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 대신 전투, 평화 대신 승리
인생은 왜 이토록 버거울까? 우리는 안정적인 삶과 안락한 미래를 위해 매일같이 노동하지만 그 '평화' 속에 안주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또다시 공허함을 느낀다. 이처럼 안주하는 삶의 허무를 가장 날카롭게 지적한 철학자가 바로 니체다.
니체의 철학은 마치 인간에게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는 듯하여 누군가에게는 가혹하고 힘에 버거울 수 있다. 그러나 어차피 태어난 이상 삶을 살아야 한다면 니체가 말한 대로 최선을 다해 자기를 극복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니체는 삶의 최고의 가치를 '생계유지'나 '안락함' 같은 외부적인 목적에 두는 것을 거부했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전투다.
내가 너희에게 권하는 것은 평화가 아니라 승리다.
-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가 비판하는 '노동'은 안락함과 안전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목적 없이 반복되며 개인을 안주하게 만드는 삶의 방식을 상징한다. '평화' 역시 이러한 상태에 만족하여 정체된 상태를 의미한다. 니체는 이러한 삶을 '최후의 인간'의 나약한 생존 방식으로 보았다.
반면 '전투'는 자신의 한계, 나태함, 그리고 기존의 낡은 가치에 저항하는 끊임없는 정신적 투쟁이며 이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행위다. 이 치열한 전투를 통해 얻어낸 '승리'만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자 가치라고 보았다.
결국 니체는 안락함과 안주에 머무르지 말고 자신의 잠재력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최고의 나를 실현하는 능동적인 승리감을 삶의 목표로 삼으라고 촉구한다.
니체는 이러한 치열한 투쟁을 지속하기 위한 동력으로 외부가 아닌 삶 그 자체에 대한 절대적인 긍정을 요구한다.
생에 대한 너희의 사랑으로 하여금 최고의 희망에 대한 사랑이 되게 하라.
너희의 최고의 희망으로 하여금 생에 있어서 최고의 이념이 되도록 하라.
아모르 파티. 즉 '나의 운명을 사랑하라'는 의미는 내 삶에 존재하는 모든 고통과 역경까지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능동적인 긍정이다. 이 '생에 대한 사랑'은 단순히 현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최고의 희망' 즉 '위버멘쉬'라는 가장 높은 이상을 향한 열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최고의 희망'이 바로 '최고의 이념(가치관)'이 되어야 한다. 결국 니체는 세상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낡은 도덕과 관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스스로 생각하고 극복하여 자기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것을 최고의 이념으로 삼아 스스로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을 살라고 말한다.
니체의 철학을 읽다 보면 그의 급진적인 개인주의와 연민 거부가 스스로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가차 없이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의문이 생긴다. 실제로 카뮈와 같은 후대 철학자들은 이 지점을 비판하며 '연대'라는 윤리적 개념을 주창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니체가 극단적인 언어를 사용했을 뿐 그의 핵심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극복하며 사는 삶은 그 개개인을 위해서도 훨씬 풍요로운 삶이다. 그리고 그 능력에는 개인차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인간을 계급화해서 나누자는 의미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능력의 차이를 인정하고 서로 더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모두에게 더 좋은 선택일 것이다.
결국 인생은 카뮈의 말처럼 부조리하다. 의미 없는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인간들의 고군분투야 말로 우리의 숙명이다. 이 고군분투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가장 의미 있게 살기 위한 방법은 바로 위버멘쉬에 이르는 고독한 길일 것이다.
물론 모든 인간이 니체의 기준으로 살 필요는 없으며 모두가 위대한 성과를 이룰 수도 없다. 하지만 니체가 가리킨 방향, 즉 자신을 끊임없이 극복하려는 투쟁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반감을 갖기보다는 오히려 환영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지원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 고독한 투쟁자를 환영하는 사회, 이것이야말로 니체의 철학이 우리에게 던지는 가장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