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너무 버거운 니체

강인함과 나약함을 모두 품는 철학을 꿈꾸며

by selves

어쩌면 나는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이성과 사유는 비교적 날카롭고 비판적인 편이지만 그 생각을 행동과 실천으로 옮기기에는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차가워 보일지 몰라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타인에 대한 배려와 연민, 동정이 뒤섞여있다.


니체는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운명을 긍정하는 강한 인간을 이야기했다. 그 논리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약자를 배제하는 세계가 과연 옳은가에 대해서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니체 역시 약자를 모두 배제하자고 말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의 철학은 분명 강자, 생명력, 상승하는 인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그 ‘강자’ 또한 결국 인간이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게 전진만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 안에는 수많은 본능이 공존한다. 니체가 찬양한 강한 의지와 생명력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부드러움도 있고 보호 본능과 타인을 향한 동정심도 포함되어 있다. 니체는 이러한 감정들이 인간의 상승을 가로막는 방식으로 작동할 때 그것을 경계하고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보았던 것 같다. 하지만 이 역시 인간의 본질적 감정인데 그것을 억지로 제거하려는 시도는 또 다른 억압이 될 수 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이 복잡한 감정의 층위 아닐까. 만약 인간이 짐승과 다르지 않다면 강한 생명력과 약육강식의 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렇지 않다. 인간이기에 본능과 이성, 강함과 약함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물론 인간의 생명력을 억압하고 죄의식과 금욕을 강요하며 약한 본능만을 미덕으로 강조해 온 기독교 도덕에 대한 니체의 비판은 타당하다. 르상티망(원한 감정)에 기반한 노예 도덕이 어떻게 인간을 약하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그의 통찰은 예리하다. 하지만 그것을 극단적으로 뒤집어 강함만을 절대화하는 방식 역시 또 다른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지점, 그 긴장을 어떻게 유지하고 조율하느냐에 있는 것 같다.


인간은 참으로 복잡한 생명체다. 그래서 수많은 종교와 철학이 존재해 왔지만 지금까지도 단 하나의 답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만큼 인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나는 이 다양성을 모두 포용하면서도 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철학을 꿈꾼다. 강한 생명력과 의지를 긍정하면서도 동시에 인간 안에 존재하는 부드러움과 공감 능력까지 인정하는 철학. 그것을 찾아가는 것이 나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과제가 아닐까.


물론 그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어쩌면 우리는 계속해서 자신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인간이라는 종족의 특성을 탐구하는 과정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니체의 철학은 분명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온전히 살아내기에는 우리 대부분이, 어쩌면 니체 자신조차도 너무 인간적이었는지 모른다. 철학이 반드시 큰 사람, 위버멘쉬만을 위해 존재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자신의 나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안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좀 더 현실적인 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이런 감각만 막연하게 느낄 뿐이지만 인간의 나약함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위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사유가 가능하다는 믿음만은 놓치고 싶지 않다. 언젠가는 그런 철학을 만날 수 있기를, 혹은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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