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샤 튜더의 문장과 기본값에 대하여
얼마 전 타샤 튜더 회고전에 다녀왔다. 모 대기업이 운영하는, 집에서 도보 20분 거리의 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였다. 3월이 되고 아이들의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바쁘고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일상이 흘러가는 사이 나를 향해 쓰여야 했을 '나 스스로를 돌보는 시간'은 텅 비어 버렸다. 그 때문이었을까.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고 그 미세한 변화를 먼저 알아차린 남편이 제안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 있는 시간 동안 집을 벗어나 잠깐이라도 바람을 쐬고 오면 어떻겠냐고.
그 말에 문득 지인의 인스타그램에서 스쳐 지나가듯 보았던 타샤 튜더 회고전 소식이 떠올랐다. 검색해 보니 마침 그 주 주말이면 전시가 끝난다고. 이번이 아니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가장 늦은 날을 골라 나는 미술관으로 향했다.
봄날씨는 포근했고 전시는 다정했다. 평일의 미술관에는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꽤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을 건너 전시장으로 찾아온 타샤 튜더의 그림책 원화들, 그녀가 생전에 출간한 그림책들과 아주 세밀하게 그려진 삽화들이 있었다. 세세히 관찰하라며 작품 옆에 돋보기도 함께 놓여 있었는데 이런 큐레이션이 정말 귀엽다고 생각했다.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장면들, 디지털 화면 위로 재구성된 이미지들, 작고 사랑스러운 전시 연출들. 그 옆을 하나하나 지나며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것을 느꼈다. 누군가 정성을 들여 재현해 놓은 타샤 튜더의 수선화 정원과 온실은 —비록 조화였지만— 충분히 다정했다. 시간이 한 겹 느리게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 안을 걷는 동안 내 마음도 서서히 풀어졌다.
그리고 유명하고도 익숙한 그녀의 문장을 만났다.
나는 다림질, 세탁, 요리, 설거지 같은 집안일을 하는 게 좋아요.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가정주부라고 적어요.
찬탄할 만한 직업이죠.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으니까.
이미 다른 매체를 통해 여러 번 만난 적 있었던 문장이다. 낯설지 않다. 여러 책과 잡지 사이에서 몇 번이나 마주쳤던 문장. 그런데도 왠지 나는 이 문장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가 떠오른다. 지금은 중학생인 큰아이가 아직 유치원생이던 시절이었다. 타샤 튜더의 이 문장을 읽으며 전업주부라는 삶을 낮추지 않고 오히려 빛나는 직업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이 고마워 오래도록 곱씹었던 기억이 난다. 그 문장은 그때의 나에게 하나의 응원처럼 느껴졌었다.
당시 나는 하던 일을 완전히 관두고 전업주부가 된 지 2년쯤 지난 상태였다.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남들보다 ‘가방끈이 긴’ 고학력 주부가 되었지만 그다음 단계에 대한 계획이나 목적이 부재한 상태였다. 앞으로의 삶의 의미나 목적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거듭 질문해 보아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나이는 겨우 서른. 나는 이제 뭘 해야 하지. 뱃속의 셋째까지 포함해서 아이들은 모두 아직 너무 어렸고 나의 하루는 대부분 돌봄 노동으로 채워져 있었다. 한편 나와 비슷한 또래의 동갑내기 친구들의 시간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는데 친구들 중 많은 이들이 아직 결혼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아이를 키우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의 삶에는 돌봄, 양육, 엄마의 삶이라는 변수가 아직 본격적으로 등장하지 않았을 때였고 대신 그들의 커리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승진을 하고, 팀장이 되고, 더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는 친구들의 근황은 SNS를 통해 내게로 끊임없이 흘러들어왔다.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었다. 마음이 납작해지는 기분. 그리고 나만 제자리에서 멈춰 있는 것 같은 초조함. 이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조급함. 무엇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압박. 그리고 그 끝에 내가 선택한 방식은 '읽는 삶'이었다. 일 년에 백 권이 넘는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직장에 다닐 수도 없고 새로운 학위 과정을 시작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내가 멈춰 있지 않기 위해 붙잡을 수 있는 것은 활자뿐이었다. 