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주정현 Aug 16. 2020

출산을 세 번 경험한 후 만난 생리컵

김보람 작가, 피를 제대로 보고 싶은 분들에게 <생리 공감>

생리는 몸의 일이다. 여성의 몸, 특별히 질 그리고 질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오랜 세월 금기시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은 공유되거나 기록되는 대신 잊히고 삭제된다. 이토록 오랜 시간 이 피를 금기시한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방치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피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고, 그 피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과 비용 그리고 고통은 모두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 뒀다.
김보람, <생리 공감> 중


"엄마, 엄마도 같이 수영장 들어가면 안 돼?"

 마당에 있는 휴대용 풀장에 물을 받던 날, 막내아들이 물었다. 어제도, 오늘도 수영장 밖에 앉아 커피만 홀짝거리는 엄마가 우리랑 같이 풀장에 들어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그날은 생리가 시작된 지 딱 사흘째 되는 날이었으니까.

"엄마 생리 중이라서 안돼."

"생리가 뭐야?"

"음, 엄마 엉덩이에서 피가 나오는 날."

"아, 아기집 부수는 날?"

 세 살 남자애가 하는 말 치고는 꽤 생물학적인 배경지식이 있는 대답이었다. 아무래도 위로 누나가 둘이나 있으니 여성의 몸과 생리에 대해 조기학습이 되는 경향이 있다. 사실은 최근에 김보람 감독의 <생리 공감>을 읽고 단순히 자궁 내막을 두툼하게 만들기 위해 그렇게 많이 피를 저장하고 흘리는 게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일단은 아이가 알고 있는 상식 내에서 '어, 맞아. 그날.' 하고 대답해줬다. 그런데 아들이 이내 시무룩해져서 말한다.

"힝. 나는 아기집이 없어."

 딸들에게는 때때로 몸속에 있는 아기집과 그 소중함에 대해,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난자가 나오는 사이클에 대해서 설명해준다. 보통은 내가 극심한 생리 전 증후군(PMS)으로 인해 집안일도, 육아도 모두 파업 선언을 하고 그저 퀭한 얼굴로 누워 진통제를 꾸역꾸역 먹는 날, 왠지 아이들에게 미안해서 변명처럼 나오는 말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큰 딸에게는 아주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준다. 아이의 첫 생리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빠르면 1-2년, 혹은 늦어도 3-4년 내에 아이가 경험할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빠르면 4학년 때도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곧 머지않아 그날이 왔을 때 아이가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생리에 대한 이야기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런데 그걸 옆에서 주워듣던 아들은 '나만 아기집이 없다'는 상대적인 박탈감(?) 같은 걸 느꼈나 보다. 남자들 중에는 외형적으로는 오히려 여자들보다 튀어나온 신체기관이 하나 더 있는 것 같아서 자부심을 느끼는 사람도 있는 것 같은데, 가족 구성원 중 여성비율이 높은 가정에서 자라다보면 또 이런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아들이 귀여워서 피식 웃었다.


 내가 수영장 주변을 정리하는 동안 말없이 한 30초 정도 정적이 흘렀는데, 그동안 아이의 생각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 아기집, 태아, 내가 엄마 뱃속에 있었지, 엄마는 지금 근데 아기가 없어서 아기집을 부수고 있지, 뭐 이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아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던 걸까. 잠깐 생각에 잠긴 듯했던 아들이 이내 다가와서 나한테 씩 웃으며 이야기한다.

"엄마, 나를 낳아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때 내 뱃속에 담아뒀다고 믿어지지 않을 사이즈로 커 버린 세 살의 아들. 그러나 여전히 작고 귀여운 아들의 올망졸망한 입에서 이런 대사를 듣고 감동하지 않을 엄마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어설픈 성교육지식을 이야기할 때마다 아이들은 늘 이런 근사한 선물 같은 응답을 주곤 한다. 엄마가 품었던 생명과, 그 기다림과, 인내. 이런 것들을 배우는 걸까. 코끝이 찡해지는 걸 느끼며 아들을 포근히 안아주었다.

