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은 전형적인 공무원 살림이었다.
그리 궁핍하진 않았으나 살뜰히 아껴야 하는 정도. 우리 엄마는 그 역할을 참 잘했다.
그래서 나에겐 엄마의 습관을 닮아있는 몇 가지가 있다. 웬만해선 보일러를 틀지 않는 것, 티슈를 두 장 이상 뽑지 않는 것, 자기 전엔 전기 코드를 꼭 뽑고 자는 것 등등. 우리 집의 생활만큼이나 소소한 절약 습관들이다.
엄마의 살뜰함에 화가 난 적이 있다. 학창 시절 반장이 되면 일종의 반장 턱을 내야 했는데 엄마는 항상 소보루 빵과 우유를 넣어주었다. 옆 반은 햄버거와 콜라를 먹고 있는데 말이다. 3년째 같은 반이었던 친구가 나에게 ‘너희 집 빵집하니?’라고 물었다. 그날 나는 집에 돌아와 우리 집이 거지냐며 철없는 말을 뱉었던 것 같다.
자라는 내내 엄마는 나에게 ‘필요할 땐 쓰고, 필요 없는 데엔 돈 쓰지 마라’며 절약정신을 강조했다.
대학생이 된 나에게 ‘엄카(엄마카드)’가 주어졌다. 하지만 이건 보통의 뜻처럼 ‘한도 없는 카드’가 아니었다. 매 달 엄마에게 날아드는 구매내역 성적표 같은 것이었다. 나는 되도록 쓰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 노력은 나에게 첫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무너졌다. 나는 자주 커피를 마셨고 자주 영화를 봤고 그에게 비싼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 그와 함께 있는 현실에 도취되어 구매내역 성적표가 발송되는 미래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나게 엄카를 긁어댔다.
어느 날 엄마는 내 방으로 들어와 카드 고지서를 내밀었다. 남자 친구와 만난 지 50일 정도가 됐을 때였다. 65만 원(...) 나조차 당황스러운 액수였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나는 세 장 분량의 카드 고지서를 꼼꼼히 훑어봤다. 나의 모든 데이트 장면이 흘러갔다.
당시 나는 엄마에게 남자 친구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상황을 설명할 마땅한 변명거리를 계속 떠올려봤다. 그런데 엄마는 ‘앞으로 아껴 써라’는 말을 남기고 금방 내 방을 나갔다.
놀라웠다. 이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도(우리 엄마의 소보루빵을 먹었던) 놀라워했다. 일각에서는 우리 집이 알부자가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할 정도였다.
지금도 엄마가 한 달에 65만 원을 쓴 딸을 용서한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엄마는 내게 첫 남자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귀가시간이 자주 늦던, 유난히 화장이 진해지던, 그렇게 입기 싫어하던 치마를 자진해서 입는 딸을 보면서 엄마는 충분히 직감했을 것 같다.
엄마에게 ‘필요할 땐 쓰는 돈’은 딸의 첫 연애가 포함되어 있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