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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수 Jun 22. 2024

얼마나 힘들었든지 간에

에필로그

관찰은 보고 싶지 않던 일이나 피하고 싶던 상황을 자주 내 앞에 끌어다 뒀고, 그 안에는 인정하라는 무언의 메시지가 담겼다. 무엇도 더 보태거나 빼서 미화시키는 일 없이 있는 사실 그대로를 보라는 것이 그 목소리였다.

사춘기 아이 둘을 돌보던 마음에 자주 불기둥이 일렁일 때, <관찰의 말> 연재를 시작했다. 무엇을 내려놓을지 알 수 없는 혼란의 일지를 적기 시작한 것이다. 튀어 오르는 감정을 잠재우느라 자주 멈칫거린 게 사실이지만, 앨범이며 육아 일기와 아이의 일기장 같은 어릴 적 기록을 정리하는 과정은 결연하기까지 했다.

더불어 내 앨범까지 정리했을 때 나는, 시절 인연 안에서 내가 사랑하고 사랑받았음을 깨닫게 됐다. 이로써 어떤 삶에도 정답 따위 없지만 그게 무엇이든 진실은 삶의 결과가 아닌 그 과정에 있음이 더욱 명확해졌다.


지난 글에서 나는 우연히 한 사찰 템플스테이에 참석한 이야기를 썼다. 종교와도 무관한 일이었으나 그 경험은 내게 얼마나 간절한 쉼이 필요했는지, 양육자에게 불난 마음을 피할 대피소가 얼마나 간절한 것인지 알게 했다.


그것은 자녀를 방치하거나 불안하게 하는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에게 집중하느라 좁아진 시야나 그로 인해 아이와 나를 타자로 보지 못해 발생된 여러 오류를 돌아볼 기회를 주었다.


혼란의 일지로 시작된 내 관찰은 내게 말했다. 자녀를 양육하는 궁극적 목표는 건강한 독립이란 걸 잊지 말라고. 더불어 통제하려는 양육자 태도로는 자녀의 건강한 독립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돌아보라는 매서운 지적이 단번에 돌아왔다. 사춘기 아이가 마음까지 온전히 성장하기 위해선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니, 양육자인 내 마음 먼저 다스리라는 대답이었다.

느리게 걷는 명상

거기엔 오랜 시간 퍼올리기만 해 바싹 말라버린 빈우물 같은 내가 있었다. 그것은 텅 비어서 뚜렷한 감정이 담기지 못했다. 내가 무얼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건 왜 좋고 싫은 건지도 알 수 없었다. 스스로도 잘 모르면서 과연 누구의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단 말인가!


나에 대한 관찰이 길어질수록 인정해야 할 일이 많아 괴로웠다. 못나게도 번번이 아이 탓을 했지만, 불이 붙은 것도 내 마음였고, 내려놓고 거리 두지 못한 마음도 모두 나로부터 비롯된 마음이었다.


아이를 이해하려 시작된 관찰의 방향은 자연스럽게 나를 향했고, 나는 최대한 성실한 관찰자가 되고 싶었다. 그건 자주 나를 돌아보고 돌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다.

자식을 양육하는 일은 이렇듯 끝없이 나를 돌보는 과정 끝에  

 새로운 문을 발견하도록 했다. 내가 지금껏 벽이라고 믿던 곳을 두드리자 뜻밖에 문이 열린 것이다.


나는 그동안 아동학대 생존자로 겪은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글로 써왔다. 처음엔 토해내듯 썼다. 마음에 얹힌 체기를 내릴 방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뒤엔 무심한 어른에 의해 생긴 상처가 어린 존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토로하고 싶었고, 세상의 약한 존재를 대변할 목소리가 되는 꿈을 키우기도 했다. 이런 점만 봐도 글쓰기는 마음 수행에 좋은 방법이 분명했다.


이번 <관찰의 말>을 연재하는 동안, 나는 비로소 내가 더 이상 약자이거나 피해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최근 어머니의 편애로 20년 넘게 왕래가 없던 오빠 가족에게 먼저 연락했고, 내가 무척 사랑했던 조카들을 다시 품었다. 이미 성인이 됐지만, 조카들에게 좋은 어른이 돼주고 싶은 것은 물론, 내가 더 많이 사랑을 전할 마음의 준비가 됐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기회 닿는 대로 대피소를 찾을 생각이다. 내겐 대피소의 작은 방 하나만 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꼭 그만큼이 양육자와 자녀의 관계를 타자로 구분할 상징적 거리라 믿기 때문이다.


지난번 템플스테이에 이어 최근에는 한 명상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그 과정에서 내가 자주 숨을 멈추거나 낮고 바트게 호흡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호흡법을 배우고 요가를 하고, 바다 앞 명상과 숲 속 명상으로 잠시 대피했던 나는 좀 더 담대한 마음이 돼 돌아올 수 있었다. 얼마나 힘들었든지 간에 깨달은 순간, 우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외돌개 바다 앞에서 한 바다 명상


<관찰의 말>을 연재하는 동안 삶이 바뀌는 과정을 경험하느라 연재 요일을 맞추기 힘들었습니다. 내 삶의 목격자가 된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야 했으므로, 곧바로 글을 쓰는데 어려움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함께 해주셨던 분들 덕분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로써 <관찰의 말> 연재를 마칩니다. 한 존재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통해 다시 뵙기를 소원합니다.


#2박 3일

#숨비명상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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