맘대로 고향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제주도가 내 고향입니다.'라고 말하고 싶다. 제주에서도 바다와 낮은 밭담 사이 들꽃이 흐드러진 곳이 고향인 사람이길 바랐다. 그런 제주라 해도 여행이 아닌 삶의 터전으로 살 생각을 하니 막막하기만 했다. 도시에서 쌓아놓은 내 경험과 인간관계 익숙한 생활방식을 지우고 그야말로 '리셋'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눈이 아프도록 인터넷 속을 헤매며 제주도에 대한 모든 정보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이사 절차, 부동산, 날씨 관련, 제주시 or서귀포, 학교, 교육문제 등등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자료 수집을 이어갔다. 제주도로 이미 이주한 사람들이 남긴 현실적인 이야기도 정리했다.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없다 싶을 만큼 찾아 읽은 뒤 그것을 정리해 결론부터 내보니, 제주도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말도 마라. 제주도 습한 거 안 겪어 본 사람은 모른다.
벌레 많다. 바퀴벌레가 어린애 주먹만 하다. 심지어 날아다닌다.
제주도 토박이들 괸당문화는 육지 껏들 상대 안 해준다.
교통 불편하다. 갈 만한 병원이 없다. 제주도서 아프면 큰일이다. 가던 도중에 죽는다.
그땐 왜 이런 글만 눈에 들어왔는지, 아마도 내 불안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타인에겐 괴로운 일이 내겐 견딜만할 수도 있지 않은가. 난 직접 겪어보기로 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제주도 작은 학교에 보내고 싶었다. 맘껏 뛰놀 시간을 찾아주고, 아이들 곁에 있을 수 있는 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자고 마음을 다졌다. 매일 밤 피곤한 몸을 뒤척이며 제주도를 글로 배우는 날들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제주도 이주 계획을 추진하고 싶었지만 너무 바빴다. 하고 있는 일을 정리하려니 신경 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미리 예약받은 파티요리는 약속대로 내가 모두 소화했고 인수할 사람에게 식재료 거래처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 그동안 해온 수많은 요리를 가르쳤다. 케이터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데코레이션 방법을 몇 달에 걸쳐 가르치던 날들이었다.
어느 날, 064 지역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제주도에서 온 전화였다. '제주도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일환으로 빌라 형태 주택을 무상 임대해 주는 제도가 있어서 신청을 해뒀는데 한 집에 자리가 났으니 한번 다녀갈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와, 얘들아, 우리 정말 제주도로 가게 되나 봐."
얼추 인수인계가 마무리될 즈음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제주도 답사를 떠났다.
"우리가 살 곳이 어딘지 가보자, 너희들 마음에도 들지 한번 가보자고!"
(다음 편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