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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제주공항에서도 40킬로 떨어진 작은 바닷가 마을에 있었다. 당장 쓸 짐만 담은 트렁크 두 개를 끌고 여행 온 것처럼 우리가 살 집 앞에 도착해서야 주인에게 문자로 현관 비밀 번호를 받았다.
3개 동이 나란히 있는 구축 아파트였지만 계단이며 층계참이 깔끔한 게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아파트 입구에 우뚝 솟은 워싱톤 야자나무들이 드디어 제주에 왔음을 실감하게 해 줬고 집안은 소박하고 단정했다. 보지도 않고 계약한 집인데 이만하면 성공이었다. 이삿짐 도착 전까지 지내는데 지장 없을 정도의 살림살이도 구비돼 있었다. 얼마간 빈집였다고 해서 우선 창문을 열어 환기하고 청소를 하기 위해 뒷베란다 문을 여는 순간 드디어 만나고 말았다.
‘헙! 바로 너로구나 소문이 자자하던 그 제주도 곰팡이!’
제주도를 글로 배우며 공부할 때, 모두 입을 모아 말하던 ‘말도 말라던 곰팡이'를 마주하고 말았다. 가로로 기다란 구조의 베란다 벽, 이끝에서 저 끝까지 털이 부숭한 새까만 곰팡이가 빼곡히 피어있었다. 만약, 그 당시 내 마음이 그토록 간절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참기 어려울 만큼 무섭게 생긴 곰팡이였지만, 어떻게 온 제주도인가!
'어머, 이렇게 생긴 곰팡이는 처음 보네 제주도라 곰팡이도 참 다르구나? 많이도 폈고!'
짐도 풀기 전에 나는 세제를 풀어 곰팡이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그 뒤로도 제주도의 짠 습기는 가방이며 옷에 있는 작은 지퍼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차근차근 망가뜨렸지만,
일에 묻혀 살던 도시를 벗어난 마음은 그 정도쯤은 모두 이해하고도 남을 만큼 행복했다.
아이들은 도착하자마자 바로 뛰어 나가 친구를 만들었고 사교성 좋은 막내는 첫날 무려 다섯 명의 친구를 집으로 데려오는 기염을 토했다. 아이가 사귄 친구 엄마들과 인사했고 그들은 육지에서 온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반가움을 표현하는 방식도 여태껏 경험해 본 적 없는 것이었다. 여긴 제주도 니까.
어느 날 아침, 아이들 등교 준비를 하던 이른 시간이었는데,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어? 뭐지? 이 시간에? 나 지금 세수도 안 했는데?'
도시였다면 아마도 이웃의 긴급한 도움 요청 말고는 있을 수 없는 방문 시간이었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빼꼼히 문을 열었다. 인사를 나눴던 아이 친구 엄마였다.
"언니, 새벽에 바다에서 잡은 거예요. 드셔보게요 " (먹어보란 얘기)
' 바다에서? 뭘 잡아? 새벽에?'
그녀는 다른 설명도 없이 비닐봉지 하나를 덜렁 내 손에 쥐어주고는 뒤돌아 총총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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