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수 Apr 19. 2023

학부모인가 or고객님인가?


갈수록 교육현장은  손발이 맞지 않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아슬아슬했다. 공교육도 칼바람이 부는 마당에 사교육은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이란 호칭이 무색하게 '학부모님과' '고객님'의 경계를 꽤나 조심히 걸어왔다.


사교육은 돈을 받고 무형의 것을 티 나게 주는 일이다. 아이 성적을 티 나게 올려주든 글쓰기 실력도 티가 나게 늘려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다양한 곳에서 '선생님'이라 불리는 이들을 만났다.  담임 선생님과 정규 수업이 끝나도 돌봄, 방과 후, 논술, 컴퓨터, 과학 선생님을 거쳐 학원으로 가면 그곳에도 다양한 선생님이 아이를 가르치고 돌본다. 한 명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지만, 요즘은 아이 한 명을 키우기 위해서 '선생님'이라 불리는 많은 이의 손길이 필요하다.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아이에게 더 좋은 환경을 줄 대안은 없을까?

나 역시 일하며 세 아이를 키운 양육자이자 짧지 않은 시간을 사교육 현장에서 활동한 경험을 동원해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혼자 힘으로는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그 안에는 하루도 유보할 수 없는 아이의 삶이 진행되고 있다는 가볍지 않은 현실도 담겨 있다. 이때 아이를 ‘돌보는 이’에 대한 존중은 내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의 다른 표현이다. 


아이는 부모가 믿고 신뢰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안정감을 느꼈다. 그렇지 못한 경우라면 당연히 불안했다. 선생님을 잘 따르다가도 어른들이 나눈 부정적인 대화를 듣고 와선 혼자 어쩔 줄 모르는 아이를 본 적 있다. 선생님에 대한 긍정적인 표현 만으로도 아이는 보호자 없는 오후 시간을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해 지낼 수 있다. 믿을 수 없고 불만족스럽다면 절대 아이를 맡기지 말고 맡겼다면 진심으로 믿고 신뢰하자. 그런 긍정적인 메시지는 아이를 절대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왜, 돌보는 이와 의논하지 않나!


내 아이는 '선생님'을 만나고 있을까? 아니면 부모가 고용한 '고용인'의 서비스를 받고 있을까? 엄밀히 말해서 둘 다 맞다. 사교육 구조는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를 성장시키는 일은 고용인의 마음으로 하면 안 된다.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이 아니라, 내 아이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부모가 돌볼 수 없는 시간에 돌보는 이와 항상 의논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보지도 않은 아이의 하루를 어떻게 알고 이해할 수  있을까?


수업은 잘 따라가나요? 


상담을 하게 되면 대게의 학부모는 아이가 낸 결과를 가장 궁금해한다. 하지만 더 궁금하게 생각할 일은 과정에 있었다. 친구와 잘 지내는지, 오후 수업을 힘들어 하진 않는지와 같은 아이 일상에 담긴 정서적 상황에 주목해야 한다. 처음부터 아이 기질등을 공유하면 선생님이 아이를 돕는데 도움이 된다.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한 결핍은 절대 물질적인 보상으로 대체할 수 없다. 


요즘은 부모가 아이를 야단쳤거나 바빠서 함께 해주지 못한 부채감을 물질로 보상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평소 아이가 갖고 싶어 하던 닌텐도, 더 좋은 사양의 핸드폰을 사주는 일도 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경우 결국 '독'이 될 가능성이 많다. 오히려 짧은 시간이라도 진심으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괜찮니?' 물어봐주는 한마디 관심이 아이와의 유대를 끈끈하게 할 수 있음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가만히 있어서 도움 되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