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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12. 2023

그게 왜 하필 나냐고 묻지 않기!

 

'알잖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오랜 세월 동안 세상에 일어났던 일만 봐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잖아. 오히려 별일 없이 평범한 일상을 산다는 것이 더 놀라운 거지!'

냉정하고 야속한 말 같지만,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냐고 그게 왜 하필 나였냐는 말은 하지 않기로 하자.


 그날도 수인이는 제일 먼저 교실에 도착했다. 햇살 닮은 환한 얼굴에 유독 볼이 발그레한 열 살이었다. 평소에 귀엽고 작은 입에서 욕을 섞은 노인의 말투가 불쑥 튀어나와 놀라게 하곤 했던 수인이는 할머니와 둘이 산다고 했다.


"선생님, 글쎄요. 며칠 전에요. 친구 생일 파티에 초대받아서 아침부터 준비하고요. 선물도 포장해서 걔네 집에 갔거든요? 근데 그 친구 가요, 인터폰 있잖아요? 그걸로 저는 초대장을 못 받았기 때문에 못 들어온다는 거예요!"

수인이는 나를 보자마자 꼭 얹힌 것을 쏟아놓듯 말을 토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래서 어떻게 됐어?"

"초대한 적이 없다고 문을 안 열어주는데 어떡해요. 기다리다 그냥 왔죠."


 수인이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더니 살짝 떨렸다. 수인이는 서러운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지 커다란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울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라면 이럴 땐 같이 울어주는 것 말곤 위로될 만한 게 없지만, 나는 좀 더 의연한 방법으로 수인이를 위로하기로 했다.

"와, 말도 안 된다. 수인아, 그렇지?"


 생일인 아이 집에 이를 중제 할 어른은 없었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더 묻지 않았다. 무슨 말로도 실망했을 마음을 대신할 수 없겠지만, 그 마음만은 이해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수인이 초대 안 한 그 친구만 손해지 뭐."

수인이는 그제야 내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정말 손해를 본 쪽이 자신이 아니라 그 친구인 게 맞느냐는 표정이었다. 수인이는 기대했던 생일파티에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넘지 못할 벽을 느낀 게 분명해 보였다.


"그럼, 당연히 손해고 말고!"

 열 살 아이에게 선명히 보이지 않는 것을 이해시키기란 쉽지 않았다.

"생일 축하 해주러 온 친구를 그렇게 대하는 아이는 네 친구가 아닐 거야. 친구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정성을 다 한건 수인이잖아? 이런 친구를 놓치다니 그 애 손해가 맞지!"

 수인이는 차오르던 눈물을 거두며 살짝 웃었다.

"맞아요. 어차피 선물도 제가 갖고 싶던 거거든요? 제가 가짐 되죠 뭐."

 자신이 갖고 싶던 걸 친구 선물로 들고 갔던 수인이가 끝내 열리지 않던 문 앞에서 느꼈을 막막함을 생각하면 내 마음도 조용히 내려앉았다.


우리 삶은 예기치 못한 상황을 수없이 만났다. 내 맘 같지 않은 타인의 행동에 흠칫 놀라며 상처받고 나도 모르게 상처 주면서 어린 마음이 자라 어른 마음이 됐다. 대장정의 모험을 이어가는 것이 인생이었다. 곁을 지켜 줄 수는 있지만 절대 대신 경험해 줄 수 없는 모험을 하며 우리 모두 어른이 돼간다.


환영받지 못한 그날의 경험이 결코 상처만 남기진 않을 거라고 수인이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어둠 너머로 뵈는 빛은 더욱 강렬할 테고 빛을 따라 걸어 나온 사람이 되면 되는 거라고. 앞으로도 수인이가 높은 벽과 마주칠 때마다 어둠 뒤의 '빛'을 발견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수인이가 그게 왜 하필 나인 거냐고 묻지 않을 만큼 단단해지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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