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長考)'에 빠진 중국
얼마 전 미국의 연준 총재인 재닛 옐런이 "올해 안에는 금리 인상을 할 것이다"라고 공언한 것을 보고 적잖이 놀랐습니다. 한 나라의 중앙은행 총재라면 자신의 말에 매번 (심하다 싶을 정도로)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한국은행 총재만 봐도 그렇습니다. 콱콱 찔러서 뭐든 하나 건져보자는 의도로 날카롭게 쏘아 붙이는 기자회견에서 이주열 총재의 답변은 누가 봐도 정제되어 있고 한쪽 방향으로 기울어져 있지 않습니다. 단어는 물론 말하는 뉘앙스마저도 추측성 루머를 불러올 수 있는 게 시장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죠. 하물며 미국의 중앙은행 총재가 그걸 모르겠냐는 겁니다. 옐런의 발언에서 'Patient'가 삭제되었느냐 아니냐에 따라 국제 금융 시장은 요동을 칩니다. 옐런 의장이 확실한 방향성을 가진 말을 했을 때는 그만한 의도가 행간에 숨어 있다는 뜻입니다.
우연의 일치 일까요? 옐런이 금리 인상을 주창하며 강경 대응을 벌인지 며칠 지나지 않아 중국 증시는 8년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게 됩니다. 방송에 나왔던 한 전문가의 얘기를 빌리자면, 중국 증시 종목 당 상하한가 변동폭이 -10%인데 지수가 8% 넘게 떨어졌으면 그냥 "지수가 하한가를 맞았다"라고 표현해도 상관없을 정돕니다. 그런데 또 공교롭게도 상해종합지수가 8% 이상 급락한 원인 중 하나로 외국인의 투매가 꼽히고 있습니다. 위험자산에 투자했던 자금이 빠져나갔다는 건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작용했다, 즉, 달러화 강세가 가속화됨에 따른 움직임이었다는 시장의 해석입니다.
미국의 의도를 의심하게 되는 시발점은 바로 이 시점입니다. 음모론이자 '소설'의 일종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옐런 의장이 이토록 강력하게 금리 인상을 밀어 붙이는 것은 중국을 향한 '화폐전쟁의 서막', 선전포고일 수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을 '눈엣가시'처럼 느껴졌던 걸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조만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강대국으로 등극할 것이라는 얘기가 이미 오래전부터 돌고 있었죠. 미국 입장에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국이 곱게 보일 리 없겠지만, 그렇다고 직접적으로 제재를 가하는 것도 마땅치 않습니다. 군사적인 카드는 물론이고 외교적인 방법도 완강한 중국 앞에서 큰 효과를 내기가 쉽지 않죠. 현재로서 미국에게 중국과의 피할 수 없는 대립을 우세로 이끌어 줄 카드는 경제적 압박입니다.
경제적 압박의 방법으로 미국은 다양한 노력을 해 왔습니다. 대표적으로 얼마 전까지 화두가 됐던 '위안화 절상' 논란이 있을 것이고, TPP에 우리나라와 일본을 끌어들이면서 중국에 간접적으로 통상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죠. 물론 '세계의 공장'이자 가장 큰 소비 시장인데다 통치 이념도 확연히 다른 나라인 중국에서 그런 방법은 제대로 먹히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시진핑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중국 경제의 양적 팽창이 조금씩 사그라들면서 중국 정부가 부양책을 꺼내야 할 필요가 생겨났고, 증시 부양 역시 선택이 아닌 필수 요소화 되었습니다. "시장은 벌려 놓고 정작 시장 논리는 따르지 않는다"는 국제적인 비난을 무릅쓰고 중국 정부는 직간접적인 부양 정책을 통해 중국 증시의 가파른 상승세를 연출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환호하며 몰려 들었고 글로벌 시장은 중국 증시의 눈부신 선전을 연일 탑픽 뉴스로 다뤘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빛'이 아닌 '그림자'를 더 짙게 드리우는 과정이었을지 모릅니다. 어떡해서든 중국의 국력이 뻗어나가는 것을 제한하고 싶은 미국으로서는 절호의 찬스가 온 겁니다.
거의 모든 시장 참여자들은 누가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만 제기해도 안전자산으로 눈을 돌립니다. 연내 금리 인상이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가 돌았던 지난해 말부터의 경향을 보면 기축통화인 달러 자산에 돈이 쏠리는 통에 달러를 한참 풀고도 달러 강세가 나타나는, 일종의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미국의 중앙은행 총재가 '연내 인상'이라는 쐐기를 박습니다. 단기적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이 안전자산으로 더 쏠리게 되겠죠. 중국의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중국증시는 대표적으로 위험한 자산인 거죠. 중국 경제 규모도 커지고 위안화도 국제 결제 시장에서 성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안전과 위험 사이에서 상해종합 상장사들은 아직도 매우 위험한 모험에 속합니다. 그러니 "안전자산으로 가자!"는 모토 아래 뭉친 투자자들이라면 제일 먼저 중국 증시에 투자한 자금부터 인출하려고 할 거고요.
