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가는 이미 접근 금지 사이렌이 울렸다. 바다는 여태 보던 모습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성난바다'였다. 높은 파도는 이리저리 물폭탄을 쏘아 올렸고 해안도로까지 포말이 일었다.
밤사이 태풍이 마을을 관통할 것이라는 예보가 나오며 항구에 정박 중이던 선박을 최대한 뭍으로 올리려는 선원들의 움직임은 몸부림에 가까웠다. 마을 사람들은 약속한 듯 일사불란하게 다가올 태풍에 대비하고 있었다. 마을에 하나 있는 마트에서는 생수를 입구 쪽으로 재배치했고 사람들은 '고립'에 대비할 먹거리와 생필품을 사서 속속 집으로 돌아갔다.
이웃이 일러주는 대로 나도 창문틀을 고정시키고 며칠은 집안에서 버틸만한 먹거리를 챙겨놓고 문을 닫아걸었다. 이주민들이 모이는 단톡방도 태풍 대비에 대한 정보교환으로 정신없이 톡이 울려대고 있었다.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집중호우를 경험하긴 했지만 태풍을 두려워해 본 적은 없었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모르는 상황에 겁날 일도 아니었다. 바닷가 마을에 이사와 처음 겪는 태풍 대비에 묘하게 전해지는 소속감도 나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 까지는 그랬다. 그때까지는 말이다.
밤이 되자 비바람이 거세지기 시작했는데 거센 바람에 비가 사선으로 날아왔다. 마치 수천 개 화살이 날아드는 것 같았다. 유독 크기도 크고 이중창도 아닌 베란다 창문은 날아든 화살 같은 비에 맞을 때마다 비명을 지르듯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창문을 뚫고 폭포 같은 물줄기가 거실로 쏟아져 들어올 것만 같았다.
밤 12시가 되자 단톡방도 조용해졌다. 모두 잠들지 못할 게 뻔했지만 백 명이 넘는 단톡방에 새벽까지 톡을 남길 수는 없었다. 요란하게 흔들리는 베란다 창문 근처로는 두려워 다가가지도 못하고 혹시 미처 단속하지 못한 곳은 없는지 다시 살필 뿐이었다. 그때 이웃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우리 집 옆라인에 사는 이웃이었다. 부러진 나뭇가지가 날아온 바람에 창문이 깨져 집안으로 빗물이 들고 있다는 거였다. 정신없이 흔들리던 베란다 창문이 정말 깨졌다는 얘기였다. 태풍의 위력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뒤척이는 아이들을 다독이며 뜬 눈으로 꼬박 새웠다. 비가 잦아들기를, 태풍이 지나가기를, 어서 아침이 오기를 기도했다. 새벽 6시 정각이 되자 단톡방 진동이 요란히 울리기 시작했다. 모두 아침이 되기만 기다리고 있던 거였다.
"혹시 이거 주인 있나요? 저희 집 앞에 이게 날아와 있어요."
함께 올린 사진에는 어느 카페의 나무 대문이 날아와 마당에 널브러져 있었다. 곧이어 지붕이 뜯기거나 저만치 이동한 컨테이너 사진이 올라왔다. 날이 밝자 밤새 태풍이 휘두르고 간 자리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바닷가 가까운 곳에 있는 장터 건물은 철재 지붕이 제멋대로 휘어졌고, 아파트 입구에 당당히 서있던 워싱턴야자나무는 뿌리가 들린 채 기울어져 있었다. 건물 외벽이 떨어졌고 신호등도 위태롭게 흔들렸다. 물도 전기도 모두 끊겼다.
'자연 앞에 까불지 말고!'
바닷가 마을에서 처음 만난 태풍 '차바'는 매운맛으로 나를 단련시켰다.
단전과 단수가 복구되기까지 2일에서 4일 정도가 걸렸다. 생수 외에 생활에 쓸 물을 구하러 마을 탱크에 가서 물을 길어 날랐다. 태풍으로 피해를 본 사람이 많았다. 그것에 비하면 나는 아무 피해도 없는 거였다. 호된 태풍의 가르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자연 가까이에 온 게 맞는구나'
태풍이 거치자 마을 사람들은 서로 도와 망가진 곳을 보수했다. 늘 그랬다는 듯 의연하기만 했다. 표정만으로는 어젯밤 태풍이 지난 간 것도 꿈이었던 것 같았다. 인생도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좋겠다. 삶에 태풍이 몰아쳐도 사는 게 그런 거지! 인정하고 어수선한 마음은 의연하게 정리해 다시 그제처럼 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