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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Jul 25. 2015

미완의 '다비드상', 국민연금

저금리 시대.. 정부, '망치'를 들다

요즘 '핫'한 시장 플레이어?

바람처럼 등극해서 삼성물산을 뒤흔들어 놓은 헤지펀드가 딱 떠오르기도 하고 (물론 우리나라 매수 주체는 아닙니다만), 저금리 시대에 들어서면서 점점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주식 시장에 유입되고 있는 '개미'들도 있습니다.


이 친구는 어떨까요? 이 친구도 얼마 전 삼성물산 합병과 관련하여 사실상 캐스팅보트를 쥐면서 핀조명을 받았는데요. 해를 거듭하면서 어마어마한 덩치로 성장하여 이제는 누가 뭐래도 시장의 '빅 맨'으로 자리 잡은 주체, 국민연금입니다. 최근 기사를 보니 국민연금의 규모가 세계 3대 기금에 속할 정도로 커졌다고 하죠. 기금 자산이 500조 원이면 현재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 주식 중 1/3을 살 수 있는 정도라고 하니 가히 '공룡'이라 불러도  손색없는 덩칩니다.


이런 '매머드급' 시장 플레이어가 요즘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기금운용본부를 분리해 공기업으로 만들자는 게 얘기의 골잔데요. 사실 이 얘기는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것은 아닙니다.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거론은 됐지만 반대 의견에 부딪혀 번번이 무산되곤 했었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다르지 않으냐'는 분위기 속에 점점 시장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습니다.


# 저금리 시대, 국민연금의 변화를 요구하다


분리하자는 주장이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한국은행이 1.5%까지 내린 사상 최저의 기준금리에 있습니다. 국민연금이 문을 연 1988년 이후로 이처럼 시중 금리가 바닥권에 있었던 전례가 없었던 것이죠. 시장 금리가 높았던 시절에야 안정적으로 채권에 투자하고 이자를 챙기기만 해도 꽤 높은 수익을 거둘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채권으로 주머니를 불리기에는 이제 절대적인 수익률 자체가 너무 낮아진 거죠. 국민연금이 지난해 기준으로 그 어떤 연기금보다 좋은 수익률을 기록했다고는 하지만, 채권 투자 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투자 모델로는 그 이상의 퍼포먼스를  기대하기는커녕 줄어드는 연간 운용 수익률을 '알면서 당해야'한다는 겁니다. 당해도 마이너스는 아니지 않으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이, 국민연금이 운용 수익을 계속 낸다는 가정을 해도 기금 고갈은 피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1%만 더 수익을 내고 몇 년은 더 기금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보도되는 걸 보면, '금리야 어떻든 마이너스만 아니면 되지 뭐'라며 손 놓고 있을 상황은 아니라는 거죠.


# 세계 주요 연기금은 이미 '체질 개선' 중


높은 수익률을 거두고 있는 세계 6대 연기금들은 저마다 확실한 노선을 채택하여 상황을 타개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연금 투자 이사회가 공개한 2015년 현재까지의 성적표

캐나다 국민연금을 운용하는 캐나다 연금 투자 이사회(CPPIB)는 '독립과 수익률'을 택했습니다. 운용주체를 연금제도와 완전 분리한 뒤, 소위 '날고 긴다'는 전문가를 월스트리트 부럽지 않은 조건으로 고용한 것이죠. 운용 인력만도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10배 가까이 되는 1,000여 명을 보유한 채로 주식은 물론 부동산이나 해외 투자도 마다하지 않고 수익 올리기에 열을 올린 결과, 지난해 캐나다 국민연금의 수익률은 두 자릿수로 화답했습니다.


