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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는 변변히 쉬는 날이 없었다. 쉰다고 했다가도 예약이 생기면 일을 했다. 그런 나를 두고 주위에선 소처럼 일만 한다고 했었는데 드디어 일에서 놓여나 제주도에서 백수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습관은 무서운 거라 일만 하던 사람에게 시간을 준다 한들 금방 놀 방법을 찾아내기는 어려웠다. 놀다가도 일 생각이 떠오르면 가슴이 철렁하거나 웃다가도 웃음기가 싹 달아나곤 했으니까. 더 큰 문제는 잠이었다. 밤을 새우며 일한 날이 많았고 예약된 일을 실수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좀처럼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잠이 들었다가도 새벽에 놀라 깨면 가슴이 두근거려 다시 잠들 수 없는 날이 많았다.
그 당시 내가 꾸는 꿈의 대부분이 받은 예약을 잊어버려 고객의 중요한 날을 망치는 악몽이었다. 지금 쓰는 글의 시기는 제주에 온 지 몇 달 되지 않았을 때 지만, 사실 이 증상을 완전히 해결하는 데는 그 뒤로도 4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비 오는 날이었다. 막내가 감기 기운이 있어 등교하기 전에 마을 의원에 들렀다. 오전 8시였는데 이미 병원 대기 의자에 앉을자리 없이 사람이 많았다. 대충 봐도 30명은 족히 되는 어르신이 모두 여자들이라 한번 더 놀랐다. '진료받고 제시간에 등교하기는 어렵겠다.' 생각 한 순간, 간호사님이 우렁찬 목소리로 대기 중인 어른들에게 외쳤다.
"삼춘 들예, 야이 학교 가야 할 커 먼저 진료보고 보낼쿠다 양~!"
(어르신들 이 아이 학교 가야 하니 먼저 진료 보겠습니다!)
삼춘들은 (제주도는 어르신을 모두 삼촌이라 합니다)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 한 말씀씩 해주셨지만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모두 웃고 계셨던 걸로 보아 좋은 얘기였던 것만 짐작할 수 있었다. 어르신들의 양해 덕분에 막내는 약을 받아 무사히 제시간에 등교할 수 있었다.
바닷가 마을인 마을 어르신 대부분은 해녀였다. 비가 오는 날은 바다에 나가 물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물리치료를 받으러 온 해녀삼촌들로 병원이 꽉 찼다. 병원도 삼춘들 스케줄에 맞춰 새벽 5시 반부터 문을 열고 오후 4시에 닫았다. 해녀삼춘들은 평생 물질을 해온 탓에 잠수병을 앓거나, 뭍에서는 다리를 절뚝거리며 지팡이 없인 걸음도 겨우 걷곤 했다.
제주도는 해녀삼춘을 빼곤 이야기할 수 없었다. 화산섬인 제주의 척박한 땅은 농사 지을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에 자식을 먹이기 위해 어머니들은 거친 파도를 헤치고 물속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평생 '물질'로 생계의 부양자 역할을 했고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군의 부당한 착취에 맞선 '여성 운동가'였다. 마을 공동체를 돌보며 마을에 학교를 짓던 경제의 주체자도 모두 해녀 삼춘들이었다. 하지만 차례나 제사 같은 의식에는 여자라는 이유로 참여할 수 없는 차별받은 존재의 다른 이름이었다. 지금도 마을에는 80대 해녀 삼춘들이 물질하는 동안 남자들은 해변 끝에 경운기나 트럭, 수레 등을 대놓고 이제나 저제나 '물마중' 때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쉐로 못나난 여자로 낫죠'(소로 태어나지 못해 여자로 태어났지요.)
이 글귀를 이해하게 됐을 때 아프게 마음이 울렸다. 과거 제주도 해녀삼춘들은 임신 중에도 바다로 들어가 '물질'을 했고 돌아오는 배에서 아기를 낳는 일도 흔했다. 지금은 잠수복을 입지만 과거엔 알몸으로 겨울 바다에 뛰어들어 '물질'을 했다니 그 고통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마을을 오가며 만난 해녀삼춘들은 늘 의연하고 당당했다. 그저 쇠약한 노인이 아니었다. 삶이 흘러가는 대로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낸 해녀의 삶은 자신뿐 아니라 많은 것을 보살피고 키워냈다. 그들의 땅이 지금의 제주도라 생각하면 해녀 삼춘들에게 경외심 마저 생겼다.
의연하고 당당한 어른으로 살게 된다는 것은 배움의 높고 낮음으로 판단되지 않았다. 자신의 삶을 견뎌내고 끝까지 살아낸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을 알게 됐다. 겉모습만으로 누가 누구의 삶을 판단할 수 있을까? 우리는 간혹 한 사람의 삶을 한 권의 책에 비유하기도 했다. 관광지인 제주에서 이제는 걸어 다니는 문화재라 불리는 제주 해녀 그 삶의 책장을 조용히 덮는다. 그녀들 삶에 존경과 위로를 담아 감사의 마음을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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