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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로 가는 길 우연과 인연의 징검다리를 아슬아슬 건너며 부단히 그곳을 향해 힘차게 걸었다.
작은 학교 무상 임대 주택을 포기하고 며칠 동안 제주도 부동산을 샅샅이 살폈다. 제주도 이주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았다. 간혹 맘에 드는 집이 나온다 해도 번번이 제주도로 날아갈 수 없으니 사진과 거리뷰에 의존해 살 집을 결정해야 했다.
'계약서를 쓰려면 아무리 바빠도 다시 제주도에 다녀와야겠구나'
전학 가기로 확정한 곳 역시 전교생 60명의 작은 학교였다. 상가랄 게 없는 곳을 두고 주변 상권 운운하긴 그렇지만 지난 학교보다 마트나 정류장이 가까웠다. 마을에 마트도 딱 하나였고 오일마다 열리는 장날을
기다려 장을 봐야 하는 곳이었고 작은 학교 앞에는 흔한 문구점 하나가 없었다.(지금은 cu도 있지만)
나머지는 오로지 밭 뷰!
제주도는 빈 집이 나오면 거의 즉시 계약이 됐다. 제주 부동산 정보지에 빈번히 오르는 매물이라면 무언가
기피할 문제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꼭대기 층이라든가 기름보일러인 경우, 반려견 반려묘 절대 안 됨! 같은) 제주도는 아직 도시가스가 안된 곳이 더 많다. 도시에 살다 오는 경우는 간혹 상상 못 한 이유를 만나게 될 수 있다. 체감상으론 도시에서 10년 전쯤으로 돌아간 것 같기도 했으니까!
어렵게 찾은 집을 놓치지 않으려면 계약금 일부라도 보내야 했다. 우선 집주인은 자신의 주민등록증 사진을 문자로 보내왔다. 계약금을 보내기 전에 집주인이 보낸 주민등록증 주소를 확인했는데,
제주도 집주인은 내가 살던 신도시에 살고 있었다. 그것도 내가 살던 바로 옆 아파트에 사는 이웃이었다. 지난번 황당한 우연에 이은 다른 우연이 찾아온 거였다. 이쯤 되니 살면서 '우연' 아닌 일이 얼마나 될까? 무엇을 당연하다고 여기며 살 수 있을까 싶었다.
집주인은 곧 바로 내가 있는 곳으로 왔고 우린 신기한 우연을 인연이라 우기며 제주도가 아닌 신도시에서 제주도 집 계약서를 썼다. 집은 보지도 않고 말이다.
그날, 그러니까 이사 가기 바로 전날까지 도시락 200인분 준비를 하느라 밤을 꼬박 새웠다. 다니던 성당에 도시락 200개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모든 예약을 마칠 수 있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10만 회가 넘게 해온 '요리하는 사람의 일'이 끝나는 날이기도 했다.
'마지막' 만큼 '처음'을 기억하게 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첫 마음처럼 잘 마무리하고 싶었다. 무엇에 이끌린 시간이었을까? 생각하다가도 그 시간이 성장시킨 나를 생각하면 애틋한 마음부터 생겼다.
아침에 도시락을 모두 실어 보내고 이삿짐센터 아저씨들이 뺀 짐은 배에 실려 제주도로 먼저 떠났다. 당일 오전에 해야 할 마지막 인수인계와 명의 변경 같은 모든 처리가 마무리됐다.
" 떠나기 전 날까지 꼭 힘들게 밤을 새우며 일을 해야 돼?"
" 아니면, 이삿날을 좀 뒤로 하든지."
함께 밥 한 끼 못하고 가는 걸 아쉬워한 이웃들은 여러 말이 많았지만, 나는 단 하루도 지체 없이 떠나기로 결심했다. 사실 일하던 그곳을 '3인칭 시점'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그곳은 시간을 쫓아 살며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던 장소였고 혼자 요리 준비를 하던 새벽에 남긴 독백이 연기처럼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간의 정을 생각하면 그곳에 따로 남아 속 깊은 인사라도 해야 됐지만 마지막 몇 달은 그럴 여유조차 없이 바쁜 날들이었다. 흔히 그렇게 말하지 않는가! 나 역시도 그런 뻔한 변명을 남기고 변변한 인사도 없이 그 문을 나섰다. 돌아봤다면 아마 울음이 터졌을 것이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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