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삶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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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지 안에는 힘차게 꿈틀대는 문어 4마리와 푸르른 등이 눈부신 고등어 한 마리가 담겨 있었다.
"언니, 새벽에 수산시장에 다녀왔어요!"라고 말한 걸 잘못 들었을까?
불과 한두 시간 전에 너른 바다를 누비던 문어와 고등어가 잡혀와 태연히 내 손에 들려있었다.
정말 내가 제주도에 왔구나! 그동안 숱한 요리를 했지만 고등어 눈이 그렇게 총명한 것은 난생처음 본 것 같았다. 도시에서 내가 먹던 고등어는 정말 고등어였을까?
그 일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 뒤 우리 집 현관 문고리에는 농사지은 감자, 당근, 풋고추며 옥수수와 각종 푸성귀가 하루가 멀다고 걸려 있었다. 귤을 직접 사서 먹은 적이 한 번도 없을 만큼 이 밭 저 밭에서 수확한 귤을 받아먹는 호사도 누렸다.
마땅히 나눌 게 없던 나는 받은 재료로 좀 색다른 요리를 만들어 나눴다. 제주음식과는 사뭇 다른 도시 음식에 그들도 환호했다. 신선한 식재료를 열심히 가져다 나르는 그들에게 다시 요리를 만들어 나르는 일상은 마치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져 죽이 척척 맞았다.
제주도에서의 새 출발은 마치 우리가 오기만 기다렸다는 듯 설렘과 함께 시작되었다.
"언니, 이따 낮에 한 시간 정도 여유 시간 있는데, 문어 잠깐 잡으러 가게요"(문어 잡으러 가자는 얘기)
'잠깐 비는 시간에 문어를 잡으러 가자고? '
그 말을 커피 한잔 하자는 것처럼 말하는 그녀에겐 가능한 이야기였다. 실제로 한 시간이면 그녀는 종아리 정도 깊이의 바다를 슬슬 걸어 다니며 문어 대여섯 마리쯤은 후딱 잡는 선수 중에 선수였으니까.
'아, 이렇게 살 수도 있는 거구나!'
그동안 도시에서 왜 그리 힘들게 살았던 걸까? 자괴감을 느낄 새도 없이 일 밖에 할 줄 모르던 나는
어멍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신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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