"아들, 건강하게 잘 커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지금만큼만 멋지고 튼튼하게 자라주렴."

 



 김보람 감독의 생리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그리고 그녀의 저서 <생리 공감>,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책읽아웃 측면돌파-김보람감독편>을 들었다. 해외에 살고 있는지라 영화는 그 어떤 포털사이트에서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해당 국가는 서비스 지역이 아닙니다'라는 딱딱한 문구와 함께 영화를 볼 수는 없었지만 유튜브를 통해 짤막한 예고 영상을 보았고 책은 전자책으로 다운로드하여 읽었다. 순서상으로는 팟캐스트를 가장 먼저 들었는데, 방송을 듣고 책을 찾아 읽기까지의 약 두 달 간의 공백 동안 내 일상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처음으로 생리컵을 써 본 것이다.  

맨 왼쪽 이미지가 내가 구매한 생리컵. 그리고 피의 연대기 포스터와 생리공감 책의 표지

 사실을 이야기하자면 방송을 듣기 전에 이미 내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는 생리컵이 담겨있었다. 코로나바이러스 셧다운으로 3월부터 아무 곳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뒹굴거리기를 몇 주째. 외출을 하지 않으니 돈을 쓸 일이 없고 통장엔 돈이 차곡차곡 쌓여가는데 그와는 반대로 스트레스가 머리 끝까지 차오를 때였다. 그러다 문득 인터넷 쇼핑몰은 그나마 열려있으니 혹시 뭔가 잇템을 지를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국내 포털사이트에 '독일 직구 아이템'이라는 검색어를 넣어보았다. 폴란드는 육로로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고, 아마존 물류창고 중 일부는 물가가 저렴한 폴란드에 자리하고 있어 독일 아마존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물건 대다수는 폴란드로 무료배송이 된다. 소소한 베이킹 도구들과 평소 눈독 들이던 올 스테인리스 주방도구들을 차례로 훑어보던 내 눈에 문득 '생리컵'이 눈에 띄었다.

 자주 가던 맘카페에 '생리컵 간증글'이 쏟아지던 시기였다. 다들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삶을 맞게 되었다는 찬양글과 자기는 아무래도 맞지 않는지 첫 적응이 너무 힘들었다는 고백글이 함께 뒤섞여있었다. 모두가 엄지를 추켜세우며 추천하는 게 아니라 열에 두세 명은 '아무래도 저는 안 되겠어요'라는 솔직한 후기가 함께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어머, 이건 꼭 알려야 해!"라며 홍보대사를 자청했지만, 끝까지 결제 버튼을 누르지는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렇지만 이날 방송 오프닝에서 이야기했던 '인생의 적절한 타이밍'에서 나는 생리컵에 대한 방송을 만났고 드디어 내 지갑을 열었다. 코로나로 독일-폴란드 간 국경은 일반인을 향해서는 굳게 닫혀있었지만 내 생리컵이 배송되는 물류택배 트럭을 위해서는 활짝 열려있었기 때문에 그로부터 나흘 후, 나는 작은 상자 하나를 받았다.

