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진리를 원하는가?
우리가 철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다. 인생에 보편적 진리란 무엇이며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이 철학이다.
하지만 니체는 이 근본적인 전제에 질문을 던진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제기하는 자는 정녕 누구인가?
우리 안의 무엇이 '진리'를 원하는가?
- 프리드리히 니체
진리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자, 즉 철학자는 누구인가? 고대부터 철학자들은 본인들이 세상의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 질문을 던지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며 순수한 이성을 가진 존재라고 가정했다.
그러나 니체는 그 철학자 존재 자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들은 과연 진짜 객관적, 중립적인 존재인가? 그들은 특정한 본능, 선입견, 도덕적 편향을 갖고 있는 주관적 존재가 아닌가?
니체는 이를 통해 철학의 객관성이라는 신화를 깨뜨리고 모든 질문이 특정 관점에서 시작된 것임을 폭로한다.
또한 전통 철학은 진리를 최고의 선이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우리는 왜 이 진리를 원하는가? 인간의 진리에 대한 열망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니체는 그것이 삶의 고통과 혼란을 견딜 수 없어서 회피하고자 하는 본능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묻는다. 즉 삶을 긍정하고자 하는 의지가 아니라 삶의 고통을 거부하려는 의지에서 오는 것이다.
니체의 다음 질문은 더욱 도발적이다.
우리가 진리를 원한다고 인정하더라도, 왜 우리는 차라리 허위를, 불확실성을, 무지를 원하지 않는가?
서구 철학은 진리를 무조건적인 선으로, 허위, 불확실성, 무지를 악으로 간주한다. 니체는 이러한 도덕적 가치 평가를 부정하고 왜 진리를 허위보다 우위에 놓아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한다.
니체에게 삶은 끊임없이 변하는 생성과 해석의 과정이다. 이 유동적인 삶에서 불변의 진리를 고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삶은 복잡하고 고통스러우며 끊임없이 변화하는 유동적인 것이다. 매 순간 모든 진실에 마주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수도, 생존할 수도 없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서는 삶을 단순화하고, 때로는 잘못 해석하여 믿어버리는 허위나 오류가 필수적이다.
완벽한 확실성은 존재하지 않으며 삶은 항상 위험과 미지의 영역을 포함한다. 불확실성을 거부하고 완벽한 진리만을 원하는 것은 삶의 역동성과 변화를 거부하는 나약한 정신 상태를 의미한다.
결국 인간이 완벽한 진리를 원하는 것은 삶의 고통과 불확실성을 직시할 용기가 부족하여 편안하고 고정된 '진리'라는 허구적 확실성으로 도피하려는 태도이다.
니체에게 진리가 무조건적인 선이라는 가정이야말로 철학자들이 저지른 가장 위험한 오류다.
궁극적으로 니체는 삶의 조건인 허위와 불확실성까지도 기꺼이 포용하고 긍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 중의 누가 오이디푸스인가? 누가 스핑크스인가?
스핑크스는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다. 니체에게 이 스핑크스는 "우리는 왜 진리를 원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진리에의 의지' 그 자체이다.
오이디푸스는 그 질문을 푸는 자, 즉 철학자와 우리 자신을 상징한다. 그는 수수께끼를 맞혔으나 자신의 운명에 대해서는 피하지 못하고 절망에 빠지는 인물이다.
니체는 우리에게 경고한다. '진리에의 의지'에 대한 탐구 없이 맹목적으로 외부의 진리만을 따를 경우 세계의 모든 수수께끼를 풀더라도 자신의 본질과 동기에는 무지한 채 결국 자기 파멸적인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진리를 탐구하기 전에 우리가 누구인지, 왜 진리를 원하는지 자신의 내적 탐구를 먼저 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혜는 우리를 파멸시킬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니체는 모든 것의 근본을 파헤치는 철학자다. 우리는 과거부터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지만 정작 왜 우리가 진리를 탐구하고자 하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니체는 그 근본적인 질문을 시작했고 거기서부터 인간의 본격적인 탐구가 시작된다.
니체가 선의 이데아를 만든 플라톤을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서 알 수 있다.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일반인들이 알기 쉽게 풀어쓴 것이 성경이라는 비유를 감안하면 인간이 믿고 있는 철학과 종교의 대부분은 결국 인간이 고통스러운 삶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이것들에 의지했음을 알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고통의 회피는 이 생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며 그것은 결국 이 생이 아닌 다음 생 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점철된다.
인간의 삶이 지금이 아닌 사후를 살게 되는 것은 니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무교이지만 인생에 알 수 없는 어떤 큰 기운이 있다는 것은 믿는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의 의지대로 어느 정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삶을 긍정하는 자세로 임하며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때에 그 기운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하고, 남들이 믿으니까 믿는 그런 주체적이지 못한 삶은 자신의 인생을 직시하지 못하고 시류에 흔들리며 따라 사는 삶일 수밖에 없다. 자신을 먼저 알고 자신만의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뜻에 따라 사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 우리는 스스로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답을 구하는 탐구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