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제주로 이주했을 때였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지쳐있었고, 이제야 쉴 시간이 생겼지만 쉴 줄 모르는 사람이 돼있었다. 몸이 기억하는 시간 안에는 타인에 맞춰 일하던 습관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고 자다가 놀라 깨 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 이어졌다.
사는 곳이 관광지다 보니 집 근처에 유명한 맛집이 있었다. 오전 11시 오픈 전부터 대기하는 사람이 있었고 오픈하자마자 매장 안에는 앉을자리가 없었지만, 그 가게 영업 종료 시간은 오후 3시였다. 도시에서 사업장을 운영하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장사가 잘 되면 직원을 두고라도 장사를 더 해야지, 오후 3시에 영업 마감이라고?'
며칠 뒤, 나는 오후 3시에 문 닫는 가게의 주인 부부가 오후 5시, 자녀를 데리고 해변에서 노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때 나는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완벽히 일과 개인의 삶을 분리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도시에서 일을 쫓아 살고 나와 가족의 삶까지 갈아 넣었던 시간을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모두 나름의 최선을 선택해 산다. 나도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더 선명한 사람이 되고 싶은 열망으로 앞만 보고 걸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내가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었던 건 아닐까?
너무 애쓰지 않아도, 너로서 괜찮아!
며칠 전 수업 중에 아이가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저도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평소 엄마의 기준이 좀 높은 편인 가정의 아이였다.
“윤호야, 훌륭한 사람이 뭘까? 네가 무엇이 되지 않아도 너는 그냥 너로서 괜찮은 거야. 정말이야!"
"진짜요?"
나는 몇 번이나 말해줬고, 아이는 몇 번이나 다짐을 받았다.
윤호에게 우리가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해도 그저 '나로서 괜찮다'는 위로를 전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