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직필>에서 만난 문장
"너희 몸은 지금 너희가 먹고 있는 걸로 구성되어 있어. 너희 몸의 세포는 석 달마다 다시 채워지거든. 그러니까 너희가 먹는 게 지금의 너희 몸이 되고, 미래의 몸이 되는 거야. 항상 생각을 가지고 먹어야 해."
요한 하리, <매직필> 343쪽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결국, 양육자가 어떤 기준을 세우고 그것을 지켜내는 일이다. 먹는 것, 입는 것, 보는 것, 잠자는 시간, 그리고 인생을 대하는 태도까지 - 아이의 삶은 양육자의 기준과 태도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형성된다. 특히 나는 아이들이 건강한 식습관을 가지길 무엇보다도 진심으로 바란다. 첫 아이를 낳고 기르며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은 극에 달했다.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곧 매일 삼시 세끼를 준비하는 '끼니 전쟁'을 치러내는 일이었고, 그때마다 나는 '무엇을, 어떻게 먹일 것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게 되었다. 첫 아이가 두 살이 되던 해, 나는 이 고민을 학문적으로도 풀어내고자 했고, 그 결과 석사학위 논문의 주제를 '아동기의 섭식 행동'으로 정하게 되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먹는 것. 당연해 보이는 이 바람은 현실 안에서 번번이 부딪힌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환경은, 우리 사회는 건강한 식습관을 오히려 비정상으로 만들고 있으니까.
주변을 둘러보면 온갖 자극적인 음식의 유혹이 넘쳐난다. 슈퍼마켓 진열대에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늘어서 있는 건 언제나 형형색색의 가공식품들이다. 액상과당이 잔뜩 들어간 음료, 인공 향과 색으로 가득한 사탕, 초콜릿, 껌, 젤리...... 그리고 그 옆에는 캐치티니핑과 포켓몬스터가 그려진 과자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무리 엄마가 아침마다 정성껏 손질한 채소를 식탁에 올리고, 신선한 과일을 간식으로 건넨다 한들, 이런 자극적인 맛과 향에 익숙해진 아이들에게 자연식품은 너무도 밋밋하고 심심한 대상이다.
건강한 음식은 항상 설득이 필요하고, 설득에는 피로가 따른다.
요즘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계는 먹거리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자연스러움'이 점점 사라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음식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정보와 콘텐츠 역시 자극적이고 인공적인 것들로 가득하다. 몇 초 만에 시선을 붙잡고, 곧바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영상들. 감정을 강하게 흔들고 뇌를 들썩이게 만다는 이미지들. 지난달 초등학생 아이의 공개 수업에 참석했을 때 나는 전자칠판에서 펼쳐지는 알록달록하고 화려한 그래픽에 깜짝 놀랐다. 3D로 회전하는 등고선이라니! 그 모습을 보며 '요즘 아이들은 칠판에 판서하면 아무도 안 봐요'라고 하던 동료 교사의 하소연이 절로 이해되었다.
짧고 빠르고 화려하며 강렬한 자극이 전부인 시대. 이런 시대에 한 장 한 장 넘기며 천천히 스며드는 책을 읽는 일은 더더욱 어려운 선택이 되었다. 자연식품과 가공식품의 대립 구도는 마치 고전 동화책과 유튜브 쇼츠의 대립과도 비슷하다. 이 둘 중 무엇이 더 건강한가를 묻는 질문은 의미가 없다. 쇼츠를 끝없이 넘기는 우리도 무엇이 더 건강한 지를 몰라서 이렇게 침대 속에 웅크려서 핸드폰 화면만 쳐다보는 게 아니다. 다만 지금 이 순간, 건강한 행동을 실천할 나의 의지가 다소 빈약할 뿐. 현실은 늘 이상보다 강하고, 유혹은 늘 의지보다 유연하다.
오늘 하루쯤은 괜찮겠지, 다들 먹는 거니까. 억지로 스트레스를 주느니 오늘은 그냥 두는 게 낫겠지. 그렇게 한 발 물러설 때마다 내가 세우려 했던 기준은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내가 가진 삶의 기준을 아이에게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까. 아이가 그것을 삶의 기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이 자극적인 세상에서 아이가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도록 붙잡아줄 그 기준은 대체 어떻게 심어줄 수 있을까. 반복되는 피로감에 지쳐 한 발 물러설 때마다 내가 세우려 했던 기준은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아이는 점점 가공식품의 맛에 익숙해지고, 나는 점점 더 자주 타협하게 된다.
늦은 밤, 아파트 상가의 편의점 앞을 지나며 북적이는 10대들의 모습을 본다. 신난 얼굴로 컵라면을 후후 불어먹는 아이들을 바라보다 보면,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해진다. 내가 포기하지 않고 자연식품을 식탁에 올리고, 한 끼의 밥을 정성으로 차리는 그 과정이 과연 아이에게 무엇을 남길 수 있을까. 자극적인 세상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이에게 건강한 한 끼를 건네려 애쓰는 나의 몸부림은 '이상적인 엄마'가 되기 위한 시도가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내가 감당해야 할 몫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그 정성이 아이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를. 자극의 시대일수록, 조용한 정성은 더 깊은 흔적을 남긴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