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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urquoise Jul 15. 2015

잔상 (殘像) : 뒷모습

이제야 다시 들리는 아버지의 한숨

취사가 가능한 방이라야 했어...

아내는 아기가 자고 있는 방으로 향하며 중얼거린다. 어제부터 해서 벌써 몇 번째 듣는 얘긴지 모르겠지만, 호텔 방을 리조트로 착각하고 예약을 해버린 아기 아빠로서 딱히 대꾸할 말이 없다. 세 살배기 아들래미는 엄마 속상하게도 오늘도 별반 먹은 게 없다. 휴가라고 와서 겨우 맥주 한 캔 따 마시고 있을 뿐인데, 짜증 섞이지 않은 조근한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아내가 어쩐지 더 야속하다.

아내가 방으로 들어가고 거실이 조용해지자 나는 테라스 문을 살며시 연다. 살짝 알코올이 돌자 테라스 너머로 들리는 파도 소리를 BGM 삼아 담배 한 개비가 절실하다. 혹여나 위층이나 옆 객실이 창문을 열고 있다면 대단히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테라스에서 담배를 피운다는 것 자체가 요즘은 터부시 되는 행동이지만, 아무도 들을 수 없을 만큼 조그만 소리로 "5분만요"라고 말한 채 나는 라이터 부싯돌을 굴린다.

'아, 이 5분 쉬려고 1년 내내 그 고생을 하면서 휴가를 받고 앉았네'

문득 욕지기가 입 밖으로 나올 것 같아 연기를 한 모금 들이마신다. 속을 훑고 나온 연기가 바람에 흩어진다 싶을 무렵, 갑자기 기억 한 조각이 떠오른다.


정확히 몇 살 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는 건 아마 내가 중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줄곧 서울에서 자란데다 도시 이외에 다른 곳으로 여행을 가본 경험도 별로 없는, 전형적인 '서울 촌놈'이었다. 어떤 사정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매년 여름 바캉스 계획은 취소되거나 틀어지기 일쑤였고 그나마 몇 번 갔던 피서도 내가 너무 어릴 적이라 제대로 된 가족 여행 기억은 거의 없다고 봐도 괜찮았다. 게다가 그 즈음 아버지가 회삿일로 울산으로  오래동안 내려가 계시게 된 탓에 온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은 초등학생인 내가 봐도 쉽지 않겠다 싶었다. (떨어져 지내시게 된 부모님 사이가 예전보다 더 안 좋아졌었다는 건 나중에 안 일이다.) 그 해 여름, 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나는 어떤 여름 방학 계획도 없었다.


매미가 극성을 부릴 무렵, 아버지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집으로 오셨다.

"아빠랑 놀러 갔다와. 엄만 안 갈란다."

엄만 왜 안 가느냐고 물어봄 직도 하건만, 마냥 기뻤던 나는 동생과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아버지에게도 달려갔다. 아버지는 울산에서 올라올 때면 늘 그랬듯이, 빨간색 프라이드 자동차 앞에서 웃으며 손을 흔들어줬다. 여행을 어디로 가는지, 언제 집으로 올 건지, 내 짐은 어떻게 챙겨야 하는지, 그런 건 알 필요가 없었나 보다. 나와 동생은 그 길로 빨간 프라이드에 몸을 싣고 아버지와 셋이 떠나는, '반쪽 짜리 바캉스'를 떠났다.


지금 와서 돌아보건대, 아버지가 택한 바캉스 루트는 무모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강릉까지, 강릉에서 출발해 서울에서 아이들을 내려주고, 곧바로 다시 회사가 있는 울산까지. 대한민국의 절반이 넘는 거리를 도는 코스다. 아무리 군대 시절 운전병 출신이었다고 하지만, 정해 놓은 코스 중 절반만 가도 무릎이 뒤틀릴 것 같았을 텐데.

