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척'은 소심함의 방어기제다

니체의 통찰과 나의 성찰

by selves

오늘 아침 니체의 글을 읽으며 '소심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니체는 스피노자 같은 철학자가 수학적 연역체계를 통해 철학을 완성한 것을 두고 그것이 자신의 소심함을 감추기 위해 만든 일종의 방어 기제라고 보았다. 누구도 논리로 반박할 수 없는 완벽한 체계를 구축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이 공격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해석이다.


소심함의 근원은 '자신의 부족함이나 약점이 타인에게 알려지거나 공격당할 수 있다'는 강한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외부에 단단한 갑옷(강한 척, 논리, 완벽주의)을 만든다. 겉으로 보이는 강함은 사실은 내면의 연약함을 숨기기 위한 보호 장치인 셈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소심함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공격받지 않기 위해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단련하고, 더 철저히 대비하는 태도는 역설적으로 자기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목적은 다소 어긋나 있을지 몰라도 그 노력 자체는 분명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나 역시 굉장히 소심한 사람이다. 겉으로는 강하고 단호해 보이지만 그것은 니체가 말했듯 나의 소심함을 가리기 위한 일종의 갑옷이다. 누군가 나를 쉽게 판단하거나 공격하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강한 사람’처럼 꾸미는 것이다.


그래서 강해 보이는 사람들이 사실은 더 여리고 마음의 문을 잘 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관계에서 따뜻함이나 감정적 친밀감보다는 논리와 우위를 선호한다. 친밀감을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위험'으로 인식하여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다.


또한 소심함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공감하고 부드럽게 위로하는 능력을 제한하기도 한다. 다른 사람을 보듬어주고 친절하게 말하는 행위를 자신을 낮추는 행위, 혹은 취약함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심함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을 읽고 사색을 한다고 해서 성격이 단숨에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말과 행동 뒤에 숨은 진짜 동기를 관찰하고 감정적으로 공감하지 못했던 순간을 돌아보는 일은 분명 변화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의도적으로라도 친절을 시도해 보는 작은 실험이 필요하다. 일종의 ‘행동의 재설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사람이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부터 변화의 가능성은 열린다. 하루에 하나씩이라도 기존의 틀을 깨려는 시도를 한다면 언젠가는 이 단단한 소심함의 껍데기를 조금은 벗겨낼 수 있을 것이다.


니체의 말처럼 자기 자신을 넘어서는 생각과 행동을 계속한다면 나 역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지 않을까. 지금은 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믿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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