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6년간의 공직생활을 정리하시고 올해에는 당신을 닮은 손녀를 본 아버지는 요즘 부쩍 당신의 아버지가 생각이 난다며 딸에게 고백했다.
할아버지 손을 본 적 있나?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내셨다.
할아버지 손은 대나무처럼 뻣뻣하고 손에 살이 없어 마디마디가 도드라져있었다고 말했다. 그건 열 식구를 먹여 살린 고된 노동의 흔적이었다. 외삼촌 네에 신세를 지고 있던 큰아들을 위해서 쌀 두 가마니와 땔감을 지게에 가득 지고 산 너머에 있는 외삼촌 네에 들러 지게를 비웠던 사람. 다시 그 산을 넘으며 가족을 위한 땔감을 가득 채워 집으로 돌아오셨던 분. 아버지의 아버지였다고 했다.
그렇게 고되게 살아온 할아버지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치매에 걸렸다. 처음에는 우리 네 식구와 일찍 남편을 여윈 큰어머니네 식구와 함께 살면서 할아버지를 돌봤다. 하지만 우리 가족이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할아버지는 큰어머니네 식구 곁에 남게 되었다. 아버지는 최대한 자주 찾아뵙는 걸로 마음의 부채를 덜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큰어머니 집에 찾아간 아버지는 할아버지 방문 앞에 놓여있던 짐 더미를 보았다. 아버지는 조카에게 이게 무엇이냐 물었고 그는 당황한 얼굴로 옆에 놓여있던 짐이 쓰러진 것 같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알겠다고 답하고 쓰러질 리 없는 무거운 짐 더미를 옆으로 옮겨 할아버지 방문을 열었다고 했다. 그곳에는 자신을 용변을 찰흙마냥 움켜쥐고 있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울컥 화가 치밀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화의 근원이 자신이라는 생각이 더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양복을 입은 채로 할아버지의 옷을 벗기고 더러워진 당신의 아버지를 안아 화장실로 향했다.
노인들은 참 씻는 걸 싫어하지?
아버지가 할아버지를 욕조에 앉혀 씻겨주려 하면 할아버지는 계속 버둥대며 손길을 거부했다. 아버지는 순간 짜증을 내며 할아버지를 강하게 끌어당겼고 그 반동으로 할아버지의 머리가 욕실 벽에 ‘쿵’ 하니 부딪혔다. 아버지는 너무 놀라 할아버지를 바라봤는데 할아버지는 그저 손으로 머리를 문지르다 이내 손을 내리셨다고 했다.
사람이 동물적으로라도 ‘아’ 소리를 낼 법 한데... 왜 나는 참지 못했고 할아버지는 참으셨을까.
아버지는 지금도 그때의 ‘쿵’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맴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다시 아버지의 마음을 ‘쿵’하고 누른다고. 아버지는 딱 일 년만 할아버지와 할머니와 다시 지내고 싶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 소리를 당신의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고 했다.
눈물을 다시 닦는 아버지의 팔이 보였다. 주로 밖에서 일하시던 아버지는 굳이 여름이 아니어도 반팔 아래로 팔이 까맣게 타 있었다. 옷깃 위로 드러난 목 역시 그랬다. 나는 아버지의 저 팔이, 목이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