내가 구매한 제품은 OrganiCup이라는 브랜드에서 출시하는 세 가지 제품 중에서 중간 크기인 Small 사이즈로, 사실은 어떤 사이즈 측정과정도 거치지 않고 그냥 중간 사이즈면 되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구매한 제품이다. 책에 쓰여있는 것도 그렇고 원래는 다들 손가락으로 사이즈를 먼저 측정하는 과정을 걸쳐서 자신에게 맞는 생리컵제품을 선택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지난 10년 동안 세 아이를 출산했고, 2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 수없이 내 질과 자궁을 전문가들에게 보여왔지만 딱히 유달리 '짧다든지 길다든지 크다든지 작다든지'하는 사이즈와 관련된 특별한 코멘트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수백 명의 환자들을 봐 왔던 산부인과 의사들이 별말 없었으니 그냥 대충 평균이라고 가정하고 중간 사이즈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컵을 구매한 지 약 2주 후,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속옷에 살짝 묻어난 피를 본 순간 나는 끓는 물에 깨끗이 소독해놨던 생리컵을 꺼내 화장실로 갔다. 유튜브에 보면 기존에 생리컵을 사용해 왔던 유저(?)들이 생리컵을 접는 다양한 방법에서부터 어떻게 삽입할 수 있는지 힘을 빼는 법, 넣는 법, 꺼내는 법 등등을 (직접 보여줄 수는 없으니 대신) 엄청 자세하게 이야기해준다. 그리고 초보 유저들을 위해 꼭 덧붙이는 말이 있으니 '처음에는 삽입이 힘들 수 있어요.'라는 말. 처음 사용해본 날 제대로 삽입하기까지 한 시간이나 걸리기도 했다는 말에 나는 욕심부리지 않고 한 15분 정도만 열심히 연습해보고 안되면 미련 없이 평소에 사용하던 생리대를 착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가장 친절하고 자세했던 유튜브 동영상을 5분간 다시 예습할 겸 찬찬히 살펴보고 'C폴드'로 접어 드디어 시도해보는데...


 음? 너무 말도 안 될 정도로 쉽게 생리컵이 몸 안에 딱 들어갔다. 이물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아프거나 힘들다는 느낌도 없었다. 참고로 탐폰은 대학생 때 딱 한번 써보고 따갑고 건조한 느낌에 다시는 찾지 않던 나였다. 다들 처음엔 엄청 힘들다고 했는데 그냥 너무 쉽게 안착해버려서, 그래서 오히려 제대로 들어간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였다. 이러면 된 건가? 이게 맞나?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서가 아니라 너무 쉬워서 이 감각이 맞는지 긴가민가해서 다시 생리컵을 몸에서 빼냈다. 질에 살짝 힘을 주면 생리컵의 손잡이 부분이 쑥 앞으로 나온다고 하는데, 전혀 경험이 없어서 어느 근육에 어떻게 힘을 주는지 모르겠다면...? 바로 아기 낳을 때처럼 힘을 주면 된다.


 그렇다. 사실 내 몸은 아이를 세 번 잉태했던 몸이라, 그리고 그 아이들을 모두 자연분만으로 출산했던지라 사실 생리컵을 몸 안에 넣는다는 것에 대해 전혀 거부감이 없었다. 사람 머리도 나왔던 곳인데 지름 4센티미터의 생리컵 정도야. 만약에 내가 출산 경험이 없는 여성이었다면 아무래도 어떻게 이런 물건을 내 질에 넣을 수 있지? 하는 거부감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만... 너무 쉬운 삽입과 그리고 말도 안 되게 상쾌한 경험에 헛웃음이 나왔다. 아니, 나는 지금까지 왜 이 제품을 쓰지 않았지??? 왜 이제야 알게 된 거지??? 지난 20년간의 나의 그 끈적끈적하고 불쾌하고 꿉꿉한 느낌은 대체 무얼 위해 존재했던 거지????