여행 자체도 만만치 않았을 테다. 끼니 때마다 아버지가 상대해야 할 사람은 '초딩' 두 명이었다. 아무 식당에서나 맛있게 잘 먹는 그런 상대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들의 인내심 역시 거의 제로에 가까웠을 것 같다. 뭔가 진득하니 오래 앉아 있지도 않고, 나가서 뛰어 놀고 싶은데 마땅히 그럴 만큼 낯익은 곳도 없고. '지겹다'고 느끼는 순간 '초딩'만큼 무서운 존재가 또 있을까. 게다가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두 아이들 모두 '그냥 좀 참지 뭐'가 잘 안된다는 것. 실제로 단편적으로 남아 있는 '반쪽 짜리 바캉스'에 대한 기억을  살펴보면, 근사한 회 한 접시를 놓고도 입이 툭 튀어나와 맨밥만 깨작거리던 장면, 동해바다를 거슬러 올라오는 국도변에서 지겹고  재미없다며 아버지에게 짜증을 부리다 혼났던 장면, 강릉 근처에 아버지가 예약한 숙소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길 건너 보이는 콘도로 가자고 떼를 쓰던 장면이 남아있다.


부산을 찍고 동해안을 거슬러 올라와 강릉 근처에 왔을 무렵으로 기억한다. 숙소를 바꾸자고 떼를 쓰다가 지쳐 잠이 들었던 밤, 나는 창밖에서 들려오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에 살짝 눈을 떴다. 창밖은 무슨 축제라도 하는 모양인지 왁자지껄 한 소리에 환한 불빛이 밝혀져 있었다. 창가에는 아버지가 담배 연기를 날리며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 아버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담배 연기가 방으로 들어오는 게 싫어 이불을 뒤집어 썼다. 내가 뒤척이는 소리를 아버지도 분명 들었을 것 같은데 아버지는 모른 척 담배 연기만 뿜어댔다. 연기를 내뱉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따라 아버지의 날숨은 유난히 소리가 크고 깊었다.


그 짧은 순간이 이토록 오래도록 잔상으로 남아 있을지 몰랐다.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에 와서, 호텔 테라스에서 도둑 고양이 마냥 담뱃불을 붙이는 순간에서야 나는 그때 내 아버지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 있다. 물론 상황은 많이 다르다. 뭐를 따져보나 지금 내가 더 나은 상황에 놓인 건 맞는 것 같다.


누가 더 힘들었다, 지금 난 어리광을 피우고 있는 거다, 아버지는 위대하다.

어쩌다 떠오른 아버지의 잔상을 세상 누구나 다 아는 아포리즘으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피곤하고 힘든 걸로 치자면 나는 방금 들어간 아내에게 비할 바가 못 되니까. 다만, 아버지도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은 생각은 드는 것이다. 여름 휴가를 모조리 아이들에게 바치고 잠깐 얻은 휴식, 그 5분 동안 나처럼 '아, 이 5분 쉬려고 1년 내내 그 고생을 하면서 휴가를 받고 앉았네'라며 후회를 하고 있었겠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아이를 데리고 어딜 갈까 고민하는 '오류'를 반복하고 있는 건, 아침 일찍부터 가족들과 함께 보낸 바쁜 하루 속에서 어찌어찌 얻은 '비일상적인' 5분이 남은 364일을 버틸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겠구나. 아들들이라면 슈퍼맨 같았던, 아니, 슈퍼맨보다 더 했던 아버지도 사실은 뒤돌아서 '내가 미쳤지'라며 후회하는 남자였겠구나.


위층에서 신경질적으로 창문 닫는 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필터만 남은 담배를 맥주병 속에 떨군다. 잠깐 잡념에 잠겨 있는 사이,  환영받지 못할 존재가 되어 버렸다. 5분이 지났으니 나는 이제 다시 세 살배기 아들의 슈퍼맨으로, 아무 생각 없이 주방 없는 숙소를 예약한 '뭘 모르는' 남편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 내일도 출근한 것보다 더 힘든 하루가 날 기다리는 구나.


내가 아직도 철이 덜 들었구나 싶다.

다만 이제서야 나도 아버지와 비슷한 뒷모습을 조금 갖게 되었구나 싶은 생각에 빙긋, 미소가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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