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왜 못하는 건가요?

부끄러움에 대하여

by 은수

학교 밖 청소년인 사춘기에게 집은 이제 '학교'의 다른 방편이 됐다. 사춘기와 뉴스를 보는 건 다양한 서사를 이해하고, 보이는 것 이면의 것을 보길 바라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화에서 아이만의 제법 매서운 눈이 있음을 종종 발견했다. 아이가 던진 질문엔 어떤 문제에 대한 가장 근원적인 궁금증을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춘기가 그리고 엄마가 씁니다.

무지함에 대해

1981년 우리나라는 정부 차원에서 대대적인 홍보를 통해 54개 농가에 반달 가슴곰의 사육을 허용해 지원했다. 목적은 웅담, 피, 가죽등을 통한 국내외 수입 창출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88 올림픽을 앞두고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자 1985년 정부는 돌연 수입중단조치를 내렸다.

정부를 믿고 사업에 뛰어든 개인 농가들이 손해를 감수했고, 그 과정에 곰을 불법 도축하는 일이 벌어졌다. 또, 철창을 부순 곰이 탈출해 사살되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웅담 채취용 곰 22마리가 자유를 찾았다'

뉴스 헤드라인만 보고 ‘이제야 곰들의 처우 개선이 됐구나!’ 반가웠다. 하지만 강원도 농가에서 구조된 22마리 곰이 자유를 찾은 곳은 우리나라가 아니었고, 미국 콜로라도 주에 위치한 야생동물 생츄어리(학대동물 보호소)였다.


영상 속 곰은 케이지 문이 열렸지만 한참 동안 나오길 망설이다 조심히 풀밭에 발을 딛고 뒤뚱거리며 걸었다. 평생 뜬장에서 만 살던 탓에 곰은 제대로 발을 옮기기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이내 곰은 자신의 본성을 찾고 풀밭을 뒹굴었다.


이제라도 곰이 자유를 찾은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장소 제공의 주체가 우리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이 몹시 씁쓸했다. 아이가 내게 물었다


“엄마, 우리나라는 선진국이야?”

아이가 처음부터 미국이 왜 이 문제를 해결하느냐고 물었다면 덜 막막했을까? 아이는 문제를 우리나라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것 자체가 이미 후진국인 것 아니냐고 묻고 있었다.


어차피 선진국의 기준도 애매했지만, 경제 성장만으로 '선진국'이란 타이틀을 얻는 게 무슨 소용일까. 작고 힘없는 것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고 약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현실에서 무엇을 두고 선진국이라 말하며 자긍심을 느껴야 하는지 되묻고 싶었다.

"사춘기야, 우리나라가 경제 선진국이란 말을 듣곤 있지!"

“그럼, 우리나라에서는 왜 해결을 못하고 미국의 도움을 받는 거지?”

인권조차 존중되지 못한 상황에 동물권이 존중될 리 없었다. 그렇다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42년이 지났다. 우리나라는 이제 선진국이라 자처하면서도 '원죄'가 분명한 일에 대해 여전히 해결할 의지가 없었다.


국내에서 웅담 채취 곰의 구조를 지원하던 곳도 대부분 민간단체 거나 개인이었다. 결국 50시간이 넘는 대이동 끝에 22마리의 곰은 생지옥 같던 우리나라의 철창을 벗어나 미국 땅에서 자유를 얻었다.


다가오는 2026년부터는 우리나라에도 전남 구례군과 충남 서천군에 '웅담 채취용 곰'이 철창을 벗어나 지낼 보호시설이 생길 전망이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도축한 곰의 웅담 채취가 2025년까지 합법으로 허용된다.


이제 '곰의 웅담 채취'가 합법인 나라는 전 세계에 중국과 한국뿐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0살이 넘은 곰에 대해 도축 후 웅담을 채취하도록 한다. 하지만 중국은 살아있는 곰에서 하루 두 번 쓸개즙 채취를 했다.

그들의 가장 큰 고객이 '보신관광'을 떠난 한국인이라는 부끄러운 기사를 본 적 있다. 곰들은 생의 전 과정을 인간에 의해 오로지 웅담 채취 목적으로 가로 세로 각 2미터의 철창인 이른바 뜬장에서 태어나고 죽었다.

2011년 중국 북서부의 한 농가. 산채로 쓸개즙을 채취당하는 고통에 새끼 곰은 절규하며 몸무림 쳤고, 이를 본 어미 곰은 죽을힘을 다해 갇혀 있던 케이지를 부쉈다. 하지만 어미 곰은 고통에 신음하는 새끼 곰의 쇠사슬을 풀 수는 없었다. 결국 어미 곰은 자신의 새끼를 꼭 껴안아 질식시켜 죽였고, 자신도 벽에 머리를 들이받아 자살했다. 인간을 위한 쓸개즙이 만든 곰 모녀의 비참한 최후였다.
(중국-러민바오)(영국-데일리메일) 보도

'곰 모녀의 최후'를 본 우린 더 이상 비인간 동물의 고통이 인간의 고통보다 덜 중요하다 말할 수 없다. 하등 한 동물이라 공감능력 따위 없다며 업신여길 수 없다.

'정작 공감하지 못한 것은 인간의 무지(無知)였고, 그 죄가 하늘에 닿을 지경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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