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철학에 비춘 한국 사회와 창조적 인간

갇힌 들개들

by selves
너의 들개들은 자유를 원한다. 그리하여, 너의 정신이 나서서 감옥문 모두를 활짝 열어젖히려 하자 저들은 기쁨에 넘쳐 지하실에서 아우성들이구나.
- 프리드리히 니체

들개들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거칠고 야생적이며 길들여지지 않은 이미지다. 니체는 들개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인간 본연의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본능과 충동, 즉 순수한 에너지를 상징화한다. 이 본능적인 힘이 이성, 사회적 도덕, 관습, 종교 등 외부적 압력과 스스로의 나약함에 의해 인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지하실'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이처럼 갇혀 있는 자의 영혼은 영리해지기 마련이다. 교활해지기도 하며 천해지기도 한다.

갇힌 영혼이 영리해지고 교활해진다는 것은 갇힌 상태에서는 직접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거나 억압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회적인 수법으로 살아남기 위해 영리해지고 기만적인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는 뜻이다.

자유로운 상태에서는 창조적 에너지로 발현되었을 힘이 억압된 상태에서는 외부 세계를 속이기 위한 영악한 상태로 변질된다는 얘기다.


또한 갇힌 영혼은 고귀한 이상을 꿈꾸기보다 눈앞의 작은 이익, 사소한 쾌락, 혹은 복수심 같은 저급한 목표에 매달리며 스스로의 위상을 낮추는 천박함에 이르게 된다. 결국 본능적 에너지를 억압하면 인간은 스스로 위대한 것을 창조할 힘을 잃고 교활함 속에 갇힐 뿐이다. 오직 이 본능적 에너지를 해방시키고 스스로 지배하며 승화시킬 때에야 비로소 인간은 창조하고 위대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나는 니체가 말한 '영리하고 교활한 갇힌 영혼'의 모습이 한국 사회의 단면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고 느낀다. 한국인은 세계 최고 수준의 영리함과 효율성을 지녔지만 정작 세계를 이끌어갈 창조적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관습, 사회적 규범에 갇혀 있다. 집단 내의 동일한 사고방식을 강요하고 남과 다르거나 튀는 행동에 대해 집단적인 부정적 시선을 보낸다. 본능적인 욕구와 에너지를 드러내기보다는 숨기기에 급급한 문화다.

자신의 '들개들'을 지하실에 가두어 놓은 채 오직 눈치와 영악함만으로 사회적 목표를 달성하려 한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창조적 본능이 나올 수 없다. 진정한 창조는 '따라 하기'나 '눈치 보기'가 아닌 억압되지 않은 에너지의 폭발적 분출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갇힌 영혼이 낳은 교활함은 단순히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결국 현상 유지를 통해 안락을 추구하려는 집단적인 '선함'의 형태로 발현된다. 니체는 이러한 현상 유지 욕구를 가진 이들 즉 '선한 사람들'의 위험성을 다음 구절에서 지적한다.

선하다는 사람들에게도 고결한 사람은 걸림돌이 된다. 그래서 그를 선한 사람이라고 부르면서도 속으로는 그를 제거하려 드는 것이다.
고결한 자는 새로운 것을 그리고 새로운 덕을 창조하려 한다. 선하다는 사람은 옛 것을 원하며, 옛 것이 보존되기를 바란다.

우리가 흔히 '선하다'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현재의 도덕과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이다. 당연히 그들은 현재의 안정적인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고결한 자는 현재의 '선'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려 하며 이는 곧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모든 사람에게 걸림돌이 된다.

인류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존 질서를 파괴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고결한 자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새로운 환경을 회피하려는 경향 또한 강하다. 한번 적응한 상태가 유지되기를 바라며 급작스러운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고결한 창조자들은 늘 외롭고 힘들며 많은 이들이 결국 그 길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삶으로 돌아간다.


기득권층은 자신이 이미 가진 권력을 잃고 싶지 않아 변화를 더욱 경계한다. 권력이 부패했을 때 역사가 보여준 유일한 해결책은 전체를 뒤집어엎는 혁명뿐이었다.

그러나 부패하지 않은 '선한 사람'들 역시 현재가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보수적인 마음을 숨기고 있다. 이처럼 현재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집단적 의지가 강한 사회에서는 고결한 창조자들이 설 자리를 잃는다.


결국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고결한 자들이 위대한 창조를 할 수 있도록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포용할 수 있는 문화가 절실하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튀는 행동'을 새로운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문화에서 사회 구성원 개개인도 자신들의 갇힌 들개들을 해방시켜 순수한 에너지를 분출하고 창조할 수 있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춤추는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