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의 긍정성과 그 한계
니체는 “깊이 있는 모든 것은 가면을 사랑한다”라고 말했다. 깊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을 온전히 이해해 줄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쉽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다른 모습의 자신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니체는 또 이렇게 말한다.
부드럽게 행해지는 일도 그것을 감추고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거칠게 가장하는 것이 좋은 경우가 있다.
이 문장을 읽으며 나는 놀랄 만큼 정확하게 나 자신을 설명당하는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은 선의를 받으면 마음에 빚을 진다. 나는 그 빚이 불편하다. 그래서 나의 호의를 오히려 퉁명스럽게, 혹은 거칠게 표현하곤 한다. 상대가 그것을 ‘호의’로 정확히 인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요즘 말로 하자면 츤데레에 가깝다고 할 수도 있겠다.
부끄러움 때문일 수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내 선의를 들키는 것 자체가 싫다. 더 정확히 말하면 상대가 그 선의를 또렷하게 인식해 부담을 느끼는 상황이 싫다. 나의 선의는 전달되기만 하면 충분하다.
오히려 그 친절이 ‘명확한 형태’로 상대에게 도착하는 순간, 묘한 수치심이 밀려오기도 한다. 나는 그저 마음이 흘러가는 대로 행동했을 뿐인데 나의 순수한 동기가 마치 ‘착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연출’처럼 느껴질 때 오는 당혹감 같은 것이다. 또한 내 친절이 너무 선명하게 드러나 상대가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볼 때면 내가 상대를 심리적으로 위축시킨 가해자가 된 것 같은 미안함이 수치심으로 변하기도 한다. 결국 이는 내 안의 가장 부드러운 알맹이가 나의 의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되고 오염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본능적인 저항인 셈이다.
니체는 이러한 태도의 바탕에 강한 자기 자신감이 있다고 본다. 자신의 부드러움과 선함은 자신만 알고 있어도 충분하다는 확신, 타인에게 이해받고자 하는 욕구보다 자기 내면의 진실을 지키는 것을 더 중시하는 태도 말이다. 그는 이렇게 자신을 오해하게 만드는 능력조차 일종의 정신적 우월함으로 보았다.
물론 나는 이것이 우열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세상에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흥미로울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이런 성격을 '강해 보이고 싶은 마음'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니체를 통해 그것이 나의 본질을 보존하려는, 나름의 몸부림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니체는 깊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진실을 숨기기 위해 가면을 쓴다고 말한다. 아니, 숨긴다기보다 그것이 자기 안에서 더 단단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거친 가면을 써서 사람들을 멀리하게 하고, 또 어떤 이는 지나치게 친절한 가면을 써서 누구도 그 내면을 의심하지 않게 만든다.
나는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니체는 이를 깊은 사람들의 긍정적인 전략으로 보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가면이 때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거대한 벽이 되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극심한 외로움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적지 않다. 깊은 내면을 드러내지 않고 '강함'이나 '나이스함'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진실한 소통을 회피하다가 연인과 반복된 이별을 겪거나 가족과 단절되는 고통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본다.
어쩌면 니체 자신도 이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는 인간의 심리를 이토록 예리하게 통찰했지만, 동시에 자신의 심연을 안정적으로 나눌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는 데에는 어려움을 겪었던 인물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것이 그의 사유를 더욱 날카롭게 만들었는지, 혹은 그의 삶을 더 고독하게 만들었는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말이다.
다행히 나는 남편이라는 친밀한 존재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이해받고 있다고 느끼기에 그만큼 외롭지는 않다. 그 때문에 나는 다시 세상 속에서 가면을 쓰고 살아갈 수 있다. 아무리 깊이 있는 사람이라 해도, 적어도 단 한 사람과는 가면을 벗고 심연을 나눌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혼자서만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니체를 읽다 보면 그의 통찰에 감탄하면서도 때로는 지나치게 극단적인 해석과 처방에 반감이 들 때가 있다. 세상에 완벽한 철학은 없을 테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체는 여전히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철학자다.
오늘도 니체를 통해 나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기쁘다.
이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가면은 나를 지켜주는 장치일까, 아니면 내가 더 나아가는 것을 늦추는 장벽일까. 이 질문을 품은 채 나는 다시 나의 가면을 쓰고 세상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