물론 중국증시에서 외국인 투자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개인 투자자에 비하면 작습니다. 개인 비중이 80%가 넘는 중국증시에서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진다고 해서 직접적으로 큰 타격이 되진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나라 증시보다는 말이죠) 다만, 외국인 자금의 '엑소더스'는 직접적인 하락보다 더 큰 '내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개인 투자자의 멘탈을 건드리는 것이죠. 주식 투자를 직접해 보신 분이라면 공감하시겠습니다만, 개인 투자자의 최대 약점은 멘탈 컨트롤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투자 관련 정보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 문제지만, 각종 언론이나 소문을 듣는다 한들 이성적으로 대응하기 보다는 공포나 탐욕에 빠지는 케이스가 더 흔합니다. 중국증시의 최대 약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단기적으로 증시를 하락시킨다면, 중국 개인 투자자들은 '멘붕'에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중국 정부가 "우린 괜찮을 거야"라며 부양책을 쏟아낸다 하지만, 100% 국가 통제하에 있는 시장이 아닌 이상 개인들은 '본전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거죠. 중국증시에 투자한 개인들 중 일부만이라도 공포에 질려 투매하게 된다면 이미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지게 됩니다. '내 돈이 사라진다는데 정부의 부양책이 알게 뭐야' 라는 공포가 시장을 안에서부터 무너뜨리는 겁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이 한 일이라곤 옐런 의장의 입을 통해 금리 인상 시그널을 '강하게' 했다는 것 밖에 없습니다. 미국 입장에서는 '헬리콥터 벤'이 풀어 놨던 엄청난 유동성을 거둬들여야 하는 명분이 충분합니다. 정치적으로 봐도 벤 버냉키가 아닌 재닛 옐런이 '뒷수습'을 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입니다. 주변 주요국들은 "세계 경제가 이렇게 어수선한데, 미국이 금리를 올려서 되겠느냐"고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금리 인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특히 중국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죠. 중국 경제가 완전히 무너지는 건 미국에게도 결코 좋을 리 없지만 금리 인상을 통해 중국 경제를 적당한 수준으로 눌러줄 수만 있다면 그보다 효율적인 정책이 또 있을까요. 게다가 자본 시장의 메커니즘에 따라 직접적인 제재 없이도 중국은 증시에서부터 타격을 입게 됩니다. '손 대지 않고 코 풀 수 있는' 이벤트를 미국이 마다할 리 없겠죠.
반면 중국은 옐런 의장의 한 마디가 불난 집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습니다. 안 그래도 거품 논란에 휩싸여 끝 모르고 상승하던 증시가 몇 차례 급락하는 바람에 있는 정책 없는 정책 다 끌어다가 인민들을 안심시켜 놨는데 FRB 총재라는 사람이 금리 인상을 기정사실화 해버렸습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이제 뒤로 물러설 곳이 없어졌습니다.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하여 증시를 살려내지 못하면 중국 증시는 정부에 대한 불신으로 끝없는 추락을 맞게 됩니다. 직접적으로 증시에 자금을 투입하며 '보이는 손' 마냥 주가 부양을 하는 마당에 외국인 투자자들이 뛰어들리는 만무합니다. 지금도 주요 외신들은 "중국 증시는 정상적인 '시장'으로 볼 수 없다"며 연일 혹평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글로벌 유동성과 등을 돌린 채 정부의 자금력으로만 증시를 살려낼 것인지, '관제 증시'를 포기하고 증시를 더 개방하여 글로벌 시장 논리에 따를 것인지, 중국 정부는 중대한 결정을 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됐습니다.
바둑에 '꽃놀이패'라는 상황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패'라고 하면, 흑과 백이 부분적인 '패권'을 두고 한 수 씩 결정타를 날리는 흐름을 말합니다. 그런데 '꽃놀이 패'는 일반적인 의미의 '패'와는 조금 다릅니다. '꽃놀이'를 하는 입장에서는 이 패를 이겨도 그만, 져도 그만,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무시해버려도 그만인 상황입니다. 명백히 우위에 선 입장인 거죠. 반대로 '꽃놀이'를 당하는 입장은 괴롭습니다. 이기지 못하면 그 자리에서 돌을 던져야 하거나, 최소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인 겁니다. 많은 경우, '꽃놀이 패'를 하는 입장에서 '패권'을 장악하게 되면 그 대국은 승부의 저울이 상당히 기울어지게 됩니다.
금리 인상을 앞둔 미국은 지금 중국을 상대로 '꽃놀이패'를 걸어왔습니다. 아니, 미국이 중국을 괴롭힐 의도가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미국이 걸었다는 표현은 어폐가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자신들을 상대로 '꽃놀이패'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겁니다. 중국은 미국이 결행하고 있는 '패'를 반드시 이겨내야 다음 수를 내다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공교롭게도 오늘 밤 미국에서 7월 FOMC 회의가 열립니다. 재닛 옐런이 기자회견이 있는 달 FOMC 회의에서 금리 조정을 하겠다고 공언한 만큼 이번 달은 금리 인상이 아닌, 구체적인 시그널을 제시하는 수준에 그칠 전망이라고 합니다. 이미 연내 인상은 옐런이 공식화했으니 기정 사실이고, 몇 월에 단행할 것이냐가 관건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아마도, FOMC 회의가 끝나고 내용을 살펴봐도 9월에 할 거다, 12월이 적합하다는 식의 '명확한' 타임 테이블은 제시되지 않을 듯합니다. 언제나 그랬듯이 빠르게 할 건지, 천천히 할 건지에 대한 뉘앙스만 풍기겠죠. 중국 정부는 그래서 더 애가 탈 것 같습니다. 차라리 금리 인상 시점을 확정 짓는다면 어떻게 해서든 추세 반전을 꾀할 텐데, 기대감과 예측으로 움직이는 증시를 인위적으로 끌어올리기란 사실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FOMC 메시지 해독이 잘못된 방향으로 흐를 경우, 중국 증시가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겁니다. 미국의 '꽃놀이패'를 중국이 어떤 '묘수'로 이겨낼 수 있을지, 올해 말까지 이어질 'G2 경제 전쟁 1라운드'의 결과가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