거의 집착에 가까운 속도로 닥치는 대로 읽었다. 읽고 또 읽었다. 무언가를 계속해서 받아들이고 있어야, 계속 흡수하고 있어야 내가 정지해 있지 않다는 느낌을 겨우 유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아보니 그것은 단순한 독서가 아니라 일종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 속에서 나 혼자라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싶었던 마음.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에게만큼은 “나는 여전히 무언가 하고 있다”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때의 나는 타샤 튜더의 "잼을 저으면서도 셰익스피어를 읽을 수 있으니까."라는 문장을 진심으로 좋아했었다. 그 문장 그대로 살고 있었고(비록 잼이 아니라 '이유식을 저으면서도'였지만) 그 문장이 어느 정도 나의 삶을 정당화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이 방식의 삶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충분히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좋았다. 든든한 응원의 메시지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아주 오랜만에, 십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마주한 그녀의 문장이 이제는 다르게 다가왔다. 이 문장을 몇 번이고 다시 읽는 동안 내 마음 어딘가에서 설명하기 어려운 불편한 감정이 생겨났다. 공감하기는 하는데 동시에 어딘가 걸리는 느낌이었다. 이해는 되었지만 목구멍에 무언가 걸린 것처럼 ㅡ 어떤 이물감 때문에 이 문장이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나는 왜 이 문장을 더 이상 온전히 좋아할 수 없게 된 걸까.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만나기 직전에 이미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지나왔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타샤 튜더의 회고전을 따라 걸으며 나는 그녀의 삶을 하나씩 훑어보았다. 한 장 한 장 넘겨지며 이어지는 성취의 기록들. 칼데콧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력. 수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은 그림책들. 정교하고 섬세한 원화들. 그리고 전기와 수도 없이 자연 속에서 네 아이를 키워낸 엄마의 삶까지. 전시를 따라 걸으며 나는 그녀가 안팎으로 이뤄낸 성취에 감탄하였다. 이렇게까지 많은 것을 해낸 사람이었구나. 단순한 취향이나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낸 사람이었구나.
그런데 그런 사람이 직업을 묻는 질문에 ‘가정주부’라고 답하다니.
누군가 나의 직업을 묻는다면 그리고 내가 그녀와 같은 성취를 이뤄낸 사람이라면 나는 무엇이라고 쓰고 싶을까. 아마 작가이겠지. 작가일 것이다. 특히 남성 작가라면 더더욱 주저 없이 그렇게 적지 않을까. 많은 시간을 집안일에 쓰고, 요리를 하고, 공간을 가꾸며 살아가는 남성 작가가 있다고 해도 그가 스스로를 ‘주부’라고 말하는 모습은 좀처럼 상상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김영하 작가님을 생각해 보자. 나는 그분의 인스타그램에서 글뿐 아니라 일상의 단면들도 종종 보게 되는데 연희동 주택의 정원을 손질하고, 직접 요리를 하고, 생활을 정성스럽게 꾸려가는 모습들은 분명 ‘가정적인 삶’의 일부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가정주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를 자연스럽게 ‘작가’라고 부르고, 그 역시 그렇게 스스로를 정의한다.
누군가는 집안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작가’이고, 누군가는 그 모든 일을 중심에 두고 ‘가정주부’이다. 이 차이는 개인의 선택에서 비롯되는 걸까. 왜 그녀는 수많은 이름 중에서 ‘가정주부’를 선택했을까. 나는 다시 이 문장을 곱씹어 본다.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가정주부라고 적어요. 찬탄할 만한 직업이죠. 이건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훨씬 오래된 어떤 기본값에서 비롯된 것처럼 느껴졌다.
내 직업을 묻는 질문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본다. 나는 늘 그 질문 앞에서 망설이게 된다. 나는 가능하다면 나 자신을 ‘프리랜서’라는 애매하고 넓은 범주로 말하고 싶어 한다. 비록 프리랜서로 버는 수입이 턱없이 적을지라도, 나는 분명 독서 수업을 하고 글을 쓰고 상담을 하며 돈을 번다. 아주 작더라도, 내가 사회 안에서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다는 이 감각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 자신을 완전한 전업주부라기보다는, 또는 워킹맘이라기보다는 어딘가에 걸쳐 있는 사람, 이를테면 ‘반쯤 일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내 직업을 묻는 질문 앞에서는 가능한 한 그 ‘일하는 나’ 쪽에 더 무게를 두고 싶어 한다.
