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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새벽

<썬데이 파더스 클럽>에서 만난 문장

by 주정현
잠자는 시간조차 아까운 새벽 시간은 나에게 자유일까, 마지막 발악일까. 그게 잠시 깨어 있을 자유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나를 챙기는 고요가 소중하다.

손현, '부산에서 육아할 결심', <썬데이 파더스 클럽> 197쪽


최근 '임상상담심리사들의 새벽공부방'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스터디모임에 가입했다. 평생 공부가 필요한 직업인 임상심리사들과 상담심리사들, 혹은 심리사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모여, 새벽에 각자의 자리에서 줌(zoom)으로 화면을 켜고 집중하는 모임이다. 줌 화면에는 이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손만 보인다. 누군가는 논문을 읽고, 누군가는 논문을 쓰고, 누군가는 자격증 공부를 하고, 누군가는 전공서를 읽는다. 가끔 예쁜 커피잔이 등장하기도 한다. 같은 목표를 향하지만 각자 다른 리듬으로 공부하는 이들 속에서 나는 글을 쓴다. 나는 그 새벽 공부방에서 '셀프 상담'을 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새벽공부방이 운영되는 시간은 아침 5시부터 8시까지다. 아이들이 아직 꿈나라에 가 있고 남편은 출근 준비를 하기 전. 분주한 하루 준비를 하기 전, 하루가 뜨기 전, 세상의 소음과 요구를 만나기 전의 고요한 시간이다. 그 조용함 안에서, 그 누구의 엄마도, 누구의 아내도 아닌 '그저 나'로서의 시간이 시작된다. 순수한 나 자신으로 책상 앞에 앉는 시간. 노트를 펼쳐 첫 줄에 오늘의 날짜를 쓰고 글을 쓴다. 세상의 시선, 기대, 그리고 역할로부터 벗어난 나는 누구의 판단도 없이,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나에게 말을 거는 시간을 가진다. 새벽의 고요 속에서 나를 들여다보는 일. 나만의 '상담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티스트 웨이>의 '모닝페이지'를 쓰고 있다고 여러 번 브런치에 밝혀 왔는데, 요즘 나는 그 글을 나만의 '상담 로그'라고 부른다. 나의 상담로그는 감정의 기록이자 해석이며, 치유의 기록이다. 처음엔 무언가를 쓰겠다는 의도도 없었다 단지 머릿속을 맴도는 감정을 꺼내어 적었다. 감정은 형태가 없지만 문장이 되는 순간 무게를 가졌다. 그리고 그 무게를 인식하는 순간 나는 내가 무엇에 힘들어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새벽은 그렇게 나를 회복시키는 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도 전문상담사를 만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시간, 비용, 접근성,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도움을 요청한다는 두려움과 타인에게 나를 개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나를 막는다. 더군다나 오랫동안 심리학 공부를 해온 나는 이 좁은 업계에서 나를 모르는 완벽한 익명의 상담사를 만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걸 깨달아 버렸다. 그러나 글쓰기는 어떨까? 이 책상이 나만의 상담실이 되고, 이 노트가 내 마음을 듣는 상담사라면? 내 생각을 정리하고 감정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 새벽 글쓰기는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만약 우리 모두에게 하루 한 시간씩 정기적으로 만나는 1인의 개인 상담사가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삶의 무게가 갑자기 가벼워지진 않겠지만, 우리는 훨씬 덜 부서지고 더디 닳아갈 것이다. 감정을 기록하고, 질문하고, 자신을 다독이는 일. 마음의 예방접종 같은 셀프 상담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우리가 매일 우리의 마음을 돌아본다면, 삶은 조금 더 따뜻하고 단단해질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상담사가 되어야 한다. 나는 오늘도 나 자신을 진심으로 마주하기 위해, 나를 제대로 돌보기 위해 글을 쓰며 새벽을 연다. 내가 나의 상담사가 되어,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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