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에서 만난 문장
'밀레니엄 맘'이라고 불리는 80년대생 엄마는 대부분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이다. 이들은 부모의 절대적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고, 대학생이거나 취업해 활동하던 2000년대에는 '알파 걸'로 불리기도 했다. (중략) 가족을 위해 희생하던 어머니 세대와 달리 자신만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를 위한 투자도 아끼지 않는다.
이은경 저, <80년대생 학부모,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 80년대생들은 조금 독특한 세대다.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성장한 여성 세대였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유리천장은 존재하고, 한국 사회에서 완벽한 수평적 성 역할이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최소한 ‘여자니까 안 된다’는 말로 진로를 제약받지는 않았다. 그래서일까. 오히려 우리 세대는 학창 시절 어머니로부터 ‘너는 나와는 다르게 더 자유롭고 더 큰 꿈을 꾸라’는 압박 속에서 자랐다.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거기서 전문직이 되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인 주문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들과 장래희망을 이야기할 때 “가정주부가 되고 싶어”라고 말한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 전제보다 더 앞선 화제는 “나중에 결혼을 할까, 안 할까?”였다. 결혼이 더 이상 인생의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모두가 생각했고, 실제로도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현재까지도 미혼 혹은 비혼이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독신주의자’였다. (믿기지 않겠지만.) 누군가의 아내로, 엄마로 사는 삶은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결혼은 커리어의 걸림돌이 될 뿐이라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인생이란 참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20대 초반, 인생의 반려자를 어쩌다 보니 예상했던 시기보다 훨씬 일찍 만나게 되면서 결혼과 가정이라는 가치가 내 삶 안으로 스며들었다. 처음엔 그 사실이 조금 당혹스러웠다. 뭐랄까,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받아들이는 게 마치 ‘패배’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 온 세대인데….’ 그런 마음도 약간 있었다. 왠지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올해로 결혼 16년 차. 나는 생각보다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에 잘 맞는 사람이라는 걸 인정하게 됐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진심으로 즐거움을 느낀다.
최근 이사를 하면서 그 사실을 다시 한번 더 깨달았다. 처음엔 새로운 주방, 낯선 동선에 쩔쩔매며 반찬가게 음식이나 배달로 연명하던 시간이 이어졌지만, 2주쯤 지나자 몸이 집의 리듬에 적응했다. 그리고 어느 날 드디어 내 패턴대로 세팅된 주방에서 오랜만에 냉장고를 열어 재료를 다듬고 끓이고 볶아 가며 저녁 반찬 여덟 가지를 한꺼번에 만들어 냈다. 그때 밀려온 행복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회적 영역에서 어떤 성공적인 퍼포먼스를 해 냈을 때와는 또 다른 결의 성취감이 느껴졌다. 주방에서 내 손으로 음식 재료를 다듬고 익히며 맛을 내는 그 일련의 과정이 내 안의 생명력을 깨웠다. ‘아, 나는 이런 물성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그 단순한 사실이 이상할 만큼 나를 평화롭게 만들었다.
물론 내 주변에는 “저는 살림엔 소질이 없어요”, “가사노동은 그냥 필요악이죠”라고 말하는 워킹맘들도 많다. 그들 나름의 방식이 있고, 그게 잘 맞는다면 그들의 말 또한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내 살림을 내가 주도할 때 안정감을 느낀다. 폴란드에 살던 시절에는 150평이 넘는 주택을 관리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청소도우미와 정원사 아저씨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한 번도 가사도우미를 부른 적이 없다. 남에게 맡길 수 없는 내 살림의 결이라 해야 할까. 손끝으로 하나하나 정리하고, 내 리듬으로 공간을 다듬는 일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솔직히 예전에는 이런 내가 부끄러웠다. 부엌에서 식구들 삼시세끼 밥을 차리며 ‘내가 이러려고 그렇게 공부를 했나?’ 싶은 순간도 있었다. 대학원까지 마치고도 주부로 사는 나를 실패한 인생처럼 느낀 적도 있었다. 아이 셋을 돌보느라 사회적 커리어가 중단된 현실이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이 회사 일을 하고, 나는 집안일을 하는 분업 구조 속에서 문득 서운함이 올라올 때면 ‘왜 나만 집 안에 묶여 있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그 서운함의 뿌리는 남편에게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편견’에 있었다는 걸. 나는 ‘전통적인 여성 역할’을 스스로 낮춰 보았던 것이다. 내가 그 역할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세대였기에, 오히려 그 자유를 ‘행사하지 않는 나’를 실패자로 여겼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진짜 자유가 아니었다.
자유는 선택의 가능성에서만 완성된다. 누군가는 사회의 중심에서 커리어를 쌓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정의 중심에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갈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선택이 ‘자발적’이냐는 것이다.
최근에 유튜브에서 가수 송소희가 송길영 작가와 함께 대담을 나누는 장면을 보았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자유가 어디에서 오는가 생각해 봤을 때, 제 경험상으로는 각자의 기질이 있잖아요. 그리고 살면서 쌓인 본인만의 이야기가 있고. 그런데 그런 것들을 잘 표출했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처럼 진짜 자유는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있는 고유한 기질과 이야기를 인정할 때 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여전히 때때로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엄마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고, 가정주부로만 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가정에 소홀해지는 것은 더 싫다. 나에게 여러 중요한 가치를 놓고 생각해 보면, 사회적 성취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가정에서의 성취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둘 중 어느 하나를 희생하는 삶은 나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 나에게 맞는 자유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은 주방에서 요리할 때,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얼굴을 바라볼 때, 깨끗하게 정돈된 집에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햇살을 받으며 책을 읽을 때다. 정리 정돈을 하다 딱 맞는 수납함을 찾아냈을 때의 희열, 완벽한 테트리스처럼 물건이 자리를 찾았을 때의 쾌감 — 이런 것들이 내 일상의 기쁨이다. 그리고 그 일상의 기쁨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만 나는 소소하게 사회적 영역에서의 일을 이어가고 있다. 어떠한 소속도, 직위도, 사회적 명예도 없는 직업. 그리고 나는 이제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했다.
누군가는 대학원 이상의 고학력을 가지고 전업주부가 된 나의 삶을 ‘퇴행’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주체적으로 나의 삶을 살고 있다. ‘알파걸’이 되려던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을 이기려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세상 속에서 나만의 평화를 찾았다. 모두가 같은 시대의 흐름을 따를 필요는 없다. 어떤 여성은 유리천장을 깨며 세상을 바꾸고, 또 다른 여성은 자신의 집 안에서 하루를 단단히 세운다. 나는 후자다. 그리고 그것이 결코 덜 위대한 일은 아니다.
이제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전업주부로서, 한 가정의 중심을 지탱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내가 선택한 나의 자유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나는 꽤 자유롭다. 그리고 그 사실이 꽤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