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 집의 TV 바꾸게 되어 기존의 TV를 당근마켓에 내놓기로 했다. 당근마켓 해비유저인 내가 그 일을 도맡았다. 몸은 경주에 있지만 서울에서 물건을 팔 수 있는 당근마켓. 우리 집의 오랜 벗이었던 50인치 TV를 5만 원에 내놓으면서 가족들은 다들 아깝지만 버리는 값보다 낫다며 빨리 구매자가 나타나길 바랐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 네고를 원하는 두 명의 고객 중에 한 명이 당장 오늘 밤에라도 가지러 가도 되냐고 묻는다. 부모님과 소통하고 주소를 남겼다. 그때부터 나의 쓸데없는 걱정이 시작됐다. '이 밤늦은 시간에 혹시 엄마 혼자 사람을 만나 거래한다면?' '우리 집 주소가 노출되고 집 안에까지 들어와서 TV를 가져갈 텐데 그래도 괜찮나?' '혹시 사기꾼이거나 부모님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라는 상상 따위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다행히 아빠가 퇴근하셨고, 약속한 시간에 구매자가 와서 가져갔다고 카톡이 왔다. 나는 그제야 안심했다. 그런데 불과 한 시간 뒤에 구매자가 TV 화질이 안 좋다며 반품을 한다고 연락이 왔단다. 부모님께 말로는 '그 사람이 물건 다시 갖다 주는 게 힘들지, 그냥 반품받아줘요~'라고 답변했지만 다시 내 마음은 피곤해졌다. 혹시나 '해코지 당할까 봐' 반품도 그냥 해주자는 나의 마음을 보며 '나는 성악설을 믿고 있나?' 의심이 들었다.
나의 걱정 까르마는 어렸을 때부터 존재했다. 언제부터였는지, 무엇으로부터 시작된 건지 모르지만 나는 어렸을 적 아빠 차를 타고 육교 아래를 지날 때, 터널을 지날 때 항상 무너져서 깔리는 상상을 하곤 했다. 무사히 빠져나와서야 '휴, 다행이다' 하며 안심했다. 비행기를 타도 무사히 착륙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마다 차가 정지선에 서는지 보고 나서야 안심하고 건너갔다. 성인이 된 지금은 어렸을 적보다는 많이 담담해졌다. 나는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것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누가 죽는걸 눈앞에서 본적도, 주변에 그런 경우를 들은 적도 드물지만 '탈 것'에 대한 두려움은 나에게 계속 존재했다. 그래서 나는 평생 운전면허 따위 따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어찌어찌 20대 백수 시절에 40대 인생 선배님의 말을 듣고 용기를 내어 면허는 땄다. (한동안 장롱면허였지만)
탈 것에 대한 걱정 말고 사람에 대한 걱정도 많았다. 엄밀히 따지면 걱정보다는 '안 좋은 상상력'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일면식도 없는 반 친구들을 보며 저 친구와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상상을 하곤 했다. 또는 반면에 마음에 드는 이성친구와는 우연을 가장한 로맨스를 상상했다. 흔히 말하는 하이틴 드라마 소설을 쓰고 앉아있었다. 나에겐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최악이든, 최고이든 나의 상상력은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내가 상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의 이 상상력이 나를 좀먹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 이후론 내가 어떤 걱정을 하기 시작하고 최악을 염두할 때면 '내 상상력은 그대로 된 적이 없지' 하며 나를 안심시켰다. 아마 당근마켓 거래도 '별일 없이' 반품을 했다는 엄마의 카톡이 온다면 나의 경험치에 +1이 추가될 거다. 당근마켓을 만만히 보면 안 될 테지. 암.
돌아보면 우리 엄마도 참 걱정이 많았다. 특히 자식이 잘못될까 봐 하는 그런 걱정. 내 기억 속에 엄마는 PC방은 나쁜 아이들만 가는 그런 곳이었다. 거길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공부 못하는 아이들과 친구 하는 것도 경계했고, 뉴스를 볼 때면 더욱 걱정은 늘어갔다. 엄마는 칭찬보다는 엄하게 벌해서 바른 길로 가게 만들었다. 지금 보면 엄마는 걱정이 많아서 많은 경험을 못 누리고, 혹은 포기하고 살아온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그런 엄마를 닮아서 참 조심스럽게 살아온 것 같다. 그런데 신기한 게 동생들을 보면 청소년기 방황하다 자퇴도 하고, 해외에 나가서도 살아보고, 참 많은 경험을 하며 자랐다. 그래서 나는 성인이 되고 나서야 해보고 싶은걸 마음껏 엄마 몰래 다 해본 거 같다.
오늘 아침 명상을 하면서 제목에 쓴 것처럼 나는 쓸데없는 걱정을 너무 많이 하는데 내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에너지도 아니고 부정적인 에너지를 나 스스로 생산해내고 있는 거였다. 그래서 피곤하구나 싶었다. 명상할 때는 호흡에만 집중하면 머리가 쉬어지는데, 쓸데없는 비디오를 머릿속에 틀고 있으니 쉴 수가 없었다. 머리만 피곤한 게 아니고 마음도 힘들어지는 안 좋은 습관. 나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내가 지금 어떤 생각과 마음인지 잘 살펴야 한다. 살아있는 것도, 죽는 것도 두렵지 않은 그런 상태로 가기 위해 지금에 깨어있어야겠다. 미래에 대한 걱정은 미래의 나에게 맡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