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부동산 PF, '토지 매입부터 분양까지' 개발사업 영위
최근 여의도에는 흉흉한 소문이 나오고 있습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로 일부 증권사가 매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해당 증권사들은 즉각 사실을 부인했지만, 여의도에 전운이 감도는 것만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왜 부동산 시장 경색이 증권사가 부도를 우려해야 하는 상황까지 갔을까요?
시간은 2011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부동산 시장이 휘청이자 해당 시장에 많은 자금을 투입했던 저축은행의 도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래도 부동산 시장은 돌아가야 하지 않나요. 증권사는 이 틈을 이용해 부동산금융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건설에 있어서 금융위기 이전에는 건설사와 저축은행이 전적으로 모든 리스크를 지는 구조였다면, 이후에는 다수의 참여자를 통해 신용보강을 충실히 갖추는 PF 구조로 진화했습니다. 신용보강에 의한 PF 유동화 건수는 지난 5년간 건설사는 늘지 않았지만 증권사의 건수는 3배 이상 늘었습니다.
증권사는 부동산 PF 시장에서 무슨 일을 하는 걸까요?
시행사는 부지를 발견하고, 어떤 걸 지을지 계획을 세웁니다. 이후 설계를 진행할 설계회사를 뽑고, 공사회사가 건물을 완성합니다. 분양이 완료되면 이익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 부동산 건설 시장의 큰 맥락입니다.
증권사는 시행사가 부지를 구입할 때 자금이 부족하면 자금을 조달해주기도 하고, 계속적으로 발생한 공사비용이 부족하게 되면 역시 각종 비용을 조달해줍니다. 직접 투자하기도 하고요. 때에 따라 은행, 보험사 등 다른 금융업권의 자금을 개발 회사에 유치해주기도 합니다. 금융의 형태로 개발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결과론적으로 개발사업을 영위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대출 시기와 구조에 따라 부르는 말은 조금씩 다른데요. 우선 사업인허가 이전에 투입되는 금융은 '브리지론'으로 통칭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동산 PF시장의 리스크는 주로 브리지론에서 표면화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공사 자금 조달 단계에서 대출해주는 건 '본PF 대출'이라고 합니다. 인허가 및 착공 이후 공사비 조달을 위한 금융입니다. 대출에는 선순위, 중순위, 후순위가 있는데요. 당연히 후순위로 갈수록 수수료는 세지만 리스크는 높습니다.
조금 더 쉽게 설명해보겠습니다. A씨가 여의도 근처 괜찮은 입지의 땅을 봤습니다. 여기에 빌라를 지으면 많은 유동 인구가 있을 것 같고, 높은 월세도 받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A씨가 수중에 있는 돈은 20억원 정도고, 땅을 사기 위해서는 40억원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빌라를 짓기 위한 공사비는 30억원이고요.
그럼 A씨는 50억원 정도의 돈이 더 필요하겠죠. 은행에서 돈을 빌려와야 할 것입니다. 은행은 A씨의 무엇을 믿고 돈을 빌려줄까요. 우선 땅을 담보로 잡아놓고, 완공 시 투자 수익이 얼마나 될지 사업성을 검토합니다. 그리고 신용공여를 요구할 것입니다. 연대보증인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여기에 증권사들이 신용공여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A씨가 바로 시행사입니다. 사업을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사람이죠. 그리고 건물을 올려주고 대가를 받아 가는 시공사가 있습니다. 금융기관은 투자자를 유치하는 GP, 투자하는 LP로 나눌 수 있습니다. GP는 주로 운용사, 증권사이고, LP는 시중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입니다.
부동산 PF는 건설 프로젝트를 담보로 장기간 대출을 해주는 전반적인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시행사가 "우리 건물 다 지으면 1조원 가치인데, 지금 돈 좀 빌려줘"라고 하면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조달해서 빌려주는 과정입니다. 빌려주는 사람은 상당한 위험을 부담하고 빌려주는 것이니 당연히 마진율이 높습니다. 그동안 증권사 부동산금융 직원들은 미래 가치가 높은 건설 계획을 빨리 따와서 최대한 많은 돈을 조달해주며 수수료를 받고, 완공됐을 때 많은 수익을 얻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장기간 대출 상품을 '유동화증권'이라는 이름으로 단기로 쪼개서 팔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팔면 또 다른 판매수수료를 챙길 수 있습니다. 이게 최근 강원도 레고랜드에서 터진 ABCP의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영화 '빅쇼트'가 생각나지 않나요? 부실한 부동산 대출을 채권으로 만들고, 여기에 채무보증 등을 통해 신용을 보강해줍니다. 해당 채권은 A급으로 변모해 투자자들에게 판매가 됩니다. 판매 자금이 들어오면 증권사는 또 다른 PF에 참여해 돈을 넣습니다. 시장에 유동성이 풍부해지는 과정입니다.
이 경우 하나의 부동산에서 부실이 발생하면 연이어 부동산 시장이 무너질 가능성이 큽니다. 유동성 경색이 위험한 이유입니다.
또 건설비용이 높아진 상황에서 완공을 하더라도 적자가 날 수 있어 후순위 대출자의 경우 원금을 모두 회수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올해 들어서 브리지론이 본PF로 전환이 지연되는 사례가 늘었다고 합니다. 인허가가 지연되거나 본PF의 대주단 모집에 차질이 생기는 등 요인 때문입니다.
브리지론이 본PF로 전환되지 않고, 리파이낸생(자산재구성)이나 대출연장에 실패할 경우 대주는 담보 토지의 경매 또는 재매각으로 대출금 일부를 회수해야 합니다. 증권사가 여기에 후순위채권으로 참여해 있거나, 담보가치 자체가 하락했다면 손실은 불가피합니다. 브리지론은 대출 만기 시 채권 회수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부실이 늦게 반영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유동화증권도 문제입니다. 증권사가 신용을 보강해서 판매한 상품이 잘 팔리지 않으면 증권사가 책임을 지고 모두 매입해야 합니다. 해당 상품을 가지고 있다가 시행사가 완공해서 담보대출로 잘 갚으면 그나마 다행인데 이것도 안 된다면 증권사는 큰 손실을 떠안아야 합니다.
부동산 부실이 발생하는 것과 별개로 증권사 수익에도 상당한 타격이 예상됩니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대형 증권사의 부동산 PF 관련 수익은 전체 투자은행(IB) 수수료 수익의 50~80%를 차지하고, 전체 순영업수익(매출액)의 10~35% 수준의 기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부동산 PF 시장의 호황기에 무분별하게 대출을 늘려온 증권사들은 부실의 부메랑을 맞게 됐습니다. 지난해 한 대형 증권사의 신입은 인센티브로만 2000만원을 받아갔다고 하는데요. 올해는 성과급은 고사하고, 리스크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이번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부동산 PF 대규모 부실로 이어져 증권사의 위기로 번지지 않길 바랍니다. 그리고 과거 미국처럼 증권사의 부실을 국민의 혈세로 도와주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