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실망하는 법을 배우는 일

<질문은 조금만>에서 만난 문장

by 주정현
가끔 누군가의 속이 수정구처럼 비칠 때마다 생각했다. 다시는 저 안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두 번 다시 실망하고 싶지 않아.

이충걸 저, <질문은 조금만>


임상심리사로 사는 일은

심리검사라는 과학적이고 정교한 도구로
타인의 내면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일이었고,
그 다음에 따라오는 실망을 견디는 일이기도 했다.


무난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양친의 사랑을 당연한 듯 받으며 자란 나는
그 일이 때때로 몹시 괴로웠다.

그 심연에서 건져 올린 타인의 마음이
언제나 내가 기대했던 것처럼
깨끗하거나 곱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세상을 좀 더 착하게 믿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해외에 살며 오랫동안 본업에서 멀어져
(이걸 본업이라고 부르기엔 조금 어색할지도 모르겠지만)
양육자로만 살아오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전공 공부를 이어가보자며
작년부터 사부작사부작
임상심리를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심리학을 통해 다시 나의 윤리와 세계관을 확인하는 일을 시작했는데,

어쩌면 그것은
다시 실망하는 법을 연습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계속 누군가의 마음을
수정구처럼 들여다보고 싶은 것일까.


임상심리사로서의 나,
글을 쓰는 나,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로서의 나.


이 셋은 서로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같은 질문을 품고 있다.


이 사람은 무엇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을까.
그리고 지금,
무엇을 가장 숨기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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