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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19. 2023

내가 본 것을 믿는다는 것!

스스로 굳건하지 못한 것은 쉽게 부서지고 사라졌다. 각자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가까워진 인간관계에 남은 것은 곧 헤어질 일뿐이었다. 누가 뭐래도 내가 본 것을 믿는 마음엔 '의지'가 담기지만, 내가 보고도 믿지 못한다면 고락을 함께 한 인연도 얽힌 고리를 이빨로 끊듯 상처를 내며 헤어지는 게 인간사였다.


어느 해 봄날이었다. 볕은 적당히 따뜻했고 어딜 가나 꽃잔치가 한창이었다. 제주도에선 이런 날이 자주 있지 않았다. 따뜻하던 볕도 금세 구름에 가려지고 후드득, 비가 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우린 그림그릴 도구를 챙겨 동네 산책을 하고 야외수업을 하기로 했다. 인근 놀이터 정자에 마침 둘러앉기 좋은 테이블과 의자도 마련돼 있었다. 꽃잔치가 벌어진 나무 아래에서 아이들은 꽃보다 더 환하게 웃었고 놀이터에서 한바탕 뛰놀고 나니 어느새 볼에 생기가 돌고 숨을 몰아 쉬면서도 참지 못한 웃음이 팝콘처럼 터져 나왔다.


잠시 뒤, 우린 주변에서 마음에 든 것을 찾아 그림으로 표현해 보기로 했다. 아이들은 제각기 자리를 옮겨서  방금 전 신나게 뛰놀던 놀이터를 그리거나 꽃나무를 그리기 위해 화단을 향해 앉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쉽게 펜을 들지 못하고 시무룩해진 아이가 있었다. 호경이었다.


"호경아, 어떤 거 그려?"

"이 꽃나무요."

"아, 벚꽃 그리려는 거구나? 근데, 왜 잘 안 그려져?"

"선생님, 저요 꽃나무 사진 검색해서 핸드폰으로 보면서 그리면 안 돼요?"

"음... 핸드폰 화면보다 이렇게 눈앞에 있는 게 더 잘 보이는데  왜 그렇게 보고 싶어?"

"그냥, 답답해요. 영상으로 보면 편한데!"

호경이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진짜 꽃나무를 믿지 못했다. 영상으로 대부분의 경험을 하는데 익숙한 요즘 아이의 단면이기도 했다. 나는 호경에게 그림은 그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일찍이 영상에 노출된 아이의 모습을 걱정하자니 알려주고 싶은 게 있었다.


호경이와 함께 그리려던 꽃나무를 만져보았다. 나무의 표피를 손으로 만져보고 물이 오른 이파리도 만져 봤다. 호경이는 그것에 손을 갖다 댈 때마다 움찔했다. 이파리는 매끈하거나 얇거나 도톰했고 보드랍거나 거칠었다. 꽃향기도 맡아보고 어떤 맛일 것 같은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영상이 아무리 재밌대도 꽃향기를 맡을 수 없고 손끝에 나무 표피의 생생한 느낌을 전해 줄 수 없었다.


호경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그냥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것이었고, 그다음은 '유심히 봐주자'는 것이었다. 영상처럼 저대로 흘러가는 것 말고 호경이 스스로 '유심히 본 것'을 끝까지 믿는 마음을 말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는다 해도 쉽게 상처받지 않고 스스로 굳건한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이었다. 적어도 그날 호경이가 직접 만져보고 유심히 봤던, 왕벚꽃 나무의 질감이나 아이스크림 맛을 상상했던 꽃향기의 기억을 믿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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