유행가로 들리는 것도 신기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던 생활이

옆구리에 낀 거룩을 도시락처럼 내미는 오늘

소독 안 하냐고 벌컥 뛰쳐 들어오는 여자의 목소리조차

참으로 거룩하다



 한국에서 친정어머니가 같이 오셔서 지금 폴란드 집에서 지내고 계세요. 새벽에 일찍 일어나 시를 필사하고 있는데, 아직 시차적응이  되신 어머니도 일찍 일어나셔서 가족들 중 제일 먼저 아침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다시 노트와 펜에 시선을 돌리는데, 어머니는 주방으로 들어가셔서 식기세척기에서 그릇을 꺼내십니다. 달그락, 달그락. 철없는 딸은 어머니가 집안일하는 소리를 들으며 시를 필사했어요. 새벽에 일어나 노트에 시를 필사하는 딸과, 새벽에 일어나 가족들의 식기를 정리하는 어머니. 과연 누가 더 거룩한 아침을 맞이했을까요.


  책상에 앉아 노트에 글을 끄적이는 불효녀는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일상을 지탱해 주셨던 분이 어머니였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저는 살림에 시간을 빼앗기는 걸 늘 '낭비되는 시간', '아까운 시간'이라고 여기곤 했는데, 살림살이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에 점검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드네요. 비단 제가 가정주부여서가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먹고, 입고, 자고, 청결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활동을 해야 하니까요. 다만 집안일의 당위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식구들 중에 나만 집안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아 억울한 감정이 있었는데, 어머니를 보면서 조금 생각이 바뀌었어요. 나 역시도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에 일상을 보내고 있으니까요. 어머니가 폴란드에 계시는 동안에는 신기하게도 집안 살림이 쌓이지 않습니다. 설거지도, 빨래도, 청소거리도. 덩달아 저도 어머니 눈치를 보며 이불을 더 가지런히 정돈하고, 집안에 지저분한 것들이 쌓이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에요. (살림의 기준점이 다른 어머니가 과연 저의 노력을 알아주실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 정도면 거룩한 일상을 살아가는 걸까요?


 오늘의 시를 읽으니 생각나는 책의 구절이 있어 옮겨 적습니다. 양희은 님의 에세이 <그러라 그래>에서 만난 문장이에요. 오랜 시간 방송인으로 롱런하는 그녀의 저력이 '주부로서의 일상'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사생활에서 나는 철저히 주부로 산다. 라디오, 방송, TV출연, 공연 등등 일이 물론 중요하지만 퇴근 후의 사생활도 소중하다. 내가 무대에서든 방송에서든 살아 있는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일하는 양희은' 외에 주부로서의 일상이 탄탄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략) 내 부엌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밥을 해 먹는 일, 제철 채소를 사다가 나물을 무치고, 맑은 국을 끓이고 제철 생선 두어 마리를 맛나게 굽는 일. 그게 무슨 대수냐고 웃을지는 몰라도 내게는 중요하다. 일 바깥의 일상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내 일의 비결이다.

양희은,  <그러라 그래> 229쪽


 아직 이번 주의 필사 과제는 목요일과 금요일, 이틀이 더 남았지만 저는 내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떠날 예정이라 이번 주의 필사 단상은 여기서 갈무리합니다. 다음 주에 또 몽글몽글한 시 들고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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