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너나들이

다른 사람 돌아보기

by 국화향기

‘ 교사라고? ’

호감이든, 호감이 아니든 상대편에게 이런 생각들이 조금이라도 읽힐라 치면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그 사람과의 거리를 좁히는 것에 겁을 먹고 멀찍이 물러나고 만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친분을 쌓거나 나를 드러내는데 소극적이 된다. 굳이 스스로 다가가는 경우는 제외하더라도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는 경우에도 나는 선뜻 곁을 내어 주지 못한다.

물론 개인적인 성향의 차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나의 경우에는 대체로 내가 가진 직업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다. 교사라는 직업에 대한 도덕적 기대감도 조금 부담스럽고, 또 이를 의식하여 부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되는 나 자신도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같은 처지인 교사들과의 만남만을 주로 하게 되는 편이다. 같은 처지다 보니 우선 그들과의 만남에서는 생각 따위를 읽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그리고, 서로를 향해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필요가 없다는 점이 그 이유일 것이다.


교사들에게는 우리들만 느끼는 이중적인 잣대가 있다.

‘교사라고 뭐가 달라?’

‘교사가 뭐 저래?’

교사는 특별히 다르지도 않고, 어떤 면에서는 다른 이들보다 세상살이에 많이 부족한 면이 있다. 그러나 끊임없이 사람들의 눈에 도덕적 잣대로 심판받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나는 싫다. 어쨌든 등등의 이유로 다른 사람과의 만남에 무척이나 소극적인 편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 『좀 다르게 살아보고 싶다』 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한 후에는 생각을 조금 고쳐먹고 있다.

말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졌다.


내가 효진 씨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 보호사였다. 얼마 지난 후 그녀는 도배 기능사가 되었다. 지금은 건설사 하자 보수 관리 사무직으로 들어갔다. 그 전에도 어린이집 보육교사, 병원 사무직 등등 그녀의 직업 이력은 다방면에서 참으로 화려하다. 그리고, 그녀는 목요일 저녁마다 나와 함께 가야금 병창 수업을 듣고 있다. 넘쳐나는 그녀의 에너지가 궁금해서 왜 그렇게 다양한 직업에 도전을 하냐고 물어보니 자격증 30개 따기가 자신의 목표란다. 건설사 사무직으로 들어간 후에도 그녀는 또 다른 자격증에 도전을 하려고 탐색 중이라고 했다. 나이도 적지 않은 40대 중반이다. 솔직히 처음에 효진 씨는 무엇이든지 파이팅과 의욕이 넘쳐서 조금 부담스러운 사람이었다. 예정에도 없던 가야금 곡 거리 (책거리에서 빌려온 말) 후에 갑자기 맥주 약속을 잡아서 곤란하게 한다든지, 모임 시에는 자신의 이야기만 장황하게 늘어놓아 피곤하게 하는 등.. 나와 확실히 다른 취향의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허풍처럼 말하던 30개의 자격증에 대한 꿈을 하나하나 이뤄가고부터 조금씩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올해 8월이 되면 방송 댄스를 시작한 지 꼭 3년째가 된다.

댄스를 배우러 다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50대 언니를 한 명 사귀게 되었다. 일부러 사귀려고 노력한 것은 아니고, 집으로 돌아가는 방향이 같아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댄스 교실에서 남보다 더 반갑게 인사를 하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들은 가벼운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리고, 그것들의 대부분은 금방 소비해서 없어지는 시시껄렁한 잡담들이다.


예를 들어,

“ 오늘은 다른 날보다 몸이 더 힘드네요.”

“ 오늘 댄스 음악 좋지 않았어요?”

“ 머리 어디서 하셨어요? 예쁜데요.” 등등


그러나, 가끔 언니와 나누는 그런 이야기들 중에는 바로 소비되지 않고 머릿속에 남는 것들이 있다.

“나 5킬로만 더 빼고 나이트 가서 신나게 흔들고 싶다. 남자들이 줄을 서겠지.”

“나 내년에는 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

“나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어.”


나에게 그것들이 남는 이유는 그녀가 50대이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20대나 30대 같은 50대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 내 눈에는 그냥 딱. 더도 덜도 없는 50대 아줌마다. 그게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하면, 내 기준으로 그녀는 무엇인가 꿈을 꾸기에 몸도 마음도 너무 늙어버렸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무리 살을 많이 뺀다고 해도 그녀에게 연예 감정으로 이끌려 구애를 할 사람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지금 이것저것 공부를 시작해서 그것들을 딱히 써먹을 방법도 별로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안타까움인지 못된 비웃음인지 알 수 없으나, 그런 말들은 왠지 소비가 되지 않고 대화가 끝난 후에도 머릿속에 남았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내가 가진 감정이 점점 하나의 감정으로 변해가는 것이었다.

바로 그녀의 당당함, 나이를 의식하지 않고 도전하는 열정.. 등등에 대한 부러움으로 말이다. 그런 부러움으로 인해 처음에는 민망하게 생각되던 언니의 과감한 댄스복도 어느 순간부터는 멋지다는 생각마저 들게 되었다. 항상 외모에 대해 자신이 없어 사진 찍기를 싫어하고, 새로운 도전에 미리 겁을 먹는 나와는 분명히 다른 성향의 사람이지만 나는 점점 언니에 대한 호감으로 더 궁금해졌다.

어떤 사람일까?


요즘에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의 생각들도 처음보다는 조금 달라졌다.


예를 들어, 『이중 잣대』라는 것은 남이 나에게 들이댔던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에게 들이댄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지레 겁을 먹고 뒷걸음치기에 바빠 직업 때문에.. 어쩌고.. 하며 미리 방어막을 쳤는지도 모른다는 생각.

내가 그녀들에게 그러했듯이 그들도 내가 “어떤 사람일까?” 가 단순히 궁금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운동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신호를 기다리며 운동에 지친 다리를 좀 쉬게 할 겸 건널목 사고 방지 기둥에 몸을 기대고 쪼그려 앉아 있으니 웬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건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네?”

“?........ ”

“난 거기에 그렇게 무방비 상태로 그렇게 쪼그려 앉아 기대고 있는 사람을 나 빼고 처음 봤거든요?”

“..........? ”

“운동하느라 힘든가 봐요. 난 서울에서 이사 왔어요. 지금은 운동 삼아 걸어서 마트에 가고 있고요. 그럼, 담에 또 봐요”


내게 신선한 충격을 남겨 준 그 낯선 사람은 어느새 총총히 신호를 건너고 있었다. 잠시 좀 전의 내 모양새를 되돌려 기억해 보고 지금 당황하여 서 있는 내 모습을 보니 푹~ 하고 실소가 터졌다.


그녀도 그냥, 갑자기, 그때,

내가 궁금해졌을지도 모른다.


너나들이 : 서로 ‘너’, ‘나’ 하고 부르며 터놓고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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