일본연금기구 외경

일본의 경우는 캐나다와는 약간 다릅니다. 일본 공적연금(GPIF)의 투자 결정을 내리는 위원회에 최근 영국 사모펀드 매니저 출신인 미즈노 히로미치 CIO가 취임하긴 했지만 캐나다처럼 천문학적인 연봉을 주고 '스카우트'한 건 아니라고 합니다. (국가의 요청에 따라 사명감을 가지고 일본 공적연금 운용 책임을 지기로 결정했다는 미즈노 히로미치의 인터뷰가 눈에 띄네요) '아베노믹스'에 발맞춰 기금 운용 중 주식 비중을 점차 높여나가기로 한 히로미치 CIO의 결정은 실제로 높은 수익률로 돌아오고 있는 상탭니다. 지난해 수익률이 15년 만에 최고치를 나타냈다고 하니 말이죠. 다만, 일본 공적연금의 투자 포트폴리오는 아직 체질 개선 첫 걸음 단계로 보입니다. 실제로 투자 포트폴리오 비율도 아직은 우리 국민연금과 비슷하게 채권 비율이 높고, 전체 기금을 일괄 운용하는 형태가 아닌 위탁하여 운용하는 비율도 꽤 높습니다. 히로미치 CIO의 강력한 의지로 공적연금의 주식 투자 비율이 점진적으로 (비교적 빠른 속도로) 높아질 예정이어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로 공적연금의 '고위험 투자 문제'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 공통의 명제, "포트폴리오의 다변화"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캐나다와 일본의 사례, 하지만 두 '우등생'이 공통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체질 개선'을 해야만 했던 이유, 즉, 고령사회로의 진입이 운용 방식 변화의 트리거라는 점, 그리고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에 투자 비중을 높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연금을 두고 캐나다 모델로 가야 한다, 혹은, 일본의 사례가 벤치마킹 대상이다, 어느 한 가지 모델을 그대로 차용하자는 논리는 무의미합니다. 각 국의 경제 사정이 다르고, 연금을 대하는 인식 자체도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어떤 방법이 가장 효율적인지 단언할 수 있는 근거가 아직 미약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논쟁을 통해 찾아야 할 대명제에 주목해야 할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바로 우리도 고령사회 진입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위태로운 국민연금을 두고 있고, 위험자산 투자를 늘려야 할 시점이라는 공감대입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공개한 포트폴리오 현황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이 주식에는 투자하지 않으냐 하면 그건 또 아닙니다.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이 전체의 32%를 차지한다는 내용이 기금운용본부 홈페이지 첫 화면에 띄워져 있습니다. 올해 4월 기준으로 국내 주식 투자 97조 원 중 50조 원은 기금운용본부가 직접 관리하고 있는 걸 보면 방만한 위탁 투자라고 비난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닙니다. 국내 주식 투자 부문 자금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것 역시 고무적입니다. 이렇게 나름 열심히 위험자산 투자를 늘려가고 있는 상황에서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당장의 수익이나 투자 비율이 문제라고 할 순 없겠습니다. 보다 근본적인, '밑그림'의 차원인 것이죠.


기금운용본부 논쟁은 결국 운용에 대한 정부의 밑그림이 무엇이냐로 귀결될  듯합니다. 국민연금이라는 엄청난 크기의 자금력을 장기적으로 어떤 성향의 주체로 만들겠냐는 것이죠. 캐나다의 경우 운용의 지표가 되는 것은 '수익률'입니다. 어떤 자산이 됐건 수익을 극대화한다는 방향성이 있었기 때문에, 운용본부 독립도 탄력을 받았을 겁니다. 높은 연봉을 주고서라도 최고의 매니저 라인업을 갖춰야 할 필요도 생겼을 거고요. 일본은 '아베노믹스'가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엔화를 마구잡이로 찍어내서라도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의지는 일본 공적연금이 주식 투자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수익을 낼 수 있는 확률을 높였습니다. 런던 소재 사모펀드 출신의 기금운용 책임자를 내세운 부분도 일본 국내 주식은 물론 해외 자산에도 비중을 확대하려는 정부의 방향성을 잘 드러난 대목이죠.


다른 건 몰라도 국민연금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아야 하는 어려운 문제이긴 합니다. 수익률을 내자니 국민의 혈세를 '까먹는' 상황이 발생하면 안되겠고, 고령 인구의 생활 안정에 초점을 맞추자니 기금의 바닥이 빨리 드러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죠. 해외 투자 확대 등을 위한 의사 결정 체계의 정비와 더불어 독단적인 고위험 투자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 마련까지 해야 하는 난제를 하루 아침에 풀어내기가 쉽겠습니까마는.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양 쪽 모두에 승부를 걸어야 할 시점은 이미 눈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엊그제 기사를 보니 정부가 사실상 기금운용본부를 독립시키겠다고 사실상 공언을 했다고 합니다. 정책토론회에서 정부 측이 독립안을 제안한 만큼 정책 수립자들이 여러 가지 가능성을 고려하고 구체적인 방안도 세웠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운용 본부의 독립에 따라 독자적인 투자로 국민의 혈세가 '공중분해' 될 수도 있는 문제는 어떻게 견제해야 할지, 독립만 시켜 놓고 "높은 연봉도 불가, 해외 투자 등 하이 리스크 투자도 불가", 이렇게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인 아닌지, 단지 '독립'만 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의 로드맵부터 다시 한 번 세밀하게 '깎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 드네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이 다달이 '피 같은' 월급을 떼어 모은, 문자 그대로 '금쪽 같은 내 돈'이라 국민연금의 쇄신을 바라보는 입장이 남 일 같지 않습니다. 더 넓고 깊은 논의가 이뤄져 세상 어디에도 없는 멋진, 한국식 공적연금 '다비드상'이 탄생하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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