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두 얼굴이 산다

냉철한 이성과 뜨거운 마음

by selves

내 안에는 극과 극을 오가는 두 얼굴이 산다.


흔히 '지킬 앤 하이드'라고 하면 평소의 온화함 뒤에 숨겨진 악한 본성이 드러나는 사람을 떠올린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다.


일상에서 나는 감정을 배제하고 이성적이며 냉정하게 대화를 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타인에게는 차갑고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분석하고 항상 흠을 찾아내며 비판하는, 철저하게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이 내 기본 모습이다.


그런데 뜻밖의 순간, 평소 내 사고방식과는 전혀 맞지 않는 타이밍에 눈물이 터져 나오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첫째가 중학교 합창단인데 근처 고등학교 학생들과 함께 합창 공연을 했다. 공연이 끝난 뒤 중학교 합창 선생님이 “지금 같이 노래 부른 고등학생들은 마스크를 쓰고 노래하던 코로나 시절의 제자들인데 마스크를 벗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니 너무 감동스러워” 라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그 감정의 파동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나 역시 주책맞게 눈물이 흘렀다. '고작 저런 이야기에?'라고 스스로 비웃으면서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이성과 감정이 완전히 분리된 느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원래 감동을 잘 받는 사람이다. 뻔한 영화의 결말을 이미 알면서도 눈물을 흘리곤 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는 “이런 신파라니” 하고 스스로 비판하지만 이미 눈물은 쏟아진 뒤다.


나의 이성과 감정은 극명하게 대비된다. 머리는 철저히 비판적이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뜨거운 감정이 솟구친다. 이 간극이 커서 눈물을 흘릴 때마다 가족들조차 당황할 때가 많다.


생각해 보면 나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런데 한때 나는 그런 나를 거부하려 애썼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약함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오랫동안 ‘일관성’을 중요하게 여겼다. 냉철하고 이성적인 캐릭터에서 벗어나는 눈물은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약점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감수성과 공감 능력을 억누르며 이성적이 되고자 하는 강박 속에서 살았다.


돌이켜보면 눈물이 많아진 것은 남편을 만나고 연애를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감정을 좀 더 분출하고 표현하게 되면서 내 기본 '냉정함'에 '눈물'만 추가된 느낌이랄까. 무표정으로 있다가도 재미있는 포인트에는 박장대소했다가 바로 정색하는 것처럼 나의 이성과 감정은 극단을 오간다.


하지만 깨달았다. 내가 이성적이고 싶다고 해서 완전히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감정적이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그렇게 될 수도 없다. 머리와 마음, 냉정과 감성, 둘 다 나다. 다만 그 간극이 클 뿐이다.


이제는 억지로 나를 하나의 틀에 맞추려 하지 않을 것이다. 철저하게 이성적인 ‘머리’와 뜨거운 감정을 품은 ‘마음’이 공존하는 것이 바로 나임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고 나 역시 그 다양한 사람 중 하나다. 나를 찾겠다는 평생의 숙제. 그 시작은 아마도 논리적이고 비판적인 '나'와 주책맞게 눈물 흘리는 '나'를 모두 끌어안는 것에서 비롯될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나이를 먹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