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헛똑똑이 같던 날들
내가 사는 제주엔 강풍주의보가 내리더니, 창문 밖이 몹시 요란했다. 만개했던 벚꽃도 비바람에 모두 떨어졌을 것이다. 잠시 왔다 사라지는 것에 마음 주지 않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8년 전 제주로 이주하기 전까지 신도시에 살았다. 서울 토박이로 살며 대단한 야망이 있던 것도 아닌데 난 시간 앞에 늘 허덕였고, 일과 나를 분리하는 삶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악순환이었다. 남들 사는 만큼 살면 되지! 하다 보면 대부분 거품이었다. 많이 쓰고 많이 버는 삶이 헛똑똑이 같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일한다고 아이들과 함께 하지 못하며 생기는 결핍의 구멍을 더 늦기 전에 메우고 싶었다. 제주도로 가자! 여행 말고!
잘 되던 일을 스스로 정리할 때, 모두 말렸다.
" 그 촌에 가서 뭐 해 먹고살 건데?"
"애들 교육은? 교육 생각하면, 촌에 살다가도 나와야 할 때, 이제 간다고?"
그런 말을 들으면 내 선택이 옳은 것일까? 흔들린 게 사실이었다. 그때 나는 많이 흔들리던 사람었으니까.
제주공항에서도 한참을 들어가는 촌, 작은 바닷가 마을에 정착했다. 물론 연고도 없었고, 몇 차례 제주도 여행에서도 지나친 적 없던 마을이었다. 도시에서 전교생 1800명인 학교를 다니던 아이들은 전교생 60명인 학교로 전학했고, 나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반겨주는 엄마 되는 꿈만큼은 이뤘다.
제주도에선 한낮에 다정한 햇살, 산호색이던 바다가 갑자기 돌풍과 함께 성난 바다로 바뀌는 건 순간이었다. 이런 날이면, 마을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하던 일을 멈췄다. 놀러 나갔던 애들을 불러들이고, 며칠치 먹을 것을 챙겨 '고립'에 대비하는 것이다. 무사히 잘 지나가면 감사한 일, 바람이 잦아들지 않으면 하루 이틀 단전, 단수는 놀랄 일도 아니었다.
자연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제주도 이주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태풍 차바를 만났다. 창문을 뚫을 기세로 들이닥치는 비바람에 뜬 눈으로 세운 그날 밤, 나는 그동안 아등바등 살던 일이 다 무슨 소용인가 싶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순리를 따르는 삶, 억지로 되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많이 쓰고 많이 버는 삶에서, 적게 쓰고 적게 버는 삶으로 거듭나며 이제 나는 잘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