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좋은 엄마>에서 만난 문장
위니코트는 아기에 대해서 세상 누구도 엄마보다 잘 알지는 못한다고 생각했다. 세상 유일한 아이의 세상 유일한 엄마로서, 아이와 먹고 자고 생활하면서 깊이 느끼고 반응하는 자연스러운 감각과 거기서 우러난 판단들이 그 어떤 석학의 심오한 가르침보다 중요하고 아이에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략) 그는 이론이 생생한 삶을 다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도널드 위니코트 저, <충분히 좋은 엄마>의 옮긴이 김건종의 서문 중에서
내가 심리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한 지 20년이 지났다. 2006년 초에 전공승인을 받았으니 올해로 꼭 20년째다. 와, 내가 심리학을 20년 동안이나 공부했다니! 공부의 끝이라는 게 없는 그런 종류의 학문이라 심리학 공부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여전히 심리학자로서 ‘아무것도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20년 동안.
아무것도.
어릴 때 우리가 그리는 ‘목표점’이라는 건, 사실 세상이 비춰준 몇 개의 스포트라이트인 경우가 많다. 방송에 나오고, 이름이 알려지고, 돈과 명성을 가진 사람들. 막연히 꿈을 꾸던 시절, 내 레이더망에 감지된 이 영역의 전문가는 늘 그런 사람들이었다. 이름 있는 대학의 교수이거나, 방송에 고정 출연을 하거나, 베스트셀러를 쓰는 사람들. 실상을 알지 못했기에 그것이 이 분야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저기까지 가야 성공’이라고 믿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내 레이더망에 포착된 심리학자는 말하자면 올림픽 중계 화면 속 국가대표 선수였던 것 같다. 분야는 달라도, 내가 이상적으로 상상했던 심리학자로서의 성취 역시 그런 ‘국가대표스러운’ 장면 속 어딘가에 있었다. 말하자면 ‘국가대표급’ 심리학자.
그렇지만 모두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을까?
아니, 모두가 국가대표가 될 필요가 있을까?
운동선수가 되기를 꿈꾸던 아이가 있다고 하자. 이를테면 스케이트 선수라면, 아마 그 아이가 처음 그린 목표는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국가대표 선수였을 것이다. 하지만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한 무수히 많은 스케이트 선수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운동선수로서 실패한 걸까?
올림픽에 국가대표로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스케이트를 사랑하고, 지역 빙상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빙판 위의 감각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몸으로 알고, 넘어지는 사람을 다치지 않게 붙잡아주는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그 사람을 두고 쉽게 ‘실패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오히려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 사람은 스케이트의 ‘정점’에는 오르지 못했을지 몰라도, 스케이트의 ‘안쪽’에는 아주 깊이 들어간 사람이라고.
올림픽 말고도 빙상장은 있고, 빙상장의 문은 매일 열리며, 넘어지는 아이는 늘 생기고, 그 아이 곁에 서 있는 어른은 매일 필요하다. 세상이 박수 치는 성공의 정의는 크고 화려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어떤 직업의 아주 얇은 단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심리학자로 ‘되는 것’ 말고, 심리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앞에서 나는 도널드 위니코트를 만났다. 위니코트는 세상 누구도 엄마보다 아기를 더 잘 알 수는 없다고 믿었다. 세상에 하나뿐인 아이의, 세상에 하나뿐인 엄마로서 아이와 먹고 자고 생활하며 형성되는 자연스러운 감각과 거기서 우러난 판단이, 어떤 석학의 심오한 이론보다 아이에게는 더 중요하고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론이 삶의 전부를 포착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늘 이론보다 먼저 살아 있는 관계와 맥락을 보려고 했다.
어쩌면 그가 보여준 태도는 ‘국가대표급’ 심리학자가 되는 길이라기보다, 심리학을 삶의 도구로 가지고 살아가는 한 사람의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결국 심리학 박사과정이나, 수련과 같은 학문적 경로에서의 직업적 성취를 선택하기보다는 아이들의 엄마로 사는 일을 선택한 사람이 되었다. 연구실과 강의실 대신, 나는 아이들의 하루 곁에 서 있는 자리를 선택했다. 아이가 이유 없이 울던 밤들, 말로 설명하지 못하는 불안을 몸으로 드러내던 순간들, 하루에도 몇 번씩 무너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아이의 마음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은, 교과서 어디에도 그대로 옮겨 적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그 곁에서 나는 함께 울었고, 함께 성장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들은 심리학을 멀리한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심리학이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나에게 다가온 시간이었다. 나는 이론을 세세하게 적용하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신호에 반응했고,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의 리듬에 맞추려고 애썼다. 위니코트가 말한 ‘엄마의 자연스러운 감각’이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그런 순간들 속에서 조금씩 길러졌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심리학자로 ‘되는’ 길에서는 내려왔을지 모르지만, 심리학과 함께 ‘살아가는’ 자리에서는 오래 서 있었던 셈이다. 그 시간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이, 그 경험이 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는 것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국가대표는 아니지만, 매일 새벽 빙상장의 문을 여는 사람. 아마도 내가 선택한 심리학자의 모습은 그런 쪽에 더 가까울 것이다. 스포트라이트가 비추는 자리 대신, 불이 가장 먼저 켜지는 안쪽 공간에 서 있는 사람.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빙판 위에 올라서는 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그 자리가 안전하다는 것을 먼저 확인하는 사람.
그 자리는 결코 화려하지 않다. 기록도, 메달도 남지 않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문을 열어야 하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하루가 시작된다. 그래야 누군가의 연습이, 누군가의 성장이 가능해진다. 그 일은 대개 설명되지 않고, 기록되지 않으며, 다만 아이들의 하루 안에 조용히 남는다.
엄마로서 내가 느끼는 보람도, 아마 그와 비슷한 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심리학을 가지고 살아온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어쩌면, 그것을 목표라고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그런 직업적 성취도 하나의 목표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