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할머니
한 달 뒤면 아흔이 되시는 할머니가 엄마에게 전화가 와 요즘 꿈자리가 뒤숭숭하다고 말했단다. 돌아가신 이모가 꿈에 자꾸 나와 ‘엄마도 그만 여기로 와’라고 말한다고, 그리고 할머니는 ‘싫다’며 큰 소리를 치다가 잠을 깨곤 한다고 말했다.
그 이야기를 굳이 엄마에게 하는 할머니가 조금 미웠다.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리려는 것인지, 그래서 우리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하는 것 같았다. 또 할머니가 그 꿈을 악몽처럼 여긴다는 것도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직 준비가 안됐는데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만큼 슬픈 건 없으니까. 난 이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어 슬펐다.
어릴 때부터 나는 할머니를 많이 좋아했다. 정확히 말하면 외할머니이지만 내가 태어날 때부터 할머니가 안 계셨기에 외할머니가 내게 줄곧 할머니였다. 나는 6년 동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지만 할아버지보다 할머니가 훨씬 좋았다. 그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가 있다한들 납득 안될 정도로 할머니가 좋았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나의 1순위가 바뀐 적 없다. 가끔 장난스럽게 남자 친구와 애정도를 과시할 때도 엄마 아빠가 3순위가 될지언정 나의 할머니는 항상 제일 위에 있었다.
내가 7살이 되면서 우리 가족은 우리만의 공간으로 이사를 갔다. 그리고 그때부터 명절이 되면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와서 4~5일씩 머물다가 가셨다. 할머니는 딸만 셋인지라 외할아버지의 차례를 우리 집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5일씩 우리 집에 있다가 가는 날이면 나는 방안에 들어가 문을 잠그고 괜한 객기를 부렸다. 떠나는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싶지 않았다. 잠긴 방 안에서 나는 혼자 눈물을 훌쩍였다.
또 한 번은 엄마에게 처음으로 맞고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밥 먹다가 내가 무슨 심술이 났던지 엄마 앞에서 숟가락을 던졌고 엄마는 화를 참다가 또 참다가 내 머리를 살짝 밀었다. 엄마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날이었는데 나는 왈칵 눈물을 쏟으며 전화기를 들고 방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엄마가 내 뺨을 때렸다는 과장, 할머니는 엄마를 혼내주겠다는 처방이었다.
나는 거의 매년 할머니 생신에 편지를 썼다. 어느 날은 마음먹고 3장의 편지를 할머니께 써드린 적이 있는데 엄마는 친척 가족이 다 모인 자리에서 그 편지를 읽어드리라고 했다. 20살이 넘어서 편지 낭송을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마음에 슬쩍 짜증을 냈다. 가족들은 자꾸 읽어드리라는데 나는 계속 거절했고 할머니는 그럼 안 읽어도 된다고 편지를 달라고 하셨다. 친척들과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가 내게 말했다. 할머니는 글을 모르시니 편지를 길게 쓸 필요가 없다고. 그날도 지금처럼 많이 울었던 것 같다. 그 사실을 알았으면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어 드렸을 거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신께 기도를 드렸다. 종교가 없기도 하고, 사실은 신이 없다는 생각도 살짝 하고, 기도라는 게 노력 없이 대가를 바란다는 느낌이어서 소원은 자주 빌어보지만 신께 무언갈 부탁한 적은 거의 없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 할머니 조금만 더 살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사실 신이 할머니에게 일 년의 시간을 더 준다고 해서 내가 후회 없이 할머니를 떠나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행복하게 해드릴 마땅한 방법도 모르겠다. 그래서 굉장히 설득력이 떨어지는 기도인걸 아는데 이런 기도라도 안 하면 신이 정말 할머니를 데리고 갈까 봐 겁이 났다. 당신의 피조물인 저 할머니가 아직 내겐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아, 신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