 그리고 생리컵을 쓴 지 어느새 석 달째. 몇 가지 경험이 쌓였다. 제대로 삽입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뭔가 삐딱하게 들어가서 생리혈이 밖으로 새 나온 적도 있었고, 양이 많은 날에는 2 시간마다 교체해주지 않으면 25밀리리터 용량의 생리컵이 넘쳐서 공기구멍을 통해 생리혈이 새기도 했었다. 그리고 딱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외출해서 공중화장실에서 교체해야 할 때의 번거로움이다. 다행히 코로나바이러스로 그다지 외출할 일이 없어서 그런 일은 많지 않았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야외 놀이터에 갔다가 생각보다 긴 시간 야외에 있어야 해서 "아, 이런... 망했다!" 싶은 순간이 있었다. 넘친 것이다. 그래서 양이 많은 날에는 혹시 장시간 외출 중에 용량을 넘어버릴까 봐 면생리대를 함께 보완해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생리 공감>에서 김보람 작가는 양이 적은 편이라 아침에 삽입하고 외출하면 저녁에까지 교체하지 않아도 되었다고 하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사실 그간 생리대를 사용해오면서 전부 패드에 피가 흡수되었기 때문에 내가 생리양이 많은 편인지 적은 편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정확히 내가 얼마큼의 피를 흘리는지, 그리고 그 피의 원형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지난 20년간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장점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단 가장 큰 장점으로는 생리에 대한 경험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단 아무렇게나 누워도 된다. 자세에 대한 제약이 없어진다. 수영이나 격한 운동은 아직 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그리고 믿기지 않겠지만 분명 생리 중인데 내가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까먹는다. 굴(?)을 낳는 그 특유의 느낌도 없고, 몸 밖으로 흐르는 느낌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평소에 느껴왔던 부드러운 면 속옷의 감촉이 그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일부러 의식하지 않으면 내가 생리 중이라는 걸 종종 까먹게 된다. 물론 양이 많은 첫 사흘간은 그렇게 계속 까먹고 있다가는 넘치기도 하니까 잊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편이다. 그러나 그게 나흘째나 닷새쯤으로 가다 보면, 아침에 일어나서 평소대로 일상생활을 하다가 오전 10시나 11시쯤에 문득 깨닫고 마는 것이다. 아 맞다, 나 지금 생리 중이었어. 생리컵 교체해야 해. 예전처럼 일회용 생리대를 하고 있었다면 그것은 까먹으래야 까먹을 수 없는 사실이다. 평소와는 다르게 불편하고 습하고 꿉꿉하고 끈적거리니까.


생각이 시작되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때마침 내 몸에 딱 맞는 생리컵을 한 번에 찾았다. 나는 그렇게 끊임없이 쓰고 버려야 하고 매번 값을 치러야 하지만 안정성은 검증받지 않은 일회용 생리대에서 탈출했다.

 생리컵은 시장성이 낮은 제품이기는 하다. 한 번 구매해 만족한 여성들은 다시 컵을 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처음엔 다양한 컵을 써 보고 싶었지만 특정 컵이 몸에 가장 잘 맞는다는 걸 안 이후로 다른 컵은 사놓고도 쓰지 않는다. 생리컵을 처음 사용할 때에는 삶의 패턴이 바뀌고 진기한(?) 물건을 가지게 된 흥분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지만 결국엔 그것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물론 다양한 컵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여성들이 매달 새로운 컵을 사지 않는 이상 쓰고 버리는 기존의 일회용 생리대만큼 크고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나는 아직 여러 개의 생리컵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3만 원 정도 되는 가격으로 구매했던 사진 속 생리컵 딱 한 개만 가지고 있다. 몸에 잘 맞고, 쓰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추가로 구매할 생각은 아직 없다. 한 개의 생리컵을 꺼내서 살짝 세척한 후 다시 삽입하면 되므로 쓰는 데 아직은 전혀 불편함이 없다. 그러나 혹시 생활패턴이 달라지고 집 바깥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아마 여분의 생리컵을 하나 더 구매할지는 모르겠다.

 생리컵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이제는 더이상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해외에서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사실 우리나라만큼 튼튼하고 질 좋은 생리대를 파는 나라는 흔치 않다. 표면도 거칠고, 날개형이나 오버나이트 같은 제품은 종류도 개수도 많지 않다. 그래서 외국 여성들은 오히려 더 탐폰을 선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사실 한국에 다녀올 때나 남편 출장길에, 혹은 방문하는 친지들을 통해서 꼭 한국 생리대를 몇 팩 구매해서 면생리대와 함께 병행해서 쓰곤 했었다. 특히 양이 많은 날 쓰기 좋은 '입는 오버나이트' 제품을 좋아해서 다섯 개에 9천 원이라는 값비싼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몇 팩씩 쟁여두고 쓰고 했었다. 셋째를 출산하고서는 오로(출산 이후의 출혈)가 많이 나오는 산후 일주일 동안 산모패드라 불리는 성인용 기저귀 대신에 이 제품을 사용하기도 했었다. 그렇다. 생리대도 분명 진화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생리컵을 만난 이상 더 이상 일회용 생리대를 구매하는 일은 더 이상 내 인생에 없을 것 같다. 넷째 아이를 낳고(음???) 생리컵을 사용할 수 없는 출산 직후라면 모를까...(물론 그럴 일은 없다.)