그런데 지난가을, 친정아버지의 칠순을 맞아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입국 신청서에 객관식으로 직업을 쓰는 칸이 있었다. 일본 입국청에서 제시하는 여러 가지 선택지 중에서 내 직업에 가장 잘 들어맞는 항목을 골라야 했다. 그런데 거기에는 ‘프리랜서’가 없었고, 그때부터 갈등이 시작되었다. 전문직? 아직은 애매하다. 전문 자격을 준비하는 지금의 과도기적 상태를 학생이라고 부르기에도 적절하지 않다. 선생님? 어떤 기관이나 학교에 소속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작가? 출간 작품이 없는 브런치 작가를 입국청에서 과연 작가로 봐줄까. 이도 저도 아닌 상태,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잠깐 망설이다가 나는 결국 선택지 제일 마지막, 기타 항목 바로 위에 있는 ‘전업주부’를 선택했다. (기타 항목을 고르면 왠지 입국 절차가 더 까다로워질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 선택을 하고 나니 마음이 영 편치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맞는 말도 아닌 것 같아서였다. 전업주부. 그 한 단어 안에 내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우수수 빠져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전업주부’라는 단어 속에는, 내가 붙잡고 있던 어떤 것들이 너무 많이 지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전업주부’라는 말을 망설일까. 나는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서 ‘프리랜서’라고 적고 있는 걸까.
그래서 나는 이 질문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돌려보게 되었다. 왜 나는 ‘전업주부’라는 말을 망설이고, ‘프리랜서’라는 말을 붙잡으려 하는 걸까. 그것은 단순히 단어의 선택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서 있는 자리의 기본값을 다르게 정의하고 싶은 욕망에서 비롯된 문제 아닐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미 어떤 큰 틀 안에서, 사회가 만들어 놓은 전제 위에서 스스로를 설명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생산하는 사람’, 즉 돈을 버는 사람으로 자연스럽게 인식된다. 반면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은 ‘돌보는 사람’, 가사와 양육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먼저 떠올려진다. 이 구분은 누가 명확하게 정해놓은 규칙이라기보다, 오랜 시간 반복되며 굳어진 하나의 기본값처럼 작동하는 사회적 통념이다.
그래서 남성은 집안일을 많이 하더라도 그것을 굳이 자신의 정체성으로 내세울 필요가 없다. 이미 ‘작가’, ‘회사원’, ‘전문직’이라는 이름으로 충분히 설명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여성은 그 기본값을 넘어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덧붙여야 한다. 돌봄과 가사 바깥에서도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사회 안에서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아마도 나는 그 지점에서, ‘전업주부’라는 말만으로는 나를 설명하기 어렵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프리랜서’라는 말을 통해, 내가 여전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여전히 무언가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타샤 튜더의 말이 껄끄럽게 느껴졌던 것 같다. 나는 애써 내가 하는 일을 ‘직업’의 언어로 붙잡아두고 싶은데, 이미 그것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히려 그 이름을 내려놓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겨우 붙잡고 있는 이름을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서 그렇게 목구멍에 이 문장이 컥, 걸렸나 보다.
하지만 생각을 조금 더 이어가 보니, 그 선택은 포기가 아니라 다른 종류의 강조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살던 시대를 떠올려보면 ‘가정주부’라는 이름은 지금보다 훨씬 더 가볍게 여겨졌을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는 오히려 그 이름을 앞에 내세움으로써, 이 삶 역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가정이라는 삶도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그 안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고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겉으로는 가정주부, 실제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 이 조합 자체가 어쩌면 그녀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지도 모른다. ‘가정주부라는 역할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라는.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완전히 좋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게 되었다. 그녀가 선택한 방식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낮게 평가되던 삶의 자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 놓여 있던 이름을 스스로 앞에 내세웠던 사람이 바로 타샤 튜더였다. 그 선언의 방향과 용기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 문장은 이전과는 다른 의미로 내 안에 남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다른 방향의, 전혀 다른 기본값을 꿈꾼다. 나는 잼을 저으면서 셰익스피어를 읽는 삶을 꿈꾸기보다는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면서도 잼을 저을 수 있는 세계를 상상한다. 셰익스피어는 아마 잼을 저어본 적이 없겠지. 누군가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잼 위에 가볍게 숟가락을 얹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창작을 하고, 누군가는 돌봄을 맡는 세계가 아니라, 누구나 창작하고, 누구나 돌보는 세계를 바란다. 어떤 사람에게는 ‘생산’이 기본값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돌봄’이 기본값인 세계가 아니라, 그 기본값 자체가 더 이상 나뉘어 있지 않은 세계를 꿈꾼다. 그래서 언젠가는 누군가 나의 직업을 묻는 질문 앞에서 망설이지 않아도 되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전업주부’라고 써도, ‘작가’라고 써도, '프리랜서'라고 써도, 혹은 그 사이의 어떤 이름을 적어도, 그 어떤 선택도 무언가를 지우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