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를 알면서도 우리는 또 사람을 만난다

사람들이 모이고 대화하는 이유

by selves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나면 늘 작은 후회가 따라온다.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어떤 만남이든 하나쯤은 마음에 걸리는 말이 남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회를 알면서도 우리는 또 만난다. 왜일까.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그 안에는 여러 겹의 욕구가 섞여 있다.


가장 먼저는 위치 확인이다. 나라는 존재는 혼자 있을 때보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더 또렷해진다. 나의 말투와 태도에 돌아오는 반응을 보며 나는 사회 속에서의 내 위치를 파악하게 된다. 모임은 일종의 사회적 좌표를 확인하는 자리다. 누가 대화를 주도하는지, 누가 인정받는지, 누가 자연스럽게 주변으로 밀려나는지. 그런 장면들은 의도하지 않아도 드러난다. 불편하지만 그것 또한 모임이 우리에게 건네는 정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대부분의 모임에는 이미 어느 정도 위치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누가 중심인지, 누가 영향력이 있는지 대체로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굳이 그런 자리에서 자신의 낮은 위치를 확인하는 일은 기분 상하는 경험이 아닐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자리에 계속 간다.


아마 인간은 절대적인 위치보다 상대적인 위치를 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은 단순히 “내가 최고인가”만 확인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이 모임 안에서 내가 완전히 주변인인지, 몇 명과는 연결되어 있는지, 내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작은 자리가 있는지를 함께 살핀다. 완전히 바깥이 아닌 이상 사람은 그 안에서 자기만의 자리를 발견한다.


또 하나의 이유는 인간의 위치가 항상 같은 곳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모임에서는 중심인물이지만 다른 모임에서는 조용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직장, 친구, 가족, 취미 모임처럼 서로 다른 공간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위치를 갖는다. 한 자리에서 약간 밀려난 느낌이 들더라도 삶 전체의 관계망 속에서는 그 균형이 맞기도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에게는 지위 욕구와 소속 욕구가 동시에 존재한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어디엔가 속해 있고 싶어 한다. 때로는 높은 위치에 있지 않더라도 그 집단 안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한 안정감을 느끼기도 한다. 인간이 무리 속에서 살아온 존재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내가 이 집단 안에 속해 있다는 감각을 확인한다. 내 생각이 공감받고 인정받는 순간의 기쁨, 우리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동질감. 이런 감각들은 생각보다 강력한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타인과의 교류는 또 다른 의미에서 자극이기도 하다.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의견과 관점을 접할 때 그것은 나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신선한 충격이 된다. 낯선 생각은 때때로 나를 불편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반대로 내 생각을 말로 꺼내는 것은 일종의 배설과도 같다. 내 안의 생각을 밖으로 내보낼 때 느끼는 해방감, 그리고 그 말에 대한 반응과 피드백은 감정의 순환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할 때 도파민이 분비된다는 연구도 있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이야기하게 되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때로는 미묘한 경쟁과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 치열한 확인의 과정에서 생겨난 말의 파편들이 만남 뒤에 작은 후회라는 이름으로 남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인간관계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여전히 정보 교환이다. 지금은 AI가 많은 정보를 제공하지만 인간은 오랫동안 대화를 통해 정보를 공유해 왔다.


사람들이 모여 가십을 나누는 행위도 단순한 잡담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꽤 복잡한 정보 교환이 이루어진다. 저 사람은 믿을 수 있는가, 어떤 능력을 가졌는가, 어떤 태도로 사람을 대하는가. 인간은 말의 내용만 듣지 않는다. 눈빛과 표정, 말투와 반응 같은 언어 너머의 신호를 읽는다. 그래서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일은 결국 사람 자체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친절한 인사와 스몰토크도 결국 "나는 당신의 적이 아니다"라는 신호 교환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은 서로 신뢰를 확인하고 관계를 만들기 위해 만나고 대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 같은 극 I형 인간에게는 혼자 좋은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깨닫는 순간의 만족감이 훨씬 크다. 그렇다고 평생 완전히 고립되어 살아가라고 한다면 그것 역시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가족이라는 최소한의 정서적 안전 기지가 전제된다면 나는 꽤 오랫동안 혼자서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친한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고 감정을 교류하는 일은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이다. 그 안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감정의 교류와 기싸움이 어떤 면에서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 속의 작은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인간은 역시 복잡한 존재다. 어떤 한 가지 조건만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닌 것 같다. 다양한 방식의 만족이 함께 채워질 때 삶은 조금 더 충만해진다.


그래서 어쩌면 중요한 것은 너무 고립되려고 하지도, 너무 소속되려고 하지도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완전한 고립은 인간으로 살아가기에 한계가 있고 과도한 사회성은 정신적으로 피곤해진다.


그 사이 어딘가. 타인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완전히 단절되지 않는 자기만의 균형점을 찾는 것. 그 균형 위에서 자기 생각과 가치관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 그리고 만남 뒤에 작은 후회가 남을 것을 알면서도 다시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 일. 어쩌면 그 반복되는 과정 자체가 바로 인생이라는 여정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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