 그렇게 더 이상 생리용품에 돈을 쓰지 않는 길을 걷게 되었다.



 여성의 질과 자궁은 어떤 곳일까?

 그곳을 통해 생명이 잉태되었고 전 인류의 모두가 약 9개월간 그 안에 머물면서 삶의 토대가 되는 장기들을 만들고 소중한 생명을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절반은 나에게 없는 장기라고 혹은 내 눈에 드러나게 보이지 않는 신체기관이라고 무시하려 하거나 알려고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히려 고맙고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세 살짜리 꼬마도 자연스럽게 연상하는 그 고마움 말이다.

 책에서 김보람 감독은 '평생 임신을 하지 않는 여성의 경우 생리는 그 여성의 삶에서 어떠한 목적성도 가지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사실 나는 방송에서 딱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이 있다면 임신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다달이 겪는 생리는 정말 너무 귀찮고 짜증 나고 성가신 것이지만, 그 본래의 목적이었던 임신과 출산을 일단 한 번 경험해보고 나면 내 몸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비유하자면 학창 시절 문제풀이만을 위해 12년 동안 수학을 공부했던 학생이, 건축이나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세상이 수학적 기호로 해석될 수 있는, 수학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채널이었음을 자각하는 순간에 비유할 수 있을까. 첫 아이를 임신하기 전까지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저 너무 귀찮고 힘들기만 했던 일이 그 본연의 기능을 위해 잠시 멈추는 순간. 그리고 1년간의 모유수유를 마치자마자 그다음 달 기다렸다는 듯이 1년 9개월 만에 다시 보게 되는 혈흔. 여성의 생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그 경험은 너무 소중하기에. 그리고 생리를 하는 내 몸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아이를 가질 수 있을 만큼 건강하구나.' 하는 안심도 된다. 생리가 소중하다는 인식이 있기 위해서는, 생리가 멈춰 있었던 순간의 경험도 필요하다고 본다. 내 몸의 메커니즘이 한 달에 일주일씩 피를 흘릴 수 없을 때. 생존이든 재생산이든 내 몸이 생리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일로 방향을 바꾸었던 경험 말이다.


여성이 흘리는 피에 대해 남성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할 이유다. 생리는 일상이고, 몸의 자연스러운 일이며, 때로는 엄청난 고통과 노동과 비용을 수반하는 것으로,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체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흑인 사회가 '검은색은 아름답다Black is beuatiful'을 외치며 그동안 자신들을 억압한 피부색이 지닌 상징을 반전시켰듯이 우리도 공유되는 경험들 속에서 이것이 인간의 일이며, 인생의 일부라는 스토리를 쌓아 나가야 한다. 이 피는 부끄럽지도 더럽지도 신경질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대담하고, 가능성이 무한하며(뇌도 만들 수 있는), 매우 정당한 예민함을 지닌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남성들과 공유하고, 인류 절반의 경험과 기억이 아닌 인류 전체의 유산, 공동의 기억이 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런 이야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생리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들. 내가 그 시간을 잘 해결하기 위해 사용하는 물건들. 엄마가 딸에게, 언니가 동생에게, 이모가 조카에게... 그리고 때로는 이렇게 오픈된 공간에서 영화와 책과 방송과 글을 통해서도 더 많이 이야기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몇 년 뒤 나는 생리를 시작한 큰 딸에게 해줄 이야기가 아주 많아질 것이다. "엄마가 알고 보니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양이 많은 편이었는데 말이야, 그걸 어떻게 알게 되었냐면..." 하면서 말이다. 각자의 몸이 다르고 사례가 다르고 개인차가 있으며 세대도 다르지만, 이것은 한 달에 한 번, 일 년에 열두 번, 살아가면서 적어도 400번, 아마 30년간 겪을 그 이야기에 대한 글이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391/clips/26



매거진의 이전글 95%의 인생이 아닌 5%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