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촌을 어슬렁거리다 냉면이 먹고 싶어 유플렉스 사거리에 위치한 육쌈냉면에 갔다. 바로 옆에 평양냉면 집도 있었지만, 고기도 먹고 싶었다.
2년 전만 해도 신촌 유플렉스 사거리는 고쌈냉면과 평양냉면 양강체제였다. 평양냉면은 1층이었고. 고쌈냉면은 맞은편 건물 2층에 있었다. 나는 고쌈냉면을 좋아했다. 적당히 익혀나오는 숯불고기와 얼음이 동동떠있는 육수에 쫄깃한 면발이 맛있어서 자주 갔다.
어느날 평양냉면 바로 옆 지하에 육쌈냉면이 들어섰다. 신장개업 현수막을 내걸고 요란하게 전단지를 돌리고 있었다. '바로 옆에 냉면집이 두 개나 있는데 무슨 깡으로 저리 차린 걸까' 의문이 들었다. 당시엔 신촌 상권도 쇠락길이라는 말들이 많았다. '분명히 기똥차게 맛에 자신이 있는 걸꺼야' 하는 생각에 한 번 들어가 봤다.
맛은 끔찍했다. 면은 불어있었고 육수도 밍밍했다. 왠만한 건 맛있게 잘 먹는 나인데 최악의 냉면이었다. 너무 짜증이나서 먹자마자 블로그에 '곧 망할 신촌 냉면집'이라고 악성 후기를 갈겨댔다.
그런데 이상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고쌈냉면에 손님이 눈에 띄게 줄었다. 갈 때마다 밖에있는 대기 의자가 꽉 차 있을 정도였는데 점점 한산해졌다. 결국 고쌈냉면은 문을 닫았다. 지금은 덮밥집이 들어섰다.
갑자기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주말을 맞아 조지 실버만의 '입소문을 만드는 100가지 방법'을 읽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종일관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제품의 퀄리티라 주장했다. 마케팅 예산을 아무리 쏟아부어도 제품이 좋지않으면 잘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당연한 말을 참 길게도 썼다. 그래서 좀 정독하다가 뒤에는 거의 날림으로 읽었다. 상품의 퀄리티가 좋아야 충성심 높은 팬들이 생기고, 이들이 자발적으로 입소문을 내주면서 순식간에 '대박'이 난다는 것이 조지의 주장이다.
사업의 성공에 있어서 핵심 제품의 질은 매우 중요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것만으로 성공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가. 조지 아저씨의 말대로 마케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제품의 '질'이라면 육쌈냉면이 망하고 고쌈냉면은 더 잘됐어야 했다. 하지만 더 맛있게 냉면을 잘하던 고쌈냉면이 망하고 육쌈냉면이 살아남았다.
고쌈냉면 실패의 이유는 여러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2층과 지하1층이라는 지리적 차이, 유동인구가 많은 위치기 때문에 충성고객보다는 일회성 고객이 많다는 점, 육쌈냉면 사장님이 배달의 민족 마케터 뺨싸대기를 날릴 정도로 마케팅의 귀재였다던가.
확실한 건 고쌈냉면이 육쌈냉면보다 맛있었다는 것이다. 그것도 매우. 누군가는 내 혀가 이상한게 아니냐고 지적할 수 있겠지만 복수의 친구들도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조지 아저씨가 책에서 주구장창 강조했던 마케팅에서 제품의 질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은 적어도, 신촌 사거리의 냉면집 경쟁에서는 적용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경영학을 전공했지만 경영학이 싫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로 느껴졌다. 당시엔 그랬다. 전략기획 과목 시간에 프랑스의 '비방디(Vivendi)'를 사업 다각화의 성공적인 사례로 배웠다. 수도회사였던 비방디는 사업 다각화와 여러번의 인수합병을 거치며 방송, 통신, 게임 산업 등에 진출했고 지금은 전혀 다른 미디어 그룹으로 발전했다.
그럼 리스크 분산과 시너지 창출을 위한 사업 다각화가 사업 성공의 모범 답안이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에 대한 반례를 또 수업 시간에 배운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사업 다각화의 최근 국내 실패 사례만 해도 '까페베네'와 '한경희 생활과학' 등이 있다. 웹에서 '사업 다각화 실패'라고 치면 나오는 사례들도 수두룩하다.
성공한 기업인을 만나서 실제 진행 중인 사업을 컨설팅해주는 과목을 들은 적이 있다. 컨설팅을 어떻게 해주고 얼마나 매출을 증진시켰는지는 기억도 안나지만 대표님의 말은 기억이 난다. 자기가 '호랑이의 눈(eye of tiger)'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요식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에 고깃집에서 불판을 닦는 것부터 시작했고, 자기가 나고자라 가장 잘 아는 지역에서 고깃집을 오픈했다. 그리고 여는 족족마다 대박이나서 나를 만났을 때는 그 지역에서 10곳이 넘는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체대 출신이었던 대표님이 경영학 이론에 능통했을 리는 없다. '그냥 여기다 하면 되겠다' 해서 가게를 차렸다고 했다. 지금은 그 때보다 회사 규모가 훨씬 더 커졌고 미국에도 진출했다.
이런 걸 또 정립한 경영학 이론이 있다. 대표님이 언급했던 '호랑이의 눈'은 창업자의 '동물적 감각(animal spirit)'이라는 용어로 설명된다. 데이터나 통계, 이론적인 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창업자만의 직감이 가장 중요하다는 내용이다. 자신만의 분야에서 오랜 기간 종사하며 갖게 된 직감과 통찰, 이것이 사업 성공의 열쇠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에대한 반례도 있다. 펜실베이니아 와튼스쿨 애덤 그랜트 교수가 쓴 '오리지널스(Originals)'가 그것이다. 31세에 경영학 분야에서 세계최고인 와튼스쿨 교수가 됐고, 투자자로서도 이름을 날렸던 그가 보기에는 평범하다고 할 수도 있는 와튼스쿨 재학생들이 들고 온 사업계획서를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창업가들이 관련 분야에 종사했던 경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에 사활을 걸려고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사업은 대박이 났다.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중 하나로 꼽히는 '와비파커' 이야기다. 애덤 교수는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비슷한 사례들을 엮어 창업자의 평범한 사람도 사업을 성공할 수 있다는 내용의 책을 썼다.
창업을 하면 10곳 중 1곳 정도가 잘 된다고 한다. 명쾌한 정답이 없기 때문에 더 어렵고, 힘든 거 같다. 명망있는 학자가 다양한 사례들을 분석해서 내놓은 이론에 대한 반례는 또 무궁무진하게 많다. 사업이 이론과 통계,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거라면 교수님들이 사업하면 다 잘될 것이다. 결국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사업을 어떻게 하느냐 것이다. 수많은 이론과다양한 사례들은 거기서 파생하는 수많은 의사 결정과정에서 각각의 결정을 뒷받침해주는 논리가 된다. 그래서 지금은 대학 때도 안 읽던 경영학 관련 책과 글들을 많이 읽으려고 한다.
육쌈냉면은 여전히 끔찍했지만 사람은 많았다. 사장님이 애니멀 스피릿을 갖고있다는 말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