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에서 몇 년간 홈파티 케이터링 사업을 한 적이 있다. 지금이야 많은 케이터링 업체가 있지만 내가 일을 시작했을 당시엔 인터넷 검색을 해도 한두 군데 업체 정도만 검색될 만큼 생소한 사업이었다. 도시에는 요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았고, 내 음식은 꽤 인기가 좋았다.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 말고는 전공과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줄곧 논술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던 내게 전혀 생소한 세계의 일이 시작된 거였다. 모든 파티가 갖고 있는' 이야기'가 좋았다. 나는 고객의 이야기에 집중해 요리를 준비했다. 예를 들어
'어머님 첫 기일인데, 가족들끼리 나눌 음식을 주문하고 싶습니다'라는 예약을 받으면, 어머님 첫 기일에 가족들이 느낄 상심을 생각하게 되고, 기름진 음식이나 너무 자극적이지 않은 요리로 몇 가지를 준비하는 식이었다. 예약은 점점 많아졌고, 무수히 많은 사연이 담긴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음식 맛은 물론 데코레이션까지 완벽해야 하는 케이터링 요리 특성 때문에 밤새워 일하는 날이 많았다. 개인 홈파티부터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보내는 일명 '조공'이라 불리던 케이터링 음식까지, 정신없이 바쁜 몇 년을 보냈다. 일은 재미있었지만 의욕을 꺾은 건 고된 일이 아니었다.
내 노동에 대한 자부심을 지킬 수 없게 한 건 다름 아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도시 생활이었다. 비싸도 너무 비싼 신도시의 월세,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한 비용들. 그 거품을 들어내면 겨우 '도시 빈민자' 신세를 면한 내가 있을 것 같았다. 대단한 것을 기대하며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범접할 수 없이 높은 천장이 있었다. 일이 잘되는 날도 일이 좀 덜 되는 날도 늘 불안할 뿐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확실해지기 시작했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먹고 입히는 것만으로 된다면 무엇이 걱정일까? 아이는 언제나 부모를 기다려줬고 항상 먼저 용서하고 웃어주는 존재임이 틀림없지만 어린이로 지내는 한정적인 아이의 시간은 물리적으로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고, 달리 해볼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사람마다 중요한 순서가 다를 것이었다. 어떤 이는 꾹 참고 돈을 벌어 나중에 자식들에게 부족함 없는 삶을 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시간'을 선택하기로 했다. 방금 보고 온 아이들이 갑자기 다시 보고 싶고, 안고 만지고 싶은 날들이 많아졌을 때 계속 이렇게 살아도 될까? 아이들의 시간을 이대로 보내도 되는 걸까? 뭔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삶의 방식을 바꾸지 않고는 달라질 수 없었다
정리를 하자!
이미 잡혀있는 예약 일정도 소화해야 했고 성업 중인 사업 정리를 위해 1년의 시간을 두고 제주도로 떠날 준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으로만 가봤던 제주도에 대해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제주에 왕 살암시냐 -다음 4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