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람 작가, 피를 제대로 보고 싶은 분들에게 <생리 공감>
생리는 몸의 일이다. 여성의 몸, 특별히 질 그리고 질에서 흘러나오는 피는 오랜 세월 금기시되었다.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않는 것이 되고, 그것에 대한 경험은 공유되거나 기록되는 대신 잊히고 삭제된다. 이토록 오랜 시간 이 피를 금기시한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렸다. 방치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피를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고, 그 피를 처리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과 비용 그리고 고통은 모두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 뒀다.
김보람, <생리 공감> 중
생각이 시작되자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고 때마침 내 몸에 딱 맞는 생리컵을 한 번에 찾았다. 나는 그렇게 끊임없이 쓰고 버려야 하고 매번 값을 치러야 하지만 안정성은 검증받지 않은 일회용 생리대에서 탈출했다.
생리컵은 시장성이 낮은 제품이기는 하다. 한 번 구매해 만족한 여성들은 다시 컵을 살 일이 없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처음엔 다양한 컵을 써 보고 싶었지만 특정 컵이 몸에 가장 잘 맞는다는 걸 안 이후로 다른 컵은 사놓고도 쓰지 않는다. 생리컵을 처음 사용할 때에는 삶의 패턴이 바뀌고 진기한(?) 물건을 가지게 된 흥분 때문에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지만 결국엔 그것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는다. 물론 다양한 컵을 소장하고 싶어 하는 여성들도 있지만 여성들이 매달 새로운 컵을 사지 않는 이상 쓰고 버리는 기존의 일회용 생리대만큼 크고 안정된 시장을 확보하기는 어렵다.
여성이 흘리는 피에 대해 남성들과 함께 이야기해야 할 이유다. 생리는 일상이고, 몸의 자연스러운 일이며, 때로는 엄청난 고통과 노동과 비용을 수반하는 것으로,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체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미국의 흑인 사회가 '검은색은 아름답다Black is beuatiful'을 외치며 그동안 자신들을 억압한 피부색이 지닌 상징을 반전시켰듯이 우리도 공유되는 경험들 속에서 이것이 인간의 일이며, 인생의 일부라는 스토리를 쌓아 나가야 한다. 이 피는 부끄럽지도 더럽지도 신경질적이지도 않다. 오히려 대담하고, 가능성이 무한하며(뇌도 만들 수 있는), 매우 정당한 예민함을 지닌다. 이제 이런 이야기를 남성들과 공유하고, 인류 절반의 경험과 기억이 아닌 인류 전체의 유산, 공동의 기억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