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삶의 의미를 찾아서
요즘 음악을 듣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노래도 AI가 만든 건 아닐까?”
그만큼 AI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예전에는 작사, 작곡가들이 영감이 떠오르지 않아도 생계를 위해 혹은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창작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간단한 콘셉트만 제시해도 AI가 곡을 만들어준다.
창작 스트레스가 줄어든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전문가’라는 역할의 필요성마저 흔들리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는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조차 감각만 있다면 누구나 곡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글쓰기, 그림, 영상, 디자인 등 인간의 감각을 기반으로 하던 일들마저 모두 AI의 손끝에서 구현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다움을 증명할 수 있을까?
아마 머지않아 미래에는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서’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만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국가가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사회가 온다면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다수는 더 깊은 공허를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
반면 소수의 창작열에 불타는 사람들은 예외일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들고, 그림을 그리는, 무언가를 꼭 해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생계도 경쟁도 아니다.
그저 하고 싶어서 하는 행위 자체다.
이 순수한 열망은 그 어떤 기술도 대체할 수 없다.
결국 미래 사회에는 가장 순수하게, 진심으로 하고 싶어서 일하는 사람들만이 일을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일이 사라진 삶은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사람은 일을 하지 않고도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까?
우리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사실 기술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사라졌을 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직업은 대부분의 사람에게 정체성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생계를 넘어 일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느끼고 그 일을 기반으로 삶의 틀이 형성된다.
취미는 그 틀 바깥에서 잠시 쉬어가는 공간일 뿐이다.
그런데 그 ‘틀’ 자체가 사라진다면 많은 이들은 자신의 정체성이 붕괴되는 불안을 경험할 것이다.
은퇴 이후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은퇴자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일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정체성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은퇴가 기본값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아마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고 나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미래 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색하고 철학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색은 결국 어딘가로 흘러가기를 갈망한다.
흐르지 않는 강이 썩듯 표현되지 않는 사유도 우리 안에서 무거워진다.
생각이 어떤 형태로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유는 삶의 허무를 채우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나 역시 몇 년 동안 책을 읽으며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생각을 밖으로 꺼내 ‘글’로 옮기기 시작하면서였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 안에 흐르던 사유를 세상과 공유한다는 뜻이고 그 과정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지 다시 발견하게 되었다.
삶의 의미는 결국 내가 세상에 무엇을 만들어 내놓는가에서 오는 것 같다.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형태는 중요하지 않다.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누구나 시도할 수 있는 창작이라면 글쓰기가 가장 가까이 있고 그래서 더 감사하다.
중요한 것은 완성도가 아니라 ‘이 세계를 향해 나의 창조물을 내놓는 일’ 그 자체다.
창조는 성취 이전에 존재의 표현이자 의미를 찾는 행위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부터라도 어떤 형태로든 창조하는 능력을 하나쯤 기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AI가 발전할수록 우리는 더 적극적으로 ‘나만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삶의 의미는 여전히 ‘스스로 만들어내는 무엇’에서 온다.
결국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나는 무엇을 만들어 내며 살아갈 것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우리의 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