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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Apr 20. 2023

태어난 존재의 목적, 반창고!

태어난 아이

태어나고 싶지 않아 태어나지 않을 수 있다면, 태어난다는 건 전적으로 아이의 선택인 걸까?

그렇다면 태어난 아이가 겪게 될 삶의 모든 책임과 결과 또한 선택한 아이에게 있는 걸까?

태어나고 싶지 않아 태어나지 않던 아이는 무생물처럼 떠돌았다.
사자가 나타나도 무섭지 않았고, 모기에게 물려도
가렵지 않았다.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결심을 하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반창고'였다.
 
태어난 다른 여자아이가 개에게 물리자 엄마는 달려와 개를 혼내고 아이를 깨끗하게 씻긴 다음 상처에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그 모습을 본 태어나지 않은 아이는 “반창고, 반창고!"를 외치고 마침내 태어난 아이가 되었다.

태어난 아이가 아파 울면 엄마는 괜찮다, 위로하며
깨끗이 아이를 씻기고 약을 발라 반창고를 붙여주었다.
 -   그림책 <태어난 아이> 중

 "얘들아, 여기 반창고 있거든, 필요한 일 생기면 선생님에게 오세요!"

 3월, 새 학기 글쓰기 첫 시간에는 ‘반창고’ 안내부터 했다. 안내가 끝나기 무섭게 아이는 너나 할 것 없이

자기 몸부터 뒤졌다. 어떤 아이는 한쪽 어깨의 맨살까지 드러내며 ‘어딘가 있었던’ 상처를 찾느라 분주했다.

잠시뒤, 친구가 붙인 반창고를 보는 아이의 표정엔 기필코 반창고를 붙인 아이가 되겠다는 굳은 결의마저 엿보였다.


글쓰기 교실 반창고는 수업 시간마다 호황을 누렸다.

정말 상처가 생긴 경우보다 관심받고 싶은 우회적 표현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부모의 퇴근 시간에 맞추느라 아이들은 하교 후에도 집으로 바로 가지 못했다. 방과 후 수업과 학원을 돌고 도는 아이들은 결핍된 온기를 찾아, 본능적으로 반창고를 원했다.


심각한 표정으로 다가와 깨알만 한 상처를 보여주는 아이모습은 저절로 미소가 퍼질 만큼 귀엽지만,

나는 함부로 웃지 않았다. 아이가 보여주려는 상처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반창고를 붙이는 순간만큼은 아이가 확신하길 바랐다.  내가 소중한 사람이구나!


 태어난 순간, 아이는 매일 새로운 경험의 파도를 헤엄치며 모든 감각을 느껴 성장했다. 넘어져 울음이 터지고, 미지의 세계는 두렵고 불안했지만, 위로와 격려의 반창고를 붙이고 앞으로 나갈 용기를 얻었다. 태어나고 싶지 않았던 아이의 마음을 바꾼 '반창고'는 모든 태어나기로 결심한 존재의 '목적'이었다. 


태어나지 않고도 아무 불편 없던 삶을 내놓을 만한, 사랑받을 것이라는 확신 말이다. 완벽히 내 편인 존재의 따뜻한 위로와 깨끗이 씻겨진 내게 붙여질 반창고는 사랑받는 존재로 태어나고 싶다는 열망의 다른 이름이었다.    


 요즘, 세상에 던져지듯 태어나고 죽임 당한 아이 이야기가 끝없이 이어진다. 한 명의 죽은 아이를 보내고 돌아오면, 마음을 추스를 사이도 없이 또 다른 아이가 죽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했다 해도 다르지 않았다. 부모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남긴 상처는 아이를 흠집 내는 동시에 교육하기 때문이다. 아이 몸에 새겨진 이 고약한 교육 방식은 살아난 아이를 다시 영겁 같은 시간에 살게 할 것이었다.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할 부모가 어디 있을까? 다만, 내 사랑의 방식이 아이도 원하는 것인지 냉정히

고민해 봐야 한다.


 ‘우리는 정말 아이가 아픈 곳에 정확히 반창고를 붙여주는 부모일까?’     


학기 초엔 수줍게 다가와 상처를 보여주던 아이가 곧, 맡겨놓은 듯 당당히 반창고를 요구하면 잘 성장하고 있는 아이를 만난 것 같아 뿌듯했다. 상처의 경중과 상관없이, 아이가 곧바로 도움을 청할 씩씩한 목소리를 갖길 바란다. 조금은 당차고 야무진 목소리! 어린이에게 오히려 당연할, 자기중심적 세계를 가진 모습 말이다.


앞으로 겪게 될 많은 경험이 아이를 성장시키는 동안, 언제든 꺼내줄 반창고가 준비된 ‘어른’을 상상했다. 너희가 소중한 사람인 것을 의심하지 말라고 말해 줄 ‘정말 어른’ 말이다. 아니, 그런 말을 해줄 수만 있는 그저 한 존재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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