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베스킨라빈스

by 밀크티

28살의 나는 아직도 아빠가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다. 아빠의 퇴근 시간에 전화가 오면 나는 직감한다. “딸~ 아이스크림 묵을래?”라고 물을 것을. 그러면 나는 딱히 먹고 싶지 않아도 굉장히 행복한 목소리로 “응!”이라고 답해야지 생각한다.


어느 날은 아빠가 아이스크림을 사다가 겸연쩍은 경험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여느 때처럼 아이스크림 가게로 간 아빠는 또 여느 때처럼 “여자애들이 좋아하는 걸로 담아주시면 됩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날의 점원은 “여자애 나이대가 어떻게 되나요?”라고 되물었단다. 아빠는 아차 싶은 마음에 스무 살이라고 말했다고. 삼십 대에 가까운 딸을 ‘여자애’라고 칭한 것, 스물 여덟 딸의 ‘아이스크림’을 사는 것. 모두가 조금 어색한 것들이었다. 아빠와 나에게만 빼고.


아빠가 베스킨라빈스를 좋아하게 된 계기는 아마도 내가 고등학생 2학년 때였을 거다. 수험생의 우울함이 내 생일의 기쁨을 상쇄시킨 날, 항상 나에겐 빨간 날만 같았던 내 생일이 밤 10시까지 야자를 하는 검은 날이 된 날, 터덜 터덜 집으로 돌아온 나는 식탁 위에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를 발견했다. 평소 다정하긴 하지만 로맨틱과는 또 거리가 먼 부모님이었기에 그게 케이크라고 선뜻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그건 정말 베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 케이크였다.


나는 눈물이 날만큼 행복해했다. 그걸 사온 사람이 아빠라는 것도 믿기지 않았다. 그때 나는 아빠에게 “어쩜 이렇게 센스가 있어?”, “어떻게 이런 걸 사 올 줄 알아?”, “아빠 진짜 짱이야” 등등 엄청난 극찬을 쏟아냈다. 아빠는 “아빠도 그게 맛있다는 거 다 알지”라며 으쓱해하며 말했다.


그 뒤부터였다. 특별한 일 없어도 문득 아빠가 베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오는 것이. 고3 생일 때도 그랬고, 수능을 망친 날도 그랬고, 최종 면접에 떨어진 날도. 그리고 그날도.


하지만 29살의 딸은 원하던 직업을 가졌고 부모님 품을 떠나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이제 아빠의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 것이 내가 슬픈 것일까 아빠가 슬픈 것일까. 새해에 홀로 타지의 작은 방에 있자니 아빠가 사 온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