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이게 맞는 거야?

유쾌한 소식에 부쳐

by 은수
사춘기 딸이 그리고 엄마가 씁니다

"유쾌한 소식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아나운서의 경쾌한 목소리와 만면에 띤 미소에 이미 행복 회로가 가동되고 있었다. 사나운 뉴스 속에서도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훈훈한 미담이 전해질 때, 아직은 살만한 세상이란 마음이 들곤 했으니까!


기사 내용은 이랬다.

이날 오후 9시 10분경 지하철 2호선 XX역을 순찰하던 역무원들은 역사 안에 누워 잠자던 노숙인을 깨워 밖으로 내보내려 했다. 화가 난 노숙인은 주먹을 휘두르며 위협했고, 그때 마침 스파이더 맨 복장을 한 시민이 나타나 노숙인 손을 잡고 제지했다. 노숙인은 "이거 놔"라며 소리쳤지만 스파이더맨은 "진정하시라"며 그를 말렸다. 이과정에 노숙인 팔을 잡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는 여유를 보였고,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잠시뒤 경찰이 도착해 노숙인은 퇴거조치됐다. SNS에는 진짜 영웅이 나타났다며…


'이게 유쾌한 소식이라고?'

사건 전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이 일이 유쾌한 일로 보도된 것에 적잖이 놀랐다. 혹시나 싶어 다른 언론 기사도 찾아봤지만 한결같이 유쾌하게 소식으로 전하고 있었다. 나는 이럴 때 평소 판단력이란 없던 인간처럼 허둥댔다. 세상이 모두 한마음으로 내는 소리를 나만 못 알아듣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소란이 벌어진 상황에 영화처럼 스파이더 맨이 나타난 걸 봤다면, SNS에 퍼 나르기 좋을 순 있다. 하지만 기사를 송출하는 언론조차 다른 이면에 대한 고민 없이 흥밋거리로 기사를 낸 것에 아쉬움이 컸다. 무엇보다 어린이, 청소년을 만나는 내 입장에서 보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은 기사가 분명했다.


내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을 때, 옆에서 함께 뉴스를 보던 '사춘기'가 물었다.

"엄마, 스파이더 맨이 영웅이면 노숙인 할아버지는 악당인 거야?"


"사춘기, 네가 보긴 어떻게 보여?"

답답한 마음에 사춘기에게 영상 안에 등장하는 각 인물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제안했다.

"등장인물은 스파이더맨, 노숙인, 역무원, 시민이지!"

"맞아, 그럼 노숙인은 왜 거기서 자고 있었을까?

"그야 밖이 추우니까!"

"그럼 우리나라는 역 내에서 노숙을 할 수 있을까 없을까?"

"안되니까 역무원들이 자는 노숙인을 깨웠겠지?!"

" 맞아! 사춘기야! 노숙인은 그날 추위를 피해 잘 곳이 필요했을 테지!"


"그럼 사춘기 너는 스파이더맨이 등장해서 했던 행동은 어떻게 생각해?"

"실제 봤으면 신기했을 것 같긴 한데, 진짜 스파이더 맨도 아니고 스파이더맨도 결국 시민에 포함되는 거 아닌가?"

(중략)

"사춘기야, 그럼 거기 있던 네 그룹의 사람 중 가장 약자는 누구인 것 같아?"

"그야... 노숙인 할아버지지!"

"...."

사춘기와 꽤 긴 질문과 답이 오가는 중에 집 나갔던 내 판단력도 제자리를 찾아 돌아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진짜 히어로를 만나고 싶은 건 아닐까?

팍팍한 세상에 복잡한 과정쯤 간단히 건너뛰고 모두가 환호할 해피엔딩이 필요한 건 아닐까? 그럼에도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약자를 힘으로 제압해 다시 길거리로 내보낸 일로 영웅이 될 수 없고, 이 일은 결코 유쾌한 소식도 아니라는 것이다.


더구나 단지 히어로 복장을 했단 이유로 쉽게 영웅으로 미화된 모습도 위험해 보였다. 커스텀 의상의 익명성을 악용한 히어로가 우후죽순 생겨나 여기저기 민원을 해결하고 영웅이 될 세상을 상상하자니 앞이 캄캄해졌다.


우리 사회가 노숙인을 환대하진 않는다 해도 그들도 엄연한 사회구성원으로 보호받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 이 같은 공동체의 순기능을 배워야 할 아이들을 생각하면 깃털처럼 가벼운 언론 보도가 더욱 아쉽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사춘기야, 노숙인 할아버지는 악당이 아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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