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알려준 통찰
나는 오랫동안 범죄자가 없는 세상을 꿈꿨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좋은 사람들'만 모여사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꿨다.
이런 생각은 개인적인 취향으로 이어졌다.
조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서로 방해받지 않고 살고 시끄러운 파티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마음껏 축제를 벌이는 세상. 서로 다른 성향 때문에 마찰할 이유가 없는 모두가 만족스러운 '분리된 유토피아'를 상상했다.
이것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이 얼마나 순진하고 위험한 것이었는지 니체를 접하고서 깨달았다.
니체는 세상의 모든 것을 단정 지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선'과 '악'조차도 누구의 입장에서, 어떤 시대의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상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그의 관점을 빌리면 우리가 지금 '범죄자'라 부르며 배척하는 사람들, 즉 기존 질서를 파괴하는 이단아들은 어쩌면 세상에 꼭 필요한 존재일 수 있다. 그들은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하지만 그 존재 자체가 일반 사람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들을 직시하게 만든다. 그들의 파괴적인 행위는 기존의 관습과 윤리 도덕에 균열을 내며 이는 사회가 안주하는 것을 막고 새로운 성찰과 진보를 가져온다. 오히려 이들이 없으면 사회는 정체되고 부패하기 쉬우며 결국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기도 한다. 니체는 악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의 잠재력을 폭발시키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행위라면 긍정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역설했다.
극단적인 사례는 역사를 통해 명확히 드러난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고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는 당대에는 기존의 종교적 질서를 위협하는 이단아, 일종의 사회적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예수 역시 살아서는 사회의 관습에 반하는 행동으로 결국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이처럼 시대를 앞서간 과학자, 철학자, 종교인들은 당시의 주류 관습과 도덕에 반했다는 이유만으로 핍박받았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현재의 관습과 윤리 도덕에 매몰되어 그것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치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그것이 진실임이 밝혀졌을 때 우리는 그들을 '영웅' 혹은 '선구자'로 재평가할 뿐이다.
인간은 이상적인 삶을 꿈꾸며 많은 사회적 실험을 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공산주의다.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부를 나누어 갖고 경쟁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유토피아였다.
하지만 그 실행 과정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디스토피아의 전형이 되어버렸다. 왜일까?
인간이 만든 모든 제도와 사회에는 인간의 본능과 욕구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의 실패는 그 이상향 뒤에 숨겨진 지배층의 권력욕과 이기심이 발현된 결과다. 이 세상 어떤 인간도 한없이 이타적일 수 없다. 완벽함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상과 이기심을 가진 인간의 본능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인간이 만든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불완전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완벽한 유토피아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어쩌면 가장 이상적인 삶의 형태는 자연의 섭리대로 사는 것일지 모른다. 서로 경쟁하며 힘겨루기를 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며 힘의 원리대로 나아가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 말이다.
다만 여기에 국가와 사회가 개입하여 극단적인 약육강식으로 흐르지 않도록 최소한의 인간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 이것이 복잡하고 완벽하지 않은 인간 사회에서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형태일 것이다.
세상은 인간이 무언가를 인위적으로 완벽하게 만들려 할수록 오히려 더 꼬이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은 늘 이상적인 삶을 꿈꾸지만 세상은 어떤 특정한 목적 없이 그저 존재할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열린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삶에 대해 성찰하는 것이다. 인간만이 세상을 지배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과 우리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겸허하게 서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의 오묘한 섭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