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그들은 매일 하루치의 삶만을 살았다. 미래를 꿈꾼다는 건 존재할 수 없었다. 가끔 친절한 인간을 만나면 얼마의 지금과 오늘을 얻어 살기도 하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면 작은 몸 뉘일 곳조차 없이 이리저리 쫓겨 다니고 말 것이다.
다시 겨울이다.
내 고양이는 1년 전 초겨울 내게 왔다.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를 데리고 아파트 1층인 우리 집 베란다 아래 후미진 곳에 터를 잡았다. 녀석은 나를 보자마자 초면부터 배를 보이며 바닥에 눕더니 눈을 맞추고 간절히 호소했다. 고양이 답지 않게,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꿈꾸는 것처럼 말이다.
"근데, 너 혹시 백만 번 산 고양이야?"
내가 좋아하던 사노요코의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연상케 하던 녀석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녀석은 백만 번의 오늘과 지금중 어느 때 나를 만난 걸까?
대견하고 대견해
다섯 마리 새끼에게 젖을 물리느라 뼈가 드러날 만큼 깡마른 녀석도 어미일 뿐, 1년이 채 안된 어린 냥이 었다. 새끼들은 또 얼마나 튼실하게 잘 키워놨는지 기특하고 대견할 뿐이었다.
'우리에게 새끼를 맡기려는 거 아닐까? 보통 그렇잖아. 어미냥이는 뭔가 믿을 만한 곳에 새끼를 두고 간다고. TV에서도 본 거 같은데?'
다섯 마리나 되는 새끼를 맡게 되면 어쩌나 별 걱정을 다하고 있었지만, 밥을 주기 시작한 때부터 새끼들이 한 마리씩 안 보이기 시작했다. 나중 며칠은 치즈냥과 턱시도 냥이 두 마리만 데리고 나타나더니 마지막 하루, 턱시도 냥이만 데리고 있던 걸 끝으로 모든 새끼 냥이가 안보였다.
우리가 별 걱정을 다한 것과 달리 어미냥은 새끼의 독립이 끝나자마자 우리 집 베란다 실외기 위에 올라와 애타게 울기 시작했다.
"냥이야, 너 애기들 다 어디 갔어?"
베란다 문을 조금 열어주자 녀석은 망설임 없이 난간 구멍을 통과해 베란다로 쏙 들어와 밥을 먹었다. 그리곤 볕이 쬐는 자리에 누워 그대로 몇 시간을 잤다.
나를 뭘 믿고 배까지 드러내고 자는지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하지만 아무리 가여워도 우리 집엔 '절대 참지 않는 치와와'가 있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파트 단지에서 고양이 밥 주는 문제는 논쟁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자칫하면 냥이가 표적이 돼 더 위 험할 수 있었다.
TNR
새끼를 독립시킨 시점이었기 때문에 중성화수술이 시급했다. 그때 이미 냥이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검은 수놈 고양이도 있던 참이었다.
다니던 동물 병원 선생님 도움으로 TNR (국가동물 보호 정보시템의 지원)을 받아 중성화 수술을 받게 했다. 겨울만 베란다에서 나고 봄에는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왼쪽 귀 컷팅도 했고, 산책냥이로 지냈다.
치와와 '원두'와는 베란다 문을 사이에 두고 한 달 이상 아이컨텍을 했다. 치와와의 분노는 상상 이상이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냥이는 치와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게 분명한 행동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다.(지금까지도)
봄이 됐지만, 이젠 우리가 냥이를 보낼 수 없었다. 냥이는 '원두' 동생 '라떼'가 됐고 어느새 우리가 함께한 시간도 1년이 됐다.
'뭘 그리 놀라시나! 괜찮아요 괜찮아!'
라떼는 특유의 의연함으로 불안이 많던 나를 다독였고 '사춘기'에게는 무수한 영감을 주며 하나의 캐릭터가 돼 이야기를 만들게 했다.
"엄마, 라떼도 엄마가 있었겠지?"
"그렇지 엄마도 있고 또 그 위에 할머니, 할머니가 대를 이어 있었겠지. 우리처럼."
"엄마, 라떼가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새끼를 낳고 키우다 우리한테 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그래, 라떼 아기 때를 못 본 게 너무 아쉽다. 그렇지?"
사춘기와 나는 이런 대화를 나누며 아쉬워했다.
라떼도 가끔 다섯 마리 새끼를 생각할까?
사춘기의 그림에선 라떼와 다섯 마리 새끼가 모두 함께 산다. 벌레를 잡으러 날아오르는 냥이들의 난장판을 보면서도 우린 태연히 말했다.
'이런 게 행복이지! '
치와와가 룸메이트라니!
둘이 함께 있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지만, 지난 1년 동안 원두와 라떼는 큰 마찰 없이 투샷을 보여줄 만큼 가까워졌다. 특히 요즘 전기장판 위에서 만큼은 둘도 없는 룸메이트의 면모를 보여줬다.
갈수록 겨울추위는 더욱 매워졌다. 올 겨울도 후미진 골목에는 오로지 하루치 삶만 이어 붙이는 작은 존재들의 안간힘이 이어질 것이다.
그들을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다. 싫을 수 있고 무서울 수 있지만, 돌을 던져 멀리 쫓지 않길 바라본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곁에 두고 살 수도 없지만, 싫다고 함부로 돌을 던지진 않으니까. 사람끼리 하지 않는 일은 그들에게도 하면 안 되니까.
그들에게 어느 따뜻한 손길이 밥을 주고 바람 막을 박스 하나 내주더라도 그냥 못 본 척 지나가 달라 부탁 해본다.
'작고 외로운 존재가 버티기에 겨울은 너무 추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