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만난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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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 억지로 등 떠밀려 온 수동적인 아이와 하는 독서 수업만큼 서로 힘든 일도 없을 것이다. 결국,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독서하는 삶에서 멀어질게 자명한 일이었다. 엄마의 기대와 수동적인 아이의 부조화는 그 차이가 늘 상당했고 하는 일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없을 때 나는 그 일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다시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마을에는 사교육 영어/수학 학원이 하나정도 있었고, 논술교실은 없었다. 전교생이 100명이 안 되는 작은 학교였으니 그 학생 수만 보고 학원이 들어오기도 어려울 것 같았고 그래서 더욱 목마른 소비자가 있었으니! 마을 어멍들의 추진력이 모여 나는 제주도 작은 마을에서 독서 논술 교실을 열었다.
도시와는 확실히 좀 더 어린이다운 아이들과 둘러앉아 그림책을 읽고 글을 짓고, 그림을 그렸다. 마지막 수업을 늦게 마친 고학년 아이들과는 함께 저녁밥을 차려 먹고, 아이들이 설거지로 보답하는 자유로운 교실 운영을 했다. 도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저희 교실은 성적과는 무관하게 독서 수업을 합니다'
요즘 학원의 영업방식에 역행하는 홍보를 하는데도 대기하는 아이가 생길 만큼 교실이 바빠졌다.
수업을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초등학교 1학년 팀 수업이었다.
"시장에 가면 있는 것을 얘기해 볼까?"
그림책을 읽고, 시장에서 파는 물건을 나열해 보는 내용이었다.
"시장에 가면..? 바다가 있어요!!"
한 아이가 망설임 없는 목소리로 외치는 거였다.
"맞아, 시장엔 바다가 있어요!"
곁에 있던 아이들도 다른 이견 없이 외쳤고, 나는 괜히 코끝이 찡했다.
'와! 얘들과 오래오래 수업하고 싶다!'
마을엔 오일장이 열렸는데, 오일마다 장이 열리는 장소가 바닷가 앞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장에서 파는 물건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했기 때문에 '바다'는 오담였지만, 이런 오답이라면 얼마든지 좋았다. 시장엔 먹을 것도 있고 채소도 과일도 고기도 있겠지만, 아이는 그 길을 가다 만난 바다를 가장 먼저 기억해 주었다. 어린 시절 엄마와 시장 가는 길에 봤던 아이의 바다는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된 뒤에도 마음에서 내내 푸르게 일렁일 테니까.
순박하고 맑은 아이들이 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등 떠 밀려 억지로 교실에 온 게 아닌 아이들은 '알작지 몽돌'처럼 반짝반짝 교실을 빛냈다. '성적과 무관한 독서 수업'을 강조했지만,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다음 일은 아이가 다 알아서 하게 된다고 믿고 있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를 많이 한 어린이가 나쁜 성적을 받기도 어려운 일일 테니까.
'자장면' 그림책을 읽은 날은 자장면을 배달해 함께 먹었고 아이들은 고민이 있으면 내게 말해주었다. 나는 아이가 어른과의 관계에서 '오해'로 인해 상처받지 않도록 돕고 싶었다. 아이가 속에 있는 말을 꺼내 놓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일, 네가 생각한 것이 오해 일 수 있는 여러 가정을 들어주며 아이가 다시 생각을 정리하도록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는 바닷가 몽돌 닮은 아이들과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일상에서 행복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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