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을 허락하는 용기

꾸준함에 대한 강박이 나에게 준 경고 신호

by selves

나는 스스로와 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려는 성향이 있다. 좋게 말하면 책임감이 강한 것이고 조금 솔직하게 말하면 강박에 가까울 때도 있다.


얼마 전 브런치 작가가 되면서 ‘매일 글 한 편을 쓰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3주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올렸다. 완성한 글을 바라보며 느끼는 성취감, 글을 쓰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는 내게 큰 에너지가 되었다.


물론 매일 무엇을 써야 할지 고민도 했지만 또 막상 다음 날이 오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며 자연스레 글은 이어졌다.


그런데 지난 토요일 아침, 몇 년 만에 코피가 났다. 놀라서 급히 지혈하고 쉬었지만 그 뒤로 평소보다 훨씬 큰 피로감이 몰려왔다. 실제로 피를 흘려서인지 아니면 코피를 계기로 ‘내가 요즘 너무 무리했나?’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돌이켜보면 달라진 건 매일 두어 시간씩 글을 쓰는 루틴이 생긴 것과 연말이라 조금 바빴던 것 정도였다. 평소 운동도 꾸준히 하고 나름 건강을 잘 챙기는 편인데 이 정도로 코피가 날 만큼 무리를 했던 걸까?


코피가 나고 주말에는 글을 쓰지 말아야겠다 생각했다. 매일 글을 쓰다가 주말에 이틀 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묘한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러고는 어젯밤 꿈을 꾸었다.


꿈에 대한 해몽을 읽다 보니 나의 상태가 이해되었다. 내 꿈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는데도 쉬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휴식을 받아들이는 데 서툰 사람이라는 신호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옳다고 판단한 일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니체의 철학을 접한 뒤로 조금 더 유연해지려고 노력했지만 타고난 성향을 완전히 바꾸기는 쉽지 않다.


명상, 독서, 일기, 운동으로 이어지는 모닝 루틴도 수년째 빠짐없이 해오고 있다. 생활이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아도 이런 루틴을 지키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안정감을 준다. 여기에 ‘매일 글쓰기’가 추가되면서 부담이 조금 커졌던 것 같다.


어렸을 적 피아노 선생님이 말씀하시길 40년간 피아노 선생님 하시면서 다른 아이들은 연습할 때 꾀를 부려도 나만 시키는 연습을 꼬박꼬박 다 했던 유일한 아이였다고 한다. 돌이켜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늘 곧이곧대로였다.


이런 성향이 장점이 될 때도 있지만 때로는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정신적 강박이 되기도 한다. 늘 긴장하며 살아가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오랜 시간 미국에서 전업주부로 지내다가 오랜만에 글쓰기라는 ‘성과가 보이는 활동’을 하게 되니 더 스스로를 몰아붙였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엇이든 싸움에는 휴식이 필요하다. 나와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하루 이틀 글쓰기를 쉰다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도 나도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 늦춰도 괜찮고 하루 비워도 괜찮다.


꾸준함을 지키는 것만큼 멈춤을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하다. 오히려 적당한 쉼을 통해 더 좋은 글과 더 건강한 마음이 만들어지는 법이다.


이제는 내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조금 바꿔보려 한다.

조금 더 힘을 빼고 여유를 허락해보려 한다. 세상을 지나칠 정도로 진지하게 붙잡기보다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더 오래, 더